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의 어느 월요일, 평소와 다름없던 그날은 걸어서 출근하지 않고,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로 출근했냐고요? 아니요. 시내에 위치한 고용노동센터로 향했습니다. 취업 프로그램을 신청하러 방문했었는데 제 휴대전화는 전원이 꺼져있었습니다. 그 날 만큼은 모든 것과 단절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하려는 것에 오로지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취업 프로그램 신청이야 금방 끝났지만 제 휴대전화는 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한숨을 푹푹 쉬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도착한 곳은 천변 산책로, 날씨는 따뜻하고 맑기까지 했습니다. 마음은 천둥번개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아주 어둠침침한 날씨였는데 말이죠. 영국에서도 런던의 날씨는 맑은 날을 좀처럼 볼 수 없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 마음도 런던의 날씨처럼 지난 8개월 동안 맑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맨땅만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정면에 흐르고 있는 천을 바라보기도 했죠. 힘들고, 우울하고 억울하고, 슬펐던 날들이 천을 따라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여름, 처음 입사했던 날이 보입니다. 인심 좋아 보이는 분들이 "잘해보자"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던 모습이 선합니다. 으쌰 으쌰 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스케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같이 일하는 분들과 섞이지 못하는 모습은 이전 직장의 제 모습을 닮아있더라고요. 일은 해도 해도 서툴고 어중간해서 답답해하던 상사의 모습, 잘 모르는 것도 물어보기 죄송해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혼나는 제 모습이 그려져 갔습니다. 신입 땐 다 그럴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도 급격히 떨어진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6개월이 넘어가도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직장 어디에도 이 무너진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모두 저를 싫어할 거라고 단정 짓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회식 도중에 상사가 묻더군요.
너는 내가 좋냐?
사실대로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너무 힘들다고. 괴로워 죽겠다고. 그런데 입 밖으로 튀어나온 대답은,
네, 좋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야 한다는 세뇌된 의식 속에서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싫은 말을 못 하는 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 한편에 선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아직 꺼지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요.
'이 녀석 보게'였는지 '네 까짓게'였는지 모를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살짝 보였습니다. 그냥 그게 다 였습니다.
회식자리가 길어진 탓에 술이 얼큰하게 취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술기운에 그동안에 마음에 입었던 상처에 진물이라도 나는 것처럼 펑펑 울며 집 앞에 도착했고, 그 와중에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술 마셨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라고 하는 무심하게 끊는 친구가 없어서 더 눈물 났습니다. 이윽고 밖에서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남동생이 나왔습니다.
형, 술 마셨는가? 그만 울고 집에서 얼른 자.
말 걸어주는 동생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집에서 혼자 있는 날이면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몇 번이고 삼켜왔었거든요. 동생이 볼까 봐 숨겨왔던 눈물들이 참 많았습니다.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형들은 그렇잖아요. 막 잘 해내고 싶고,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은 그런 거요.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동생 얼굴이 보이자 또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미안해, 형이 정말 미안해!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미안해!
한참을 붙들고 넋두리, 한풀이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그렇게까지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던 것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한 적은 없었는데 이 때는 정말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거든요. 죽음이 코 앞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감이 극에 달했었습니다. 정신과에라도 가봐야 하나 생각도 했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제 자신을 감싸 안아 주고 토닥여 줄 수 있는 여유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남들이 채찍질 한만큼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참담하고 혹독한 현실 앞에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나약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가장 미안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훌훌 털어냈나 싶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제 모습은 직장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간단한 실내 정리조차 눈치 보면서 하고 있는 모습을 느낄 때면 '정말 바보 같다, 이렇게 멍청할까'라며 날카로운 감정의 칼로 찌르고 도려내고 아주 짓이겨 버렸습니다.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땐 상황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탄하며 좋아질 수 있는 길은 내가 없어져버리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가장 칠흑같이 어두웠기 때문에 삶에서 그대로 투영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의 흐름은 평소와 다름없이 흐르고 있는데 전 그 흐름에 밝은 빛 대신에 마음속 가득한 암흑을 뿌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자신을 포기하며 살던 입사 8개월 차 어느 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제 자신에게 향하는 칼부림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도망쳐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일이 오는 것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만둔다고 이야기할 용기는 없었는데 그 와중에 인생의 오점을 남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왜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는데 고민에 더 신경 쓸 에너지는 더 없었습니다.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다음 날 출근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따스한 햇살에 반짝이는 흐르는 천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살았다'는 안도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무 결정을 못하고 끙끙 앓았던 전날까지 현실의 공포와 마주하고 있었는데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적응하는 그 시간이 평화롭게만 느껴졌습니다. 나를 위한 포기가 이력에 오점을 남기는 것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아도 됐고, 비난하지 않아도 됐고, 죽음을 앞둔 것처럼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됐습니다. 포기하고 도망쳤는데 소중한 것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죠. 한참을 천변에 앉아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제 모습은 새로운 시작의 설렘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마세요. 하지만, 자신이 가진 어두움을 포기했을 때,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