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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Apr 01. 2021

노가다는 나의 벗(3)

빗속을 달리는 연휴

노가다를 제대로 된 일자리로 쳐주지 않는 몇 개의 특성 중 단연 첫째는, 비 오면 쉰다는 점이다. 당연히 무급휴일. 휴무를 결정하는 담당 나리들은 빗줄기의 굵고 가늠을 측정하고, 언제까지 지속할지 여부를 위해 짱구를 굴리겠지만, 대략 출근  한 시간 전쯤이면 결판이 난다. 지난 주말 오후부터 추적거리는 봄비가, 엉겁결에 이런 연휴를 만들어 주었다. 계약 특례조항으로, 지정된 휴일이라 해도 산불이 발생하면 출근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해서 밤낮을 넘어 잠자리에 들 때라도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비상출동' 신호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진화대원들에게, 마구 쏟아지는 빗줄기라면, 산불 발생 확률이 제로대로 떨어지니 나들이 떠나기에 이처럼 좋은 날이 없다.



 질척거리는 산행 대신 운전대를 잡고 가지 것 악셀을 밟아본다. 대략 이삼 초 간격으로 빗물을 쓸어내는 와이퍼로 볼 때,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칠 줄 모르던 봄비.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 나를 울려주는 봄~비~ .. 이내 차는 도심을 벗어나 홍천을 지나 강원도 최북단 고성을 향한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어느 순간부터 와이퍼의 뻑뻑한 굉음이 들리더니만 산천에 쏟아지는 햇살로 눈이 부시다. 정확히 진부령을 벗어난 지점쯤에서. 옳거니~ 영동지역은 아직도 봄비 맛을 보지 못했구나. 얼씨구?? 저 멀리 저 사람은 또 누구인가, 차량에 삼각형 산불 깃발을 달고 열심히 근무 중인 동업자을 만나다니.. 이처럼 영서와 영동은 백두대간을 경계로 노가다마저 달리한다. 작은 땅덩이에, 날씨만큼이나 먹고사는 일 조차도 딴 판인 세상. 



봄비야~ 주말마다 쏟아붓거라.








건봉사 ...   저 구름 너머가 남방 한계선.  강원도 고성 거진, 금강산 끝자락에 위치한 건봉사에도 봄이 왔다. 그 옛날 명성이 밥 먹여주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건봉사의 인심은 후하다. 오가는 길손 누구라도 밥 한술 청하면 기꺼이 내 줄 줄 아는 절집. 육이오 사변 통에 600여 칸 절집이 아작나고, 겨우 1990년대 들어서야 복원이 시작되었다. 허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절 사람들 자부심이 있다면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바로 곁에 두고 있다는 점일 것. 남북이 적대를 종식하고 서로 왕래라도 할 수 있다면 중흥이 앞당겨질까, 지금은 신흥사 말사라도 마다하지 못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수십 킬로만 더 투자한다면 북한 땅 통천이다. 강원도 통천은 처의 어머니 즉, 장모님의 고향. 육이오 난리통에  잠시 피신해, 곧 고향으로 되돌아갈 것 같은(장모님 계산으론 열 사흘 정도였다니) 세월이, 꽃다운 청춘을 지나고 지나,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이 절집도 동란의 고스라이 피해자, 동병은 상련이던가.. 그전에는 빨갱이 트라우마로 아예 이곳에 얼씬거리기도 주저했던 당신이, 이제는 그 옛날을 회상하며 파안일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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