대학원생 시절, 대학로의 아르코 미술관에서 전시공간 디자인을 할 기회가 생겼다. 내 손으로 그린 도면을 기반으로 무언가가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상황. 전시가 완성될 무렵, 기쁘고 뿌듯한 마음을 안고 VIP 초대장을 부모님께 가장 먼저 전해드렸다. 하지만 예상외의 반응.
"그래 알았다. 우리가 가봤자 뭐 알겠니..."
미적지근한 반응을 뒤로하며 전시는 성황리에 오픈했고, 부모님은 전시가 마무리될 때까지 결국 미술관을 들르지 않으셨다. 너무 서운했다. 자식이 처음으로 만든 결과물이 궁금하지도 않으셨던 걸까?
그날을 뒤로하고 십여 년이 흘렀다. 미술을 전공한 와이프와 결혼한 덕에 아이들과 함께 미술관 다녀온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릴 날들이 많아졌다. 같이 가자고도 자주 말씀드렸지만 역시나 발길이 쉽게 향하지는 않으시던 날들이 반복되던 중, 2024년 뮤지엄 산에서 우고 론디노네의 전시가 오픈했다. 산책하기 충분히 좋은 규모와 아름다운 풍경, 어려운 설명이 없어도 직관적으로 예쁜 조각들을 보여드리고 싶어 부모님을 꼭 모시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시와 작품보다는 뮤지엄산의 환경을 위주로 설명드리면서, 직접 운전해 모시고 갈 테니 함께 산책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한 끼 하고 오자고 말씀드렸더니 이번에는 선뜻 그러자고 하셨다.
6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뮤지엄산으로 향했다. 날씨도 좋고 차도 막히지 않았다. 도착하니 관람객 수도 적당하여 아주 쾌적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어머 여기 너무 좋다. 풍경도 너무 좋고 조경도 너무 예쁘게 잘 꾸며놓았구나."
"이 건물은 원래 콘크리트를 잘 쓰는 건축가가 설계했는데, 주동의 외관은 이 지역에서 난 돌로 마감했대요."
"콘크리트도 아주 매끈하게 잘 썼네. 건물이 퀄리티가 있어 보이는구나."
"이 유리 말은 너무 예쁘네. 집에 하나 갖다 놓고 싶다."
"이 작품은 원주 지역 어린이 1,000명이 그린 태양과 달이래요."
"원주에 사는 아이들은 너무 좋겠구나. 지역사회랑 연계도 잘 돼있나 보네."
"이 조각들은 수도승과 수녀를 표현한 거래요."
"색도 너무 알록달록 예쁘네. 여기 서있을 테니 사진 좀 찍어줘. 저기가 더 잘 나오려나?"
"배고프니 이제 식사하러 가실까요?"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호기심 넘치는 분들이셨다니! 그리고 이렇게 즐겁고 꼼꼼하게 전시를 관람하실 줄이야! 골프와 영화관람 외에 특별한 취미생활을 즐기지 않으시던 부모님에게, 그동안 미술관은 괜히 다가가기 어려운 시설이었을 뿐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경험해보신 적이 없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선뜻 문턱을 넘기가 두려우셨을 것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 형태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 전시를 억지로 모시고 갔었다면, 부모님에게서 미술관은 한걸음 더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있어 교외로 바람 쐬러 가는 기분도 내고, 전시관람 외 볼거리도 풍부한 뮤지엄산을 진작에 모시고 갔더라면 부모님과 미술관 사이의 단단한 벽이 조금은 더 빨리 허물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에는 장욱진 미술관이나 환기 미술관 등 포근하게 초심자를 맞아주는 느낌이 드는 미술관을 꼭 함께 모시고 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