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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 키노 Sep 04. 2023

밀린 숙제

반드시 해결할 숙제

10대 시절 방학을 맞이하며 살았다.

방학식 하는 날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어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루종일 놀 수 있다는 건 하늘이 주는 선물 같았다. 그런 와중에 기쁨과 즐거움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것이 있었다. 누구나 싫어하고 지겨워하는 '방학숙제'였다.

마냥 놀도록 놔두었으면 좋겠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숙제를 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매년 못 끝낸 방학숙제는 꼭 있었다. 방학 끝무렵엔 편하게 놀지 못했다. 방학숙제를 끝내놓으면 맘이라도 편할 텐데 불안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숙제를 멀리했다. 개학이 코 앞으로 다 기와서야 밀린 숙제와 상상 속 여행기를 끌어다가 숙제를 완성했다. 빈칸은 조금이라도 메워놓아야 선생님께 덜 혼날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이와 같은 방학숙제 진행패턴은 바뀌지 않았다. 늘 방학의 끝은 숙제가 날 괴롭히는 꼴이었다.


퇴사 후 취업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실업급여도 신청하고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방학 같은 시간이 있어서 안정을 되찾은 듯이 보였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지금의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방학숙제는 나의 24시간 속에 도사리고 있다. 취업이라는 숙제도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만드는 것도 숙제가 되어있었다.


일기를 밀리듯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 태도를 뒷전으로 미루어놓았었다.

내 감정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고, 이들이 보였으면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감정과 태도에 나의 감정과 태도를 맞춰가는 게 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온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의도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자동인식하게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치를 보다 오히려 독이 돼버린 것이다.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이에게 쉽게 스며들지만,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을 말하고 실천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확신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맞추어 가는 것도 제법 에너지가 많이 든다.


급하게 완성된 숙제는 그저 보여주기식이다.

시간을 두고 완성한 숙제는 성취감을 안겨준다. 물론 얼른 마음숙제를 해결하고 싶은 생각은 원자력발전소 굴뚝같다. 그와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됐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를 스스로 만들었고 피해자를 자처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해내야 할 것들이 많은 시점에서 급하게 해결하기보다 이제는 진짜 성취감을 느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야 남들처럼 이 아니라 나답게 숙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시간은 주어져있고 남은 건 어떻게 해결해 갈지가 관건이다.

P.s 글을 쓰면서 느끼는데 내 문제를 글로 쓰다 보면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포스트잇에 쓴 목표는 절반이상 달성하는 것처럼 마음을 쓰고 나에게 보여주는 것도 해결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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