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탕갈레에서 전합니다. 한국만큼 다이내믹하며, 한국만큼 풍성한 먹거리에, 한국만큼 다양한 뉴스를 생산하는, 작지만 세계무대를 영토 삼아 변모하는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하나뿐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소위말해 '국뽕'(국가+히로뽕)이라 불리는 자국만이 최고라는 국수민족주의의 초기단계에 돌입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곤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곳 스리랑카는 너무 심하게 지켜지는 국가 기념일과 성스럽게 쉬어야 하는 휴일이 너무 많아, 도무지 어느 한곳에 집중해 무엇을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하는지 종종 길을 잃기도 합니다. 긴 새해맞이 휴가를 끝내고 2학기 첫 수업을 진행한 날, 25명의 학생 중 단 2명만 수업에 참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답니다. 굳이 합당한 이유를 더 붙이자면, 아직 집안 행사가 덜 끝난 탓이라고 학교 측은 말하더군요. 우리 생각과 많이 다르지요. 그래서 저 역시 죽기 살기로 안달복달하며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로부터 조금은 자유롭게 풀어주는 생활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4월, 새해맞이 휴가를 받아 급하게 서둘러 이 작은 실론섬을 벗어나 인도를 다녀왔지요. 이곳에 올 때부터 계획에 있긴 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여행을 준비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타고난 역마살 덕분으로 일주일 만에 인도 전자비자를 신청하고, 뱅기표 티켓팅에, 숙소 예약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배낭을 꾸렸습니다. 목적은 단 두 개. 첫째는 뉴델리에서 수천 킬로 떨어진 인도 남부의 가장 큰 도시,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첸나이까지 기차를 타는 것. 그리고 그곳 기차칸에서 2박3일(34시간)을 버텨줄 읽을 책,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 장편 소설책을 기관 도서관에서 빌려 만반의 준비를 했습지요. 둘째로, 돼지 국밥을 안주 삼아 한국인의 술, '소주'를 마시는 상상을 인도 여행 목적에 당당히 올렸습니다. 결국 작은 소망 두 가지는 거의 완벽하게 이룬 여행이 되었답니다. 두꺼운 소설책은 때로는 베개대용으로, 때로는 심심풀이 읽힘의 대상으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고요, 첸나이 한식당 냉동고에서 방금 나온, 하얗게 김서린 초록색 소주병은 그간의 모든 시름을 잊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입가에 군침이 절로 나오는 추억을 안고 왔지요. 참, '문화'라고 하는 것이 이처럼 대단한건가요 얼마나 사무쳤으면 그 반가움에 호들갑을 떨다 소주병을 놓쳐 엎어지면서 몇 모금을 테이블에 흘렸는데, 정말 인기척만 없었다면 쭉쭉 빨아먹을 듯 눈물 나게 아까웠답니다. 그러니 벗님들이여, 우리 소주 있을 때 많이 많이 사랑해 주시라고요.
또 하나 벗들에게 고할 것이 있다면 거처를 옮겼답니다. 수일 전. 이곳 규정상 6개월 단위로 숙소 계약을 하는 바람에 생겨난,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랍니다. 무슨 말인고하니, '남은 4개월 7일'의 숙소 계약을 찾아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중 높은 담, 육중한 철문 뒤에 감춰진 한적한 숙소를 찾았답니다. 주인은 바로 옆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노부부로, 족히 300평은 됨직한 부지 위에 숙소 5개의 룸과 거실, 낡았지만 냉장냉동 실력만큼은 여전한 냉장고와 함께 조리용 가스시설, 싱크대, 식탁이 구비된 넓은 공용 부엌을 보는 순간 '여기가 내집이다' 하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이 몸을 홀린 것은 긴 잔디밭을 따라 이 숙소의 경계지점에 다다르면, 철망 펜스에 바닷가와 바로 붙은 작은 쪽문이 나오는데, 이 몸만 그 문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 그러니 계약을 안 하고 배기겠어요. 서둘러 계약을 마치고 이제는 제법, 주인 행세를 하며 철석이는 파도와 친구가 되었답니다. 파도도 혼자, 이 몸도 혼자, 이곳에서 학교 파하고 돌아오면 빤스만 입고 첨벙 바닷가로 직행하는 몇 달이 될 듯합니다. 살면서 행운은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답니다. 벗들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모두 강건하시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국민이 되는 꿈을 꾸시기를 기원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