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자리에서

하루를 적어두기 시작했다

by 아메리 키노

하루를 돌아보면

대부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아침에 나섰던 골목,

습관처럼 켜 둔 불,

특별할 것 없던 대화 하나.


그때는 몰랐는데

하루가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아 있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던 장면이

며칠 뒤에 불쑥 떠오르기도 하고,

별일 아니었던 표정이

오래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런 순간들을

지나쳤다기보다는,

붙잡을 여유가 없었다.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고,

굳이 멈춰 서서 돌아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하루는 계속 흘러가는데

남아 있는 건 거의 없다는 헛헛함이

어느 순간부터 따라붙었다.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하루를 조금 다르게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것들을 바라볼 틈 없이

다음 날로 넘어가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를 더 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잠깐 멈춰 선 자리에서

단어든 문장이든

끄적이기 시작한다.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

억수로 길게 적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이 날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같은 하루는 한 번도 없다고 믿으며,

지나치기 쉬운 일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