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합니다.
끓는 냄비에 개구리를 넣으면 바로 튀어나오지만,
찬물에 넣고 서서히 끓이면 그 안에서 죽어간다고요.
나는 그 개구리였습니다.
눈앞에서 삶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차마 인정하지 못한 채,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곧 나아지겠지"라고 되뇌며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서 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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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늘 위기였습니다.
주식 투자로 돈을 잃고,
갚아야 할 대출은 숨기고,
내 명의로 된 카드로 돈을 빌리기를 요구했습니다.
그 모든 선택에 나의 생각은 중요하지도 않았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잘 될 거야, 좋아질 거야."
그 말만 믿고, 몇 번이고 데워지고 있는 물속에서 살았습니다.
삶이 위태롭다는 사실조차 외면한 채,
벼랑 끝에 매달려 꿀방울을 핥던,
바로 그 안수정등의 이야기처럼요.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가족이니까,
함께 살아야 하니까.
아이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나를 옭아매는 이름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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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나는 웃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잊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단절됐습니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더 무거웠지만,
그 무게가 비정상이라는 걸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이 물이 너무 뜨겁다는 것을.
그리고 더는 여기서 살 수 없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그 냄비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뒤늦었지만, 그래도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몸 이곳저곳에는 화상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바깥의 공기는 산뜻합니다.
숨이 쉬어지고,
나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
사람들은 내게 말합니다.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참았느냐고.
나는 말합니다.
끓고 있다는 걸 몰랐다고요.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고요.
지금도 냄비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물이 데워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면,
지금이 바로 나와야 할 때라고.
아무리 늦은 듯 보여도,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은
늘 지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