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결혼생활, 침묵의 기술

- 버티기 위한 침묵에서, 회복을 위한 침묵으로

by 세니카

침묵이야말로 나의 결혼 생활에서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가장 정교한 기술이었습니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말이 없는 사람 측에 속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말이 많아진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을 하면서는, 해야 할 말조차 꺼낼 수 없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분양받았던 아파트에서, 주식으로 인한 빚 때문에 작은 집으로 이사할 때도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인가 보다'하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계속해서 빚으로 주식 투자를 이어 갔고, 자연스레 다툴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나는 참고 또 참았습니다.

남편은 주식 투자에서 손실이 나면 괜히 나를 힘들게 했고, 아들에게도 거친 말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감기와 방광염이 겹쳐왔던 때가 기억납니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아저씨는 술만 마시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 장면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일부러 남편과 다툴 일이 있으면 밖에서 다투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아무리 말해도 변화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말을 꺼내면 나만 더 힘들어졌습니다.

엄마인 나의 이런 정서 상태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줬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아이들을 통해서, 내가 그때 버틴 게 정말 잘한 일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한 게 시간이 지나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 당시에, 나는 속으로만 꿍꿍 앓았습니다.

편두통이 심해졌고, 마음은 점점 답답 해졌습니다.

남편과는 점점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아이들 이야기만 나누게 됐습니다.


남편은 자식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성적에 과도한 관심을 보였고, 아이들은 그로 인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편안한 환경을 주지 못했고, 나는 중간에서 힘 있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

소중한 아이들인데, 내가 엄마로서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나에게 남편은 결코 편안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남편을 대하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 안으로만 침잠했고, 감정의 교류는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 불편함은 내 몸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편두통과 변비, 위장 장애는 늘 내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억누른 시간들이 만들어 낸 증상이었습니다.


시어머니도, 시동생도 내 삶에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저 "형수는 형 덕분에 편안하게 사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내가 집을 나오기 전 시동생과 통화했을 때의 그 말이 더욱 상처가 되었습니다.


나는 내 힘듦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친정에도, 시댁에도.

50이 넘어서야 친정에 조금씩 이야기를 꺼냈을 뿐, 시댁에는 끝내 말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우리 집 이야기를 시댁에 하지 말라고 했기에, 나도 아예 입을 닫았습니다.


남편에게 내 마음을 말하려 하면, 그는 늘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예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속에 쌓인 응어리들이 없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 화들은 내 안에서 쌓이고 쌓여, 갈 곳을 잃고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어느 해 연말, 나는 결국 폭발했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잇값도 못하고 산다"라고.

그 말은 내가 붙잡고 있던 마지막 기대가 부서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나는 더 이상 어떤 희망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실낱같은 기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기대가 산산이 부서진 것은.

남편이 아무런 상의도 없이 시어머니를 모시러 간다고 말한 그날 새벽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남편은 마치 별일 아닌 듯 시어머니를 모시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 짧은 말은, 지금까지 애써 붙들고 있던 마지막 신뢰를 끊어내는 말이었습니다.

'왜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또 소외당해야 했을까?'

그 순간 나는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그날 이후, 나는 집을 나오기로 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임시로 지낼 집을 알아보았고,

그날부터 나는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한 침묵을 배우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 조용히 나를 정리하는 침묵입니다.

아직 마음속에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많고,

누군가를 만나면 그 이야기들이 다시 튀어나올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나를 위해 말을 아끼기로 했습니다.


살아내기 위한 침묵이 아닌,

회복을 위한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이제는 나의 시간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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