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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Nov 25. 2019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몽골 올레길에서


드라마 'The Crown'에서  영국 여왕의 남편 에든버러 필립 공의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신앙을 잃어버렸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는 나도 가슴이 뜨끔하며 막연한 동지애를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신심이 부족한 나는 제아무리 좋은 설교와 감언에도 불구하고 신앙적으로 '천선'은 커녕 '개과'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불구의 종교 생태를 고백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난 교회당보다는 산을 선택해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고 길을 나선다. 어쩔 수 없이 가는 길이 교회당 앞을 지나치는 노선이라 일말의 가책을 잠시 감수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멀쩡하게 하루를 잘 지내는 강심장이다. 따라서 교회법을 공공연하게 위반하는 내버린 자식 즉 '탕아의 현대판 버전'이라 꾸짖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런 나에게 하염없는 하늘의 축복은 절정이다. 나 역시 화답이라도 하듯 화창한 날씨와 바람 한 점 없는 올레길에서 흘러간 옛 노래를 메들리로 엮어 바치며 찬미를 더해간다. 보는 이도 듣는 이도 없는 무대에서 가지껏 볼륨을 올리고 애절한 바이브레이션까지 곁들이니 이 또한 하늘님 보시기에 갸륵한 정성을 어찌 마다 할 수 있겠는가  아~아~ 사랑~ 애달픈 내 사랑아~~ 어이 맺은 하룻밤의 꿈~ 다시 못 올 꿈이라면 차라리~~ 블라블라. 몽골 올레길은 이미 잊혀진 계절이고 지워진 길이다. 내 이 길을  얼추 2년 전 몽골에  입성하면서 인터넷을 뒤져 딴에는 열심히 춘삼월부터 초겨울까지 십 수차례 이 길을 걸었건만 단 한 사람도 동행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이 올레길은 오로지 나의 전세 낸 산책로이자 심신을 단련하는 전용 훈련 길.

오늘 나의 올레길에서  처음으로 말을 탄 처자와 아버지쯤으로 보이는 몽골 아저씨를 만났다. 능선 위에 검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과 그 뒤를 따르는 아저씨가 있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올레길에 멈춰 서서 기다린다. 단 한 사람도 이 길에서 만난 적 없고 관심을 가진 이도 없었는데  막상 사람을 만나니 겁부터 난다. 어떤 사람들일까.. 왜 가던 길을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는 것인가.. 황급히 어색함을 날려줄 인사가 필요하다. 이럴 땐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해야 더욱 효과가 좋다.

 샌. 베. 뇨~~^^(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저씨와 앳된 처자가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동여맨 채 인사를 한다. 만나고 보니 더없이 다정다감한 아저씨이다. 안도의 숨도 뿜기 전에 아저씨는 나의 국적과 뭐 하는 사람인지, 신속히 즉결 신원 조회를 마친 다음 안심한 듯 말을 선뜻 내주며 오르기를 재촉한다. 예의상 손사래를 한 번 쳤다. 재차 말에 오르기를 권하는 아저씨의 동작에 맞춰 등자에 발을 끼우고 올라타 가볍게 채찍을 휘두르니 제법 말 걸음이 빨라진다. 덩달아 고삐를 잡은 아저씨도 마구 달린다. 문득 말을 타고 보니 돌아갈 날이 보인다. 왜 이 생각을 진작 못했지... 이렇게 좋은 길이 있었고, 애완 말 한 마리 키웠다면 제법 근사한 나의 몽골 올레길이 남았을 터인데.. 생각은 파도처럼 저 능선을 넘고 또 넘는다. 어느새 아저씨와 헤어질 지점이 왔다. 짧은 만남. 다시 걸음을 재촉하며 길을 떠난다.                                                                                       

  (참고로 몽골의 말값은 백만 원 정도면 꽤 쓸만한 말을 살 수 있다.) 





    

역시 몽골 사람들의 말 타는 모습은 기품이 있다. 말채찍을 말 등에 찍고 폼을 재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나저나 사진을 찍긴 했는데 전해 줄 연락처를 묻지를 못했다. 산 아래 저기가 사는 곳이라고 해서 눈 돌려 보니  몇 가구 남짓한 작은 동네이다. 더 추워지기 전, 술 한 병 꽤 차고 사진을 핑계 삼아 나들이를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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