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래도 살았습니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by 아메리 키노
엄마

30대 중반이 되어 가도 어머니보다는 엄마라고 부를 땐 마음이 더 따뜻하고 포근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뭔가 아련해지는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또 불러봅니다. 엄마... 엄마...

음력 7월 6일은 우리 엄마 오여사님 탄신일입니다.

아침 출근버스 안에서 엄마에게 축하 카톡을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주말에 출근하게 돼서 지난 주말에 동생과 함께 내려가서 식사를 하고 짝꿍이 보내 준 생일 케이크로 소소하게 축하파티를 해드렸습니다(여담으로 부모님께서는 아직 짝꿍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래도 짝꿍을 많이 예뻐하십니다). 미리 축하를 드렸지만 진짜 생일에 다시 축하 톡을 드리는 센스를 발휘했던 것입니다. 고맙다, 사랑한다고 표현하셔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표현 하시진 않으셨는데 유난히 엄마의 하트 이모티콘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행복하신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작지만 귀엽고 깜찍한 꽃 한 송이도 드렸습니다.

한 번도 이렇게 축하를 드려본 적은 없어 약간은 어색하기는 했지만 너무 이쁘다고 고맙다고 해주시는 엄마. 꽃을 좋아하는 엄마(그래서 카톡 프로필 사진도 꽃이죠)인데 꽃 선물은 언제 드렸는지도 모르겠네요. 다음에 내려가면 예쁜 꽃다발 선물도 드려봐야겠네요. 소녀처럼 좋아하시겠죠:)


이어 전송되어 온 10줄짜리 엄마의 톡은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처럼 그간의 쌓여있던 응어리이 그 짧은 문장에 모두 해소된 느낌이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도와 밭일, 집안일을 성심성의를 다해 해왔지만 속상하고 섭섭한 소리도 적지 않게 들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되어 치유되지 못하고 켜켜이 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할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감히 상상조차 못 하겠습니다. 말 힘들고 괴로웠을 텐데 묵묵히 인생을 걸어오셨습니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저녁에도 끝까지 시어머니를 내 어머니처럼 모시겠다고 정했다고 하시며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고 전화 너머로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엄마의 진심이 통했나 봅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네가 공들인 덕분에 아들(아버지)이 술을 끊었다", "항시 변함없구나"는 진심을 전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진심은 진심으로 통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혹한의 겨울, 마음 아프게 했던 눈이 오래도록 내려 쌓였다가 따스한 햇살 같은 말속에서 사르르 녹아내리지 않았나 하는 어리숙한 표현을 해봅니다. 아마 엄마에겐 더 크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일선물을 미리 준비한 것처럼 비정규직으로 현장일을 해오셨던 아버지가 정식직원이 되었다는 소식에 시어머니의 말이 떠오르면서 그 간에 쌓여있던 상처와 무게가 기쁨과 행복으로 전환이 되며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말이 주는 상처와 앞으로도 짊어져야 할 무게까지 끌어안으며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사명(使命)을 다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바뀌려고 하니 주변도 바뀌려고 하더라
너희들도 알다시피 그렇게 고생만 했는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지금은 후회는 없제


엄마는 주변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로 비유하자면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성실하면서도 평범한 모습의 주연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주연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결말은 언제나 '해피엔딩'이.

바깥 날씨는 뜨거웠지만 마음엔 훈기를 남기는 따뜻한 엄마의 생일 아침이었습니다. 마음가짐이 한순간에 특별해지는 출근길이 되었죠.

지금까지 살아내신 엄마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직장에서의 무게도 너무나 무거울 때가 많은데 엄마의 뒷모습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야 손톱만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엄마의 인생을...

항상 건강하세요 엄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