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주방에서 일하신 아버지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불 앞에서 요리를 하고 직접 배달까지 하셨습니다. 장사를 접고 현장일에 발을 내딛으셨을 때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억수같이 땀을 흘리고 바짝 햇볕에 탄 모습으로 퇴근하셨던 아버지였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라면 현재 하고 계신 현장일이 아니라 중화요리 사업을 하실 때지만 그때의 아버지를 찾아가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었습니다. 지금의 아버지께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여쭈어본다면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아온 저로서는 항상 일을 하고 있었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초록색병 때문에 집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도 깊게 긁힌 스크래치처럼 뇌리 속에 남아있지만요.
일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건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초록색 병은 그렇다 치고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일을 해오실 수 있었는지 그 마음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물론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말이 먼저 나올 것이라 예상되지만 젊은 날의 아버지의 그 괴로움과 고민들을 나눠보고 싶은 것이 제 질문의 포인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전까진 아버지의 생각들을 '들어봐야겠다'거나 '질문해야겠다'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걸까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듯 어렸을 때 부모님의 모습을 따라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부모님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했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작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에서 아버지와 텔레비전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직장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오갔었습니다.
"병원 일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일하는 형님도 40대이신데 계속하고 있으셔서 그때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무원 시험이나 이런 거는 해볼 생각은 없고?"
"글쎄요. 열심히 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몇 번 떨어지고 나니까 크게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
뜸을 들이시더니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현장에서 언제까지 일을 주고 맡길지... 길어봐야 3년 정도 남은 것 같다.
"......"
이번엔 제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한부 선고같이 느껴지면서 가슴 한 구석에는 찬바람이 부는 어느 골목길에서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작아지는 듯한, 느끼고 싶지 않은데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아직도 마음은 아버지께서 덤덤하게 요리하시는 모습에 멋있다고 느껴 별명란에 '짜장 아들'이라고 썼던 철부지 아들인데 어느덧 아버지의 사회생활 막바지를 직접 체감하게 되니 알게 모르게 빨리 흘러간 세월이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광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도, 자취방에 도착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도 확정 지을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당장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아버지의 그 한 마디에 다시 한번 저를 되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마디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아져서 독서와 글쓰기, 방송, 자격증 공부, 전공 공부를 조금씩 해나가고 있습니다. 본업과 병행해서 실천하기 쉽지 않지만 미래가 불안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장 없는 사람, 발전하지 않는 아들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듯이 아버지도 정식직원으로서 지금도 현장에서 가족들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하고, 온몸이 땀에 젖도록 일하고 계실 겁니다.
이젠 나는 끝났다 아들, 미안하다.
뭔가 먹먹해집니다. 혹여 이런 말씀을 하시기 전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매일매일 키워야겠습니다. 아버지가 쉴 틈 없는 인생을 사셨듯이 저는 하고 싶은 일들을 쉴 틈 없지만 물 흐르듯 지속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 살아내고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감격에 찬 아버지의 육성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