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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Jan 04. 2019

시엠레아프. 화양연화. 앙코르와트

           사라진 앙코르 왕국을 찾아서

캄보디아 왕국을 다녀왔다. 거주하고 있는 수린 지역과 캄보디아 시엠레아프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웃 도시라서 태국 선생들은  주말에 쉽게 건너가 며칠 지내다가 오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언감생심, 내게는 별도의 계획이 요구되는 여정이다. 참고로 이산 지역의 수린을 경유해 시엠레아프 앙코르를 가고자 한다면 수린 버스터미널에서 청촘 국경(chong chom border)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45밧) 국경에서 출국과 입국심사를 마친 다음 버스나 택시를 셰어 해서 타면 350~500밧 정도에 시엠레아프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앙코르 와트 여정은 방콕에서 시엠레아프를 거쳐 수린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노선을 잡았다.



 시엠레아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목적은 하나 앙코르와트를 보는 일이다. 목적이 단순한 만큼 입국도 단순하면 좋으련만 도착 비자를 내준다는 명목으로 30달러를 받는다. 그래도 국가 간 양해사항으로 관용여권의 경우 비자 없이 입국을 허용해주니 이처럼 고마울 수가 없다. 물론 30달러가 세이브되니 더없이  좋고 출입국 관리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입국장을 신속하게 빠져나오니 관용여권의 위력을 실감한다. 사실 수입을 올리기 위해 무조건 비자를 받아야 한다면 관용여권을 소지하고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이처럼 출입국 관리들의 재량권 앞에서는 따지고 할 여력이 없다. ( 똑같은 미얀마의 경우, 무조건 비자가 있어야 한다)



 환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공항 환전소에서 준비했던 30달러를 몽땅 캄보디아 화폐인 리엘로 바꾸었는데 머지않아 후회하기 시작했다. 다른 도시에서는 화폐를 어떻게 쓰는지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시엠레아프에서는 자국의 리엘은 잔돈에서나 쓰임새가 있고 공산품, 입장료, 서비스 등 모든 품목에 미국 달러로 가격을 책정해 쓰고 있다. 심지어 재래시장 과일 가게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달러가 좋기로서니 이처럼 철저하게 자국 통화를 무시하는 나라는 보다 처음이다. 결국 십몇만 단위의 리엘은 주머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마트에서 달러 표시된 물건을 다시 리엘로 환산하여 써먹기에 이르렀으니 이중으로 손해는 그렇다 쳐도 캄보디아 화폐가 안쓰럽고 불쌍할 정도다.



주제넘은 소리 한마디 하면서 앙코르를 빠져나와야겠다. 유적을 보는데 사전 지식이  꼭 필요한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앙코르 왕국의 도시와 사원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전략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앙코르를 마주하는 순간 엄청난 스케일에 압도되어 허둥지둥 이리저리 실속 없이 헤매어 다니며 마구 사진이나 남발하다 보면 정작 무엇을 봤는지조차 음미할 수 없다.(나의 경우가 그랬다) 생각보다 앙코르와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럴 때 벗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드린다면 이렇다. 관람 티켓의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 1일권이 37달러, 3일권이 62달러 ) 이왕 왔으니 3일권을 끊고 오직 앙코르에 매진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첫날은 설렁설렁 눈으로 익히고 다음날은 첫날의 본 것들을 되새김하면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까지 가슴에 담을 수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충분히 본전은 챙긴 셈이다.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족히 수백 년은 되었을 아름드리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 또한 싱그러움의 극치를 선사해준다. 그러니 시엠레아프의 다른 관광자원들 다 끌어모아도 앙코르 왕국의 유적과는 비교할 수 없이 격이 다르다.  


떠나는 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국경을 향해 달리는 택시 속에서 바라본 천수답의 드넓은 벌판을 가로지르면서 머지않아 이곳에 우기가 시작되고 바쁘게 움직이는 농부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지척에 동남아 제일의 호수 톤레삽이 있다 해도 속된 말로 컵이 없으니 마시지 못하는 천수답이 현재의 캄보디아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백성들의 고단한 삶은 나아진 적이 없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미륵의 세상이 있다면 신의 세계가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인간의 세계라는 믿음일 것이다.                                                                                                                   (2017.4.16)















화양연화...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 그렇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기에 슬프다.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영화. 2000년 개봉한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하였다. 그 뒤 재개봉을 반복한다. 양조위가 몇 살이던가 벌써 오십 중반에 이른 장년이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곳 앙코르 와트 어느 이름 모를 기둥 구멍에 비밀을 묻는 장면과 함께 첼로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이른바 앙코르와트 테마 (OST Angkor wat theme)이다.  영화의 여운을 잊지 못해 앙코르를 찾는 마니아들이 아직도 있다니 이 또한 놀랍다. 영화의 엔딩 자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해서 과거를 기억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일 뿐"

















 




              남쪽 측면에서 바라본 앙코르와트 전경









                                          

서쪽 방향이 정면 출입구로  해자를 건너 들어온다. 비슈누 신을 위한 힌두사원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보이는 건축물은 사암(sand stone)을 가공해 지붕 기둥 벽체를 만들고 내부는 라테라이트라 불리는 벽돌을 만들어 마감하였다. 사원의 크기가 동서 1.5km  남북 1.3km로 초대형의 건축물이다. 12세기 초에 건립을 시작해 무려 35년간이나 이 건축물에 매달렸다니 놀라우면서도 안타깝다. 학자들은 당시 이 곳 인구를  백만 명 정도로 추정하는 큰 왕국이라고 하지만 국가의 과도한 낭비와 백성들의 끊임없는 고초를 생각했다면 과연 이 같은 건축물이 필요했을까 종교라는 이름하에 저질러지는 지배자들의 만용에 절로 가슴이 아리다. 결국 왕국은 망하고 백성들은 산산이 흩어져 역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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