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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Feb 11. 2020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귀국 ... 그대가 있어 행복했다 ...  작별 인사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이 와중에 귀국을 맞는다. 학교는 휴교령으로 기약 없는 신학기를 보내고 있고,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공연, 극장, 축제는 무기한 연기로 문을 닫아걸었고, 어쩔 수없이 거리를 나서야 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로 무장을 한 채 불안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작금에 귀국을 준비하고 있다. D-2 일 차, 거래 은행의 계좌를 닫고, 마지막 행선지로 사무소에 들러 최종 보고서를 제출한다. 악수도 생략한 어색한 작별 인사를 고하며, 바이러스가 불러온 불온한 시절의 이별을 끝으로 공식적인 몽골에서의 활동은 끝이 났다. 무심한 세월을 조롱이라도 하듯 오늘, 몽골의 날씨는 더없이 화창하고 햇살은 따스해, 처음으로 장갑을 벗고 털 모자도 벗어던진 채 질척거리는 보도를 하염없이 걸어간다. 그대, 이제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하는 추방자의 귀환이라도 된 듯,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몽골의 마지막을 추억한다. 

처음 몽골을 기억하건대 드넓은 초원 위에 드문드문 몇 개의 게르가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울란바토르의 풍경은 심플하면서 도심답다. 있을 것은 다 있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적당히 갖추어진 매력 있는 울란이다. 이곳에서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다. 여행도 원 없이 했고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꼬드겨, 보고 싶은 풍광에 동참했다. 그러나 다정도 지나치면 병이 되는 것인가 어느 순간 곁을 돌아보니 다 떠나고 없다. 그 빈자리가 너무 크고 선명해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며 남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너무 과하게,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면, 즐거움에도 치러야 할 대가는 반드시 있는 법. 몽골은, 때로는 덧없이 펼쳐진 황량함에 함몰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잔인한 구석이 너무 많았던 곳. 

벗들이여, 나는 실패했다. 그것도 처참하게. 이곳에서 좋은 선생이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다짐했건만 떠나는 마당에 돌아보니 그저 희미한 흔적만 있을 뿐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세월만 축낸 늙다리 초라한 선생만 남아 있다. 대저 좋은 선생이란 무엇인가? 옛말에, 오로지 알고 있는 '재주'를 파는 선생은 하수라 했고, '지혜'를 줄 수 있다면 그다음이요, '영감'까지 줄 수 있다면 상수라 했다. 그러나 2년 동안 허겁지겁 주어진 수업, 소화하기에 급급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좋은 선생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강단을 내려온 꼴이다. 학생들에겐 더없이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만 들 뿐, 어여 이 강단을 내려와 나의 본업인 노가다 일로 남은 시간 보내는 것도 그나마 교단에 폐를 덜 끼치는 수단이 될 것이리라. 

어찌 되었든, 물심 양면으로 열악한 교육 환경에 동참하며 같이 참여해준 선생들이 있어 겨우겨우 만기를 채웠다. 수요는 많고 몸은 하나인지라, 딴에는 잔머리 굴려 수업을 쪼개고, 필요하다면 때로는 들로 산으로 보충 수업이란 미명하에 선생님들을 징발해 그들의 노고를 빌렸다. 가는 마당에 생각해보니 그것도 다 부질없는 짓, 의욕은 가상했으나 내세울 만한 성과를 확신할 길이 없고 두고두고 갚지 못한 신세만 남아 있을 뿐. 대신, 그대들이 남겨 논 따뜻한 온기는 언제까지나 기억하겠다. 풍진세상 벗들의 건투를 빈다. 그리고 늘 행운이 있기를. 





    


'PARASITE'(기생충) .... 고백하지만 기생충이란 영어 단어를 무식하게도 알지 못했다. 오늘 확실히 또 하나 배운다.  코로나바이러스만큼이나 낯선, 동방의 작은 반도의 영화가 무비의 지존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의 '오스카' 축제에서 거의 알짜배기 상을 싹쓸이하는 충격의 날이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기여한 바는 없지만 봉준호 사단과 함께 마음껏 이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셔도 좋으리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또 하나의 어록을 장식하는 날, 더불어  홀로 술상을 차리고  파티를 한다. 돼지고기를 볶고, 샐러드를 만들고, 몽골의 국민 술 보드카와 가성비 최고인 생구르 화이트로 폭탄주를 제조해, 벗도 한 잔 나도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며 거나하게 퍼마신다. 봉준호도 오늘은 마음껏 이 밤이 새도록 마시겠다고 세상을 향해  공표한 날, 덩달아 나 역시 호기롭게 술잔을 채운다. 비록 내일 온종일 뻗는다 해도 오늘은 역사적인 날. 이까짓 일은 대수도 아니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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