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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Jan 04. 2019

리장에서  

                       차마고도 옛길을 걷다


호도협 (Tiger Leaping Gorge). 중국 발음으론 후탸오샤.  세계적인  3대 트레킹 코스에 속한다는 데 믿을 수는 없다. 호사가들이 붙이기 좋아하는 수식어를 남발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코스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다만 왠지 관리가 부실한 오히려 불편함에도 마니아들만 찾는 코스로 한 번도 이곳을 경험하지 못한 트레커들에겐 그 같은 찬사가 잔뜩 환상만 심어 줄 뿐, 와서 보면 저장된 이미지와 차이가 있다.


 1박 2일 코스의 비교적 짧은 이 트레킹 코스는 대략 15~20킬로 내외이다. 까마득한 발아래 거의 제로베이스에 협곡을 두고 옥룡설산을 바라보면서 협곡 반대편 합바 설산 산허리에 수평선을 긋 듯 길을 낸 코스가 이 트레일의 전부이다. 관심 있는 벗들의 머릿속에 코스가 상상된다면 좋겠다. 대개 트레킹은 사실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다. 산으로 들어 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산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코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 도입부의 첫 구간을 넘어서면 마지막 지점까지 앞 동네 산처럼 옥룡설산의 뒤 자락을 지겹도록 보면서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리장의 해발고도가 2400m 정도인데 반해 이 트레일은 평균 1500m 정도로 오히려 평지보다 낮은 고도로 두툼한 옷가지로 무장한 트레커들의 옷을 벗기기에 충분할 만큼 기온이 온화하다. 그렇다고 해서 비상용 옷가지를 준비하지 말라는 소리는 무책임하다. 산에서의 기상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산신령의 영역이라서 예를 갖추는 편이 신상에 이롭다.

아직까지 소싯적 등반 경험을 평생 우려먹었다. 준비도 그렇고 산에서의 대처도 나의 경험의 틀을 벗어난 적이 없는 산행을 하였다. 경험이 곧 교과서이고 이전의 나의 행동이 현재의 지침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늙어가는 현재 진행형이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체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때 걸어서라면 지구 끝이라도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시절은 끝이 났다. 그저 조이고 기름치고 잘 정비해 운행해야 하는 낡은 자동차처럼 조심스럽게 굴러가야 그나마 팔자에 있는 수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시족들의 마을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이 구간의 가장 힘든 코스로 28 밴드가 있다. 동행한 아내와 배낭을 조랑말에게 맡기고 빈 몸으로 밴드를 오르면서 차오르는 숨을 어쩌지 못해 쉬고 또 쉬었다. 먼저 올라간 아내는 빈 몸이라서 펄펄 뛰며 오르는 날 상상했다지만 실상은 기다시피 한참 만에 밴드의 정상 2600m 고지에 겨우 올랐다. 떠나기 전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걷고 싶다던 간절한 욕망과는 달리 체력의 엔진 성능은 비례하지 못한다. 따라서 가끔은 이 끔찍함을 벗어나기 위해 고요하게 산에 안기는 꿈을 꾼다. 아무런 미련도 덧없는 욕망도 없는 오로지 산만 존재하는 그곳으로.

리장은 의외로 외국인이 드물다. 어디를 가나 중국인들 일색이고 간간이 눈에 띄는 노랑머리의 유러피언이 고작이다. 그중 한국인은 더욱 보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이곳은 마치 한국인들의 성지처럼 트레커 팀의 절반을 한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자신이 없고 그냥 그날만 그랬을 수도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리장의 트레킹 코스의 상업적인 선전의 효과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리장을 찾는 목적이 트레킹에 기반을 둔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이곳에서 만났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설명이 되겠다. 한국 사람들의 산에 대한 사랑은 가히 타고난 국민 성품이다. 산악 국가 언저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고 있는 우리가 이 먼 곳 나시족의 고향 리장에서도 또 산을 찾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강호 제현의 선생님들께 인사올립니다. 위 내용은 브런치 입성을 위해 2017.6.15 블로그에 작성된 글을 가져온 묵은 글입니다. 너그럽게 봐 주시기를.  








    트레일 입구.. 표지판도 없고  동네 마을 들어가 듯 길이 있어 오른다







     저 멀리 산허리에 희끗한 것이 길. 앞산은 옥룡설산 뒤태이다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










점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길은 가파르고 급기야 졸 졸 뒤따르던 마부와 흥정을 하게 된다. 밴드(고개) 끝까지 100위안에 합의를 보고 아내와 짐을 맡겼










헐떡이며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 옥룡설산의 봉우리들엔 운무가 바람과 함께 밀려왔다.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 산들은 바라보는 것조차 경이롭다










                    차마 객잔










                     차마 객잔




차마 객잔은 보기 드물게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설산이 펼쳐져 있고 창연한 기와의 질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돼 온다. 얼마나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주메뉴가 닭백숙이며 다음날 아침 메뉴는 자동으로 백숙에 익힌 쌀죽이 되었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곁들여 나오는 묵은 김치가 우리네 어느 시골 밥상에 올라온 오리지널에 전혀 밀리지 않는 내공을 자랑한다. 분명 한국 사람의 레시피가 그대로 전수된 맛이다. 백숙이 익어가는 동안 이곳에서 지친 몸을 씻으며 빨래도 하고 빈둥거리며 맥주를 마신다. 이곳에서 취한다면 헤어날 길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거처라 하기엔 신들이 섭섭한 산장이다. 생각 같아선 며칠이고 퍼질러 앉아 몇 마리의 백숙이라도 축내고 싶지만 다음날 약속이나 한 듯 트레커들은 떠난다. 결국 산장에는 적막이 찾아오고 만남도 떠남도 없었던 어느 봄날 춘몽 같은 세월만 남는다. 차마 객잔은 나시족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산장이다.














차마 객잔을 나선 다음부터는 오름도 없고 내림도 없는 길이 이어진다










                       중도 객잔 마을











 중도 객잔을 지나 마지막 구간을 향해 길은 이어진다










                      나시족의 마을










마지막 구간을 지나며 뒤를 돌아본 아득한 풍경      굿바이 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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