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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Aug 23. 2019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㗳克什肯鎭(타커시컨) 국경이 거기에 있었네


몽골에서의 여름 (후기)




'유라시아 견문' 이란  소장 역사학자 이병한의 거대한 담론을 읽다 푹 빠져 버렸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텍스트로 삼아 곱씹어 재해석한 다재 박식한 그의 견문록은 조선이 어떤 세상과 만나야 되는지를 일깨워준 이들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나는 조용히 마지막 책장을 닫으며  날짜를 헤아려 본다. 며칠 남지 않았구나 여름이, 떠나려면 지금이다. 나의 존경하는 멘토 선생에게 날이 새게 무섭게 전화질을 한다. 그 뒤 몽골 국경 도시 자민우드행 기차를 예매하고  조직에 매인 몸이라  국외 휴가 승인을 득해야 떠날 수 있었다. 노선은 이미 오래전 그려놓은 로드맵에 붉은 선으로 지나갈 길만 표시하면 족한, 몽골에서의 마지막 여행길이다. 오늘 아침 몽골을 여행 중인 어느 낯선 이웃으로부터 오래전 포스팅한 고비행 버스 노선을 묻는 댓글을 읽었다. 비교적 미주알고주알 온갖 정보를 일러바치는 친절한 블로거가 되지 못한 나도, 가끔은 감정을 죽이고 실용에 무게를 실어 보낼 때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이 그렇다.  



  


                                              

 울란바토르 5:15 pm 출발, 다음날 오전 7:30 몽골 국경도시 자민우드역에 도착(요금 32600투그륵).일차 목표 거점 도시 내몽골 수도 呼和浩特(후허하오터)를 가기 위해 국제 버스에 오른다. 요금은 135위안(23,000원) 거리는 약 500km. 8시 정도 출발한 버스는 국경으로 이동, 출국 심사를 위해 몽골 출국장을 거쳐 중국 입국심사를 거친다. 아는 이는 알세라  중국 비자 서류는 불친절하고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다행히 관용 여권의 경우 30일간 무비자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국가 간 양해 사항이 있어 비자 없이 여권을 내민다. 드디어 여권에 '귀하의 입국을 허가함' 스탬프가 찍힌다.  출입국 심사에 대략 3시간의 시간을 잡아먹었다. 중국 국경도시 二連浩特(얼렌하오터)를 출발한 버스는 G55 고속도로를 따라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린다. 몽골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 생각도 머지않아 바뀌고 만다. 몽골의 가꾸지 않은 황량한 벌판을 보고 있으면 그대로 힐링의 늪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곳 중국은 사막이라고 그냥 있는 꼴을 보지 못한다. 어느 곳이나 가꾸고 관리를 거쳐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 여하튼 거대한 유채밭과 해바라기, 옥수수, 보리밭이 겹겹이 나타나면서  呼和浩特(후허하오터)에 이른다. 오후 5시 내몽골의 수도 후허하오터에 도착했다.











呼和浩特東站(후허하오터동짠)역은 시내에서 10여 km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시내에서 83路, 22路, 28路 등의 버스가 이곳 역사까지 들어와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묘하게도 이곳 역사 주변은 편의 시설이 전무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호텔 편의점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역사는 걸어서 조차 오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도심 속에 섬처럼 불청객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내몽골에서 이어지는 서부 신장지역의 불편함을 이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평생 고쳐지지 않는 오기 '갈 데까지 간다'에 힘입어 우루무치(鳥魯木齊) 행 기차표를 끊고 말았다. 그것도 입석으로. 기차 번호 Z179 요금 285.5위안  출발시간 06:22분 am . 우루무치 도착 다음날 11:00am.










