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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Jan 05. 2019

하노이의 추억


하노이에서 호찌민을 생각한다. 오래전 호찌민 평전을 보았다. 책도 책이려니와 두께도 만만치 않은 천여 페이지에 달하고 무려 이 책을 쓰기 위해 30여 년을 매달렸다고 하는 작가 또한 비범하지 않으니 그 내공 또한 만만치 않은 책이다. 아직까지 나온 평전으론 더  이상 비교할 책이 없는  걸로 보면 윌리엄 듀이커의 평전이 적어도 호찌민에 관해선 이 바닥을 평정하였다. 기억으로 연대기에 충실하면서도 인간 호찌민의 소박함을, 냉혈한 혁명가의 사상을 분석하는 지루함에, 때로는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에 질렸던 호찌민!!



언제부터인가 베트남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그것의 일 순위는 호찌민의 도시 하노이여야 한다는 믿음이 중국 리장 여행의 첫 관문으로 이 도시에 입성하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군데군데 아직 추수를 끝내지 못한 누런 논들이 보이고 주홍색 지붕이 숲 속에 점처럼 모여있던 도시 하노이. 작은 갤러리의 창, 낡고 붉은 벽돌, 좁은 가로와 긴 세로의 건물들, 조금 더 살이 찌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듯한 출입문이 하노이를 추억하는 모티브이다.  프랑스 식민의 잔재이긴 하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품위 있는 흔적들은 심플하고 모던하다.



이 도시에서 만 하루 반을 빈둥거리다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과 금요일은 호찌민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는 정중한 안내와 함께 베트남의 수호신이 사람들의 등쌀에서 해방되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미완의 전설과 신화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베트남이 동남아 쫄망쫄망한 나라들 사이에선 그런대로 대장 노릇을 한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아직도 고쳐야 할 병폐와  오랜 전쟁이 가져다준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하는 부담 또한 있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지도자 호찌민은 전쟁 이후의 베트남을 누구보다도 걱정하였을 것이다. 그 한 예로 전쟁의 한 복판에서도 젊고 유능한 젊은이들을 선발해 총칼 대신 적성국에라도 유학을 주선하면서" 싸움은 우리가 한다 너희는 전쟁 후의 미래와 싸워야 한다"라고 역설했던 지도자가 바로 호찌민이다.(사실 평전을 보면서 이 눈물 나는 광경의 대목을 만나리라는 기대를 잔뜩 가졌는데 유사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 전설이거나 후대에 끼워 놓은 조작인지는 모르나 그럼에도 그의 삶을 보건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지도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늘 이 도시를 떠나면서 다시 호찌민을 생각한다. (2017.6.7)



 



          










하노이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BUN CHA라는 국수다. 색다르다면 국수에 바비큐한 고기를 풍덩 담가 먹는데 고명이라 하기엔 어울리지 않고 고기를 먹는 방식으론 낯설다. 동서양 막론하고 SNS에서 떠도는 맛 집의 전설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로 유명 분차 집은 성황을 이룬다. 그럼에도 때때로 하노이의 음식을 생각하면 불편하다. 내가 만난 음식점에선 하나같이 음식에 대한 존경이 없다. 무릇 음식은 만드는 과정과 치우는 과정 모두 정성이 없다면  또한 먹는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없다면 그 음식이 진귀한 재료와 둘도 없는 황금의 그릇에 담겨있다 해도 쓰레기나 진배없다. 하노이 음식을 혹평하는 것은 점차 사람들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물질 지상주의의 복판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베트남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도심 한편에는 가난한 이들이 내몰린 거리가 있고 막막히 살아가야 하는 고단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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