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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Sep 24. 2019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수업 일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몽골에서의 세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매번 비슷한 패턴의 수업이다 보니 그것도 관록이라고 현장에서 긴장감이 사라졌다. 솔직히 정성스럽게 수업 준비를 하고 피드백을 거울삼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수업으로 준비하자던 고매한 슬로건도 잃어버린 채, 그저 지난 학기 수업을 반추하며 새 학기 실러버스를 만든다. 아주 교활하고 영악하게 어느 대목에서 쉬어가고 어느 대목에서 피치를 올려야 하는지 면밀히 검토한 끝에 결정한, 수업 모델만 남았을 뿐이다. 사실 나는 '지.루.하.다'라는 평판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때때로 자해를 일삼기도 한다. 또한 가끔은 부질없는 가치에 목숨까지 거는 어떤 면에서 무모하기가 지극히 나쁜 선생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선생 제일의 미덕은 끊임없이 정진하며 새로운 지평에 헌신해야 하거늘, 어느새 학생들로부터는 시작은 10분 늦게, 끝맺음은 10분 전에 땡 치는 쿨한 선생으로, 동료들로부터는 지겹지 않게 밥 잘 사는 스마일 선생으로 낙찰받고 싶은 욕구가 더 큰, 찌질이 선생이 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나쁜 선생이든 좋은 선생이든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있어봐야 고작 6개월 남짓.  바라건대  작지만 소중한 나의 신념마저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떤 핸디캡이든 역경이든 간에. 이제 이 학기가 끝나면 언제 다시 강단에 선다는 보장이 없지만 그동안 지껄인 어록이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가 되었으면. 또한 수업에서 만났던 모든 학생들이 세상의 비밀을 알려주는 경외로 움과  진정 내가 겸손하게 두려움을 갖고 만나야 했던 친구들이었다고 고백할 수만 있다면. 













 

여기 한 가여운 죽음이 있다. 한국어 전공자 중  꽤나 명석했던  몇 안 되는 나의 제자 겸 조력자가 세상을 달리했다. 자세한 병명은 알 수 없으나 이 사진을 남긴 날이 4.27 오후 2시 35분. 부족한 수업 시수를 만회하고자  주말에 야외 수업이라고 명명하며 학생들을 산으로 불러 모았던 날. 이제는 고인이 된 고 '미치드마'는 기꺼이 수업에  참가하였다. 돌이켜보건대  제 나라의 산천을 제 힘으로 걸었던 마지막 산행길이 되었을 것이다. 어찌하여 그대는 그렇게 서둘러 떠났는가, 마치  하염없이 조잘대는 새가 어디론가 급하게 물을 찾으러 가는 듯 말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6월 어느 날 지병이 악화되어  제 발로 들어간 병원 문을 나오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고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등록을 하지 않아 학교에서 수소문을 해보니 이런 황망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니 그 또한 안타깝다. 삼가 정중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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