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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Mar 19. 2021

노가다는 나의 벗(2)

원주 본청 산불 진화대 대기실에서 ​

잘 찾다 보면 노가다 일거리는 도처에 널려있다. 일월은 그해 관아의 일당 잡부직을 모집하는 공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홈페이지를 도배한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공고를 접했다. 접수 1.8~1.14, 체력검정 및 면접 1.21, 선발 확정 1.22, 근무기간 1.26~6.30  9.1~12.30.일당 노임 69,760원. 진화대 업무 첫째는 산불진화 및 뒷불 감시, 산불요인 사전 제거가 그 주요 임무. 서둘러 올레길을 마감하고 막차로 응시한다. 순서를 마친 이제는, 기라성 같은 고참 대원들을 모시고 열심히 진화대 잡부 문졸(門卒)로 충실히 근무 중이다. 

좀 그럴듯한 산불 진화 무용담이라도 벗들에게 소개할 요량으로 한 달여를 기다렸다. 그럼에도 안타깝지만(?) 산불의 봉화는 올라오질 않는다. 삼사월이 산불의 빈도가 가장 높다는데 올해는 초반전에 안동 예천 대형 산불의 학습 효과 탓인지 아직까지 원주 지역은 잠잠하다. 좀 안된 얘기지만 사고, 재난을 먹고 사는 방재 요원들은 이 무료함을 내공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대기실 좁은 공간에서 천연덕스럽게 코를 골기도 한다. 선배들 말을 빌리자면, 이러다 어느 순간 상황이 발생하면 진상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그 한 예로, 퇴근 무렵 출동 명령이 내려진다. 플래시에 의지해 소방호스를 현장까지 운반하고 밤새워 방화 진화선을 구축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걸 보면, 언젠가는 신참도 겪어야 하는 당연히 찾아올 일.

재난에 대비한 산불 상황 시스템에 대해 몇 가지 사족을 소개한다. 산악 국가인 한국의 산불에 대비한 시스템은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구조 또한 단단하다. 소방청은 예외로 치고, 산림청 산하 산림 항공본부에서 운영하는 산불 진화용 헬기가 산불 잡는 일등 사수다. 겨울철이면 꽁꽁 언 호수의 얼음을 잘라내고( 엔진톱으로 사방 수십 자의 물구멍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그곳에서 순식간에  물주머니를 담가 담수를 한 다음, 산불 진화 현장에 쏟아붓는다. 마치 전쟁터 포병 자주포 정도의 위력으로 산불의 기세를 꺾어 놓으면, 그다음 개미 떼처럼 소총을 든 진화대원들이 소방 호수를 끌고 현장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빈약한 개인 진화 장비로 주불에 접근하는 것은 자살과 다름없다. 산불이 올라가는 능선 뒤에서 더 이상  불길이 번지지 못하게 방화 진화선을 구축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첨단 시스템을 장착한 헬기라도 해 떨어지면 무용지물. 오로지 이때는 진화대원들의 몫이라니 스스로 하잖다고 얕볼 일은 결코 아니다. 이 시스템에 빌붙어 먹고사는 쪽수가 줄잡아 수천 명. 산불 감시원, 의용소방대까지 포함한다면 족히 일개 사단 병력 정도는 산불에 대비한 가용인력인 셈이다.  

오늘은 어느 산 어느 산불을 잡으러 출동을 할까... 무심한 봄날, 풍진세상 벗들의 안부를 묻는다. 





   

 치악산 영원산성에 눈이 내렸다.  해발  900여 m 고지,  능선을 따라 석축을 쌓아올린 산성 길은, 주능선인 향로봉, 남대봉으로 이어진다. 첩첩산중 이곳에서 임진년 왜란 당시 원주 목사 김제갑이 군민 4000여 명을 이끌고 일본 정예병과 맞짱을 떴던 곳. 결국 김제남 목사와 아들은 전사하고 부인은 자결로 생을 마감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이 산성 길은 추억이 서린 곳이다. 아주 오래전 한창 산에 미쳐 싸돌아다닐 때 그날도 폭설이 내렸다. 김인태, 김경숙, 그리고 이 몸, 세 사람은 폭설을 헤치며 이곳을 올랐다. 영원사에서 점심을 하고 빤히 올려다 보이는 주능선을 향해 고군 분투했지만 결국 능선 길을 찾는데 실패했다. 석축을 쌓아올린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골짜기의 위엄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득하기 그지없는 영원산성 길.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옛 친구를 회상한다.  봄이 왔다지만 적어도 내겐, 아직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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