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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Oct 31. 2019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겨울 갈무리  '말 잡는 날'

영하 십 수도를 오르락거려도 몽골의 겨울은 아직이다. 몽골 겨울을 아홉 마당으로 나눈 첫 마당이 시작하려면 아직 달포는 (12월 20일경) 남아 있기에 굳이 계절을 구분한다면 늦가을 정도이다. 그러나 낯선 이방인은 한겨울 못지않은 추위와 변화 무쌍한 예기치 않음에 놀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멀쩡하던 날씨가 꾸물거리더니 급기야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전에  사정없이 눈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울란바토르를 감싸고 있는 투브 아이막 버르누르솜의 깊은 산속.  겨울 식량을 갈무리하기 위한 ' 말 잡는 의식'이 있다길래 꼭두 새벽부터 부산을 떨면서 그곳에 도착했다. 먹거리를 위해 도살하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하겠냐마는 몽골 사람들의 오랜 풍습을 엿본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일었고, 우리네 김장을 연상케하는 4자매 가족들의 겨울 갈무리 풍경이 자못 궁금했다. 덩치가 큰 말을, 먹기 위해 잡는 의식은 조금 특별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칼잡이도 그렇고, 자매들도 그렇고, 한바탕 유쾌하게 도살을 끝내고 살덩이 한 점 남김없이 현장을 정리하면서 막을 내린다. 도살에 대한 약간의 불편한 심정은 가당치 않은 우리네 기우일 뿐, 유목민들은 배추를 다듬고 대파를 손질하듯 가죽을 벗기고 살점이 손상되지  않도록 뼈를 발라낸다. 어쩌면 유목 사회에서의 도살의 의미는 주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축의 마지막 보시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죽음이 곧 삶의 완성인 셈이다. 그곳에서 돌아와 그때의 감흥을 학생들에게 장황하게  설명했더니 이구동성으로 한다는 소리가 그렇다. "그거 보자고 거기까지 갔다고요?" 






투브 아이막 버르누르솜은 다르항 가는 길 중간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이 깊은 산중 초지에서 마지막 풀을 뜯게 한 다음, 주인은 말의 고삐를 잡아채고 집으로 향한다. 말들도 오감이 있는지라 발걸음이 가볍진 않다.



주인의 애마와 함께 칼잡이를 기다리는 시간. 닥쳐올 순간이 어떤 모습일지 두렵기만 한데 눈발은 점점 굵고 거세진다.



한편, 게르 안에선 수석 칼잡이가 다른 마을에서 초빙한 칼잡이들을 기다리면서 칼을 갈고 다듬는다.  




 드디어 거센 눈 속을 헤치며 칼잡이들이 도착했다.  



한 잔의 보드카로 목을 축이자마자 간택된 말을 끌고 와 두 앞다리를 묶고 자빠뜨린 다음, 



나머지 뒷다리도 묶어 옴짝거리지 못하게 단단히 결박을 한다. 이제 발버둥을 쳐 봐야 소용없는 일. 조용히 칼잡이들의 처분만 기다리면서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목덜미 숨구멍을 향해 날쌘 칼이 들어오면서 눈꺼풀이 풀린다.  



곧이어  심장에서 이어진 가슴팍 대동맥에  잘 갈린 비수가 꽂히면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세 명의 칼잡이들은 각각 영역을 정해 일사불란하게 가죽을 벗겨내고, 



간간이 근엄한 표정으로 칼질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관중을 의식한 듯 환한 웃음으로 답례를 취한다. 



이제 얼추 가죽과 고기가 분리되면서 부위별로 자를 일만 남았다. 



수석 칼잡이는 준비된 밧줄로 매듭을 만들어 달아맬 준비를 하고




순식간에 해체된 말은 본격적인 고기의 모습으로  매달려 있다. 



한쪽 귀퉁이에선 수석 칼잡이의 아내 되는 분이 4 자매와 함께 내장을 손질하고, 칼잡이의 칼이 단단한 척추를 분리하면서 해체 작업은 끝을 맺는다.



작업을 마친 늙은 칼잡이의  브이 자를 그리는 손이 반쯤은 얼었다. 이들이 받는 일당은 한사람당 20,000투그륵(10,000원 정도) 



작업용 깔개처럼 제 몫을 해준 말 가죽을 개켜 넣고,



겨울을 나기 위한  말 한 마리 갈무리가 마무리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말고기는 몸을 덥게 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겨울이 시작하기 전  식구들에게 보약처럼 먹인다는데, 그 효능은 잘 알 수 없지만 먹는 사람이 철석같이 믿는다면 그것처럼 좋은 보약이 어디 있겠는가. 그나저나 눈구덩이 속에  엎디어 먼 산만 바라보는 게르의 집사 격인 '몽골개' 는 도무지 일어설 줄 모르고 하염없는 눈발 또한 그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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