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34년 후, 나를 위한 삶이 시작되다
1991년 스물여섯의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처음엔 둘이었고, 귀여운 아이들이 생기면서 넷이 되었고,
이제는 다시 나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었습니다.
늘 조심했고, 늘 긴장했고, 늘 남편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분위기가 달라질까 봐
항상 몸을 조이고, 마음을 움켜쥐며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온 것 같습니다.
겉보기엔 평온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남편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한 소풍과 드라이브.
사진 속에는 웃는 얼굴이 담겨 있었고,
그 시간들이 진짜 행복이었기를 나도 바랍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늘 어떤 불안과 의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평온'이라는 이름의 순간들이
어쩌면 남편이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만든 가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이 내 안에 자라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이미 내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겪은 불안과 고요 속의 긴장,
그 모든 것들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결혼 기간 내내 주식투자를 해서 빚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어떻게든 함께 해결해 보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내가 뭔가를 말하면 그는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기 싫어서
결국에는 입을 닫았습니다.
그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집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나의 감정을 스스로 삼켰습니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말을 꺼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말에도, 나의 다소 거센 반응에도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주식을 하고 빚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다 내가 말을 하면
'그러게'라는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퉁치려는 듯 말했습니다.
'그러게'라는 말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지쳤고, 마음은 점점 메말라갔습니다.
그의 말은 더 이상 내게 와닿지 않았고,
신뢰는 지하 밑바닥을 향해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집을 나와 혼자 사는 이유는 단순히
어머니와 갑자기 함께 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지막 불씨에 불을 붙인 작은 종이였을 뿐입니다.
결혼생활 내내 편안하지 않았던 내 마음,
가족을 책임지려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빚을 지는 그의 태도와 거짓말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가 무너진 관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그와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이제 믿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저 내가 힘들어서, 혼자 있고 싶어서 집을 나간 것이라 생각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외롭게 했는지
그는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의 태도에 화가 나지만, 화를 내지 않으려 합니다.
여전히 나를 제대로 볼 마음이 없는 그에게
이제 내가 기대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만약 내가 '결혼'이 아닌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라는 선택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늦게 피어난 용기일지라도,
그 용기는 분명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지금 이 삶은,
비로소 '나'를 위한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