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침묵에 길들여진 나
무서운 건 그 사람의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그 침묵에 익숙해져 버린 내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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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19일의 기록.
그날 나는 큰 아이의 홍역 예방 접종을 위해, 겨우겨우 4만 원의 현금 서비스를 받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약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허망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의 나는 너무 여유가 없어서 , 예방접종조차 미루고 미루다 타이밍을 놓쳐버린 그런 엄마였습니다.
점심 무렵, 하나넷에서 받은 외식 상품권 만 원으로 아이들과 함께 피자헛에 들렀습니다.
도리아와 스파게티, 그리고 네스티 한 잔.
아이들은 너무나 잘 먹었지만, 나는 배가 고팠음에도 차마 그 음식에 젓가락을 뻗지 못했습니다.
빈 속을 네스티 몇 모금으로 채우고 일어섰지요.
오천사백 원, 그 돈조차 내게는 사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카드를 꺼낼까 고민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날의 나는 철저히 '엄마'였고, 철저히 '나'는 없었습니다.
그 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예방접종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그때는 주말부부였기에)
그러자 돌아온 말은 단 한마디였습니다.
"내일 봅시다."
그 말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 감정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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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그땐 내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법조차 몰랐습니다.
그래서 슬퍼할 줄도, 아프다고 말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는 늘 그랬습니다.
화도 내지 않았고, 공감도 없었습니다.
무심한 그의 반응에 상처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그런 그의 말투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위로받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감정의 대화 없이, 상황만 흘러가는 삶이 너무 익숙했습니다.
그 익숙함 속에서 나는 조금씩 말이 없어졌고, 눈빛이 흐려졌고, 존재감도 사라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바라보면, 참 많이 안아 주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야 했던 내 상황이 이제야 이해되기도 합니다.
나는 늘 가족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배부르게 먹는 걸 보며 배를 비운 날들도 있었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 했던 그날의 선택들이 지금 돌아보면 안쓰럽고, 또 눈물 납니다.
그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을 돌보는 데 너무 서툴렀습니다.
'엄마'로 사는 법은 배웠지만, '여자로서의 나'를 지키는 법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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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들을 후회만 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그 시절의 나는 참 현명하지 못하게 열심히 살았는데,
그걸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때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날, 참 잘 견뎠어.
너는 비참한 게 아니라, 너무나 용감했어."
그리고 이제는
그의 침묵에 더 이상 익숙해지지 않기로,
내 감정을 모른 채 하지 않기로,
그렇게 다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