입석표를 남발한 중국 기차를 원망해야겠지만 Z179 베이징발  우루무치행  기차는 최고 시속 100km 남짓한 속도로 얼추 2000km 이상을 30시간에 거쳐 달린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침대칸 없이 통로를 중심으로 3명씩 앉는 두 줄의 의자가 전부이다. 그 딱딱한 의자마저 건지지 못한 입석객들은 한평 남짓한 흡연실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갈 수밖에 없다. 단 한 가지 좌석보다 유리한 경우가 있다면 화장실이 바로 붙어 있어 언제든 마음대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그러나 이곳도 그 좁은 바닥에서, 엉덩이 하나 걸칠 공간의 쟁탈전이 벌어지니 감방이 따로 없다. 이곳에서 30시간을 버틸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은 다름 아닌 생각을 고쳐먹는 것, 즉 적어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소 일이 내일이라고, 내일.. 내일 아침이면 이곳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차는 바오터우, 린허, 후이능, 인촨, 중웨이,우웨이,진창, 장예, 자위관, 리우위엔, 하미, 산산북부, 투루판, 드디어 저 멀리 천산의 만년설의 고장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위 사진은 이 기차 안에서 유일하게 동지애를 갖고 교류한 우루무치 소년, 청년들이다. 난 이들과 짧은 중국어에 실어 한국어를 소개하면서  웃고 떠들며  너덜너덜한 시간의 누추함을 겨우 날려버렸다. 












우루무치에서 격은 일들을 구구절절 적다 보면 한 권의 소설집이 될까 두렵다. 어디까지 도려내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할지 사실 기억하기도 무섭다. 여하튼 수중에 중국 위안화는 거의 바닥을 보이는데 당연히 평일이라 환전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그날이, 국경일이라고 모든 은행문이 닫혀 있으니 어디 가서 중국 돈을 구해 숙박비를 내고 차비를 감당한단 말인가. 온갖 짱구를 굴려 말이 통할 것 같은 젊은이를 타깃으로 삼아 찝쩍거리기를 수 회, 결국 어느 누구의 도움으로 30불을 환전하는데 성공한다. 환전 금액은 200위안. 참 대단한 성과물이다. 이곳에서 더 이상 지체하다간 죽도 밥도 안되겠단 판단에 몽골로 향하는 중국 국경 㗳克什肯鎭(타커시컨)과 가장 근접한 靑河縣(칭허)로 가는 버스 표를 끊기에 이른다.  출발시간 20:20pm  도착시간 다음날 8:00am 요금 150위안.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과 환전이 이뤄졌는지 벗들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겨우 국밥에 밥 말아 먹고 중국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절박감을 안고 버스에 오른다. 침대버스는 푹신하고 아늑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미 우루무치부터 꼬리표 달린 외국인이었던( 우루무치에서 단 한 명의 외국인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중국 공안의 수중에 포로였던 셈이었다. 靑河縣(칭허)까지 가는 동안 검문검색 다섯여 차례, 엑스레이 투시기 통과는 기본, 카메라와 휴대폰의 사진 검열 기본, 똑같은 패턴으로 칭허에서 타커시컨 국경까지 또  검문검색이 촘촘히 이뤄진다. 사실 칭허에서 국경을 통과하려는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나였다. 나머지는 칭허현 동네 사람들. 결국 국경까지 버스를 타고 가긴 했지만 전적으로 감시의 눈길을 번뜩인 공안들의 공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국경을 넘을  수 있었을까.. 지금 신장은 홍콩과 더불어 가장 보여주기 싫은 중국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 뒤 나는 공안들의 도움으로 㗳克什肯鎭(타커시컨) 국경을 넘어 몽골 헙드아이막 볼강솜 국경으로 무사히 넘어왔다. 몽골의 국경을 넘기 전 타커시컨 국경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5:00pm 발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발도 하고 수염도 싹둑 잘랐다. 왜냐하면 식당에서 몽골 말로 내게 말을 걸어준 이가 몽골족 중국인, 국경의 이발사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세상에 가족이라곤 없는 외로운 알콜쟁이(본인이 그렇게 불렀다) 이발사가 머리를 감겨주고 면도를 해주는데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 그냥 잠들고 싶었던 이발소에서, 순간 한없이 행복했다. 아마도 머지않아 다시 몽골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오버랩되면서 흥분이 몰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그때는, 그간의 행적을  미화하는 세탁기에 지난 시간들을 마구 돌리며, 머리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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