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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Sep 03. 2019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허르헉의 진실

















양을 잡는 모습은 사뭇 경건하다. 그 옛날부터 양은 제물로 바쳐지는 단골 동물인데 죽어가면서도 순종적이다. 발악하지 않으며 자기를 해하는 주인의 눈만 멀뚱히 쳐다볼 뿐 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는다. 칼을 갈아 복부 위를 10 cm 정도 절개한 다음 오른손을 집어넣어 숨통을 찾아 조심스럽게  끊는다. 숨통이 끊어지면서 눈꺼풀이 풀어지고, 주인은 죽어가는 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살생한 손을 정성스럽게 닦는다.










지금부터는 손이 빨라진다. 다리의 관절을 자르고  껍질을 벗긴 다음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낸다. 그리고 등뼈의 중간을 절개하여 두 부분으로 나누어 게르 한 켠에 걸어두어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킨다.











이내 양은 가지런히 개켜진 가죽만 남기고 자신의 모든 것을 먹이로 내놓는다. 피는 피대로 살은 살대로 유목민들의 살과 피가 되는 양은 몽골인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 본격적인 허르헉의 축제를 위해선 말린 소똥을 준비해 불을 붙인 다음, 그 속에 강가에서 주워온 20개 남짓의 주먹만 한 자갈을 불속에 집어넣어 달군다. 대략 한 시간 정도면 돌은 벌겋게 달구어진다. 











이 통속에 약간의 물을 채우고 소금 간을 한 다음 당근 감자 마늘과 함께 고기를 넣는다. 중간 중간 달구어진 돌을 통속에 넣고, 마지막으로 보드카 한 병을 원샷하듯 밀어넣으며 입구를 천으로 싸매고 뚜껑을 닫는다












소똥의 잔불이 남아있는 그곳에 허르헉통을 올려놓고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면 끝이다. 밀폐된 통속에서 달궈진 돌들이 품어내는 열기를 볼 수 없지만 짐작건대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내부에서는 격렬하게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다리길 한 시간 반, 잔불이 꺼지면서 드디어 허르헉이 완성된다. 













통속을 열고 보니 의외로 모든 것이 평화롭다. 잘 익은 고기와 촉촉하게 양의 기름과 함께 익은 야채의 빛깔이 곱다. 









허르헉의 유구한 전통 중 하나인 통속에서 꺼낸 기름에 쩔은 돌을 손에 올려놓고, 이손 저손 옮겨가며 뜨거운 열기를 몸에 담는 의식인데 한결같이 하는 소리는 건강에 아주 좋다고. 그리고 철썩같이 믿는 것이다. 이제 드디어 허르헉을 먹는 시간이다.





                                      




커다란 양푼 두 개를 준비해  한쪽에는 야채를 담고 한쪽에는 고기를 담는다. 또한 수태채가 한 사발씩 곁들여진다. 고기를 뜯는 동안 통속에서 나온 고기 국물을 최고의 보양식이라며 특별히 건네주는데 맛보다는 주는 정성에 감복해 쭈욱 들이킨다. 어제까지 초원에서 발랄하게 뛰놀던 양이 한 줌의 고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정연한 초원의 질서에 숙연하다. 그렇다! 결국 모든 생물은 누군가의 먹이가 됨으로서 완성을 이룬다....      그건 그렇고  맛.은. 어.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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