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말 없는 이별

- 집을 나오기까지

by 세니카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그날, 시어머니는 갑자기 우리 집에 이사해 오셨습니다.

마치 그 집이 원래 당신의 집이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

내게는 단 한 마디의 상의도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정말로 아무도 나와 상의하지도 않은 일이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


지금 돌이켜보면, 그 일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조용한 사전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안방을 회사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책상을 정리하고 물건을 딸의 방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의 책장을 치워야 하지 않느냐고도 말했습니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 모든 정리들이,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시기 4일 전,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를 1년만 모셔주실 수 있겠냐"라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형하고 사는 것도 힘듭니다. 어머니까지는 정말 안 됩니다."


그러자 "그럼 6개월만"하더군요.

주간보호센터 비용은 자기가 내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에겐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미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에 종일 있는 남편과의 삶이 숨이 막혀서,

거의 매일 카페로 도망치듯 나가 책을 읽다 들어오는 삶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어머니까지 모시고 산다는 건...

내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자, 삶을 포기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고, 이해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두 형제는

그 모든 내 이야기를 무시하고, 그대로 밀어붙인 것입니다.

나는 아무 말이 없어서 어머니가 설마 오실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남편은 어머니 사시는 데 가서 짐을 싸서 모셔 왔습니다.


새벽부터 외출 준비를 하는 남편에게 물어, 그날 어머니가 오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말은 그들 세계에서는 '존재하는 않는 거'구나.

그들은 내가 '반대해도 결국 따라야 할 존재,

닥치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여긴 거였습니다.


결혼 내내 그래왔던 것처럼요.


**


시동생은 2024년에 시어머니의 집을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시동생은 본인의 빚을 갚았고,

어머니는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하는 집으로 옮겨지셨습니다.

그 모든 일 역시, 우리 부부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1년 월세 만기가 됐고, 월세가 비싸다면서 집을 옮기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머니를 "형수가 모셔야 한다"라고 말하는 그 뻔뻔함에 나는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내 존재는 여전히 아무 결정에도 끼지 못하는 '외부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


결국 나는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남편은 우리가 살았던 집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아파트를 살 때 받은 대출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주식하느라 빌린 고이율의 돈을 아파트 대출로 돌려 갚았습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자신의 빚을 돌려 막기 했는데, 이제는 그 아파트 대출금도 감당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파트를 팔고,

2025년 7월 말, 남편은 월세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남편이 이사하면서 시어머니는 시동생이 모셔 갔다고 합니다.

참,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때는 왜 나를 그렇게 무시하며 밀어붙였을까요?


**


가끔은 생각합니다.

내가 그때 집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어찌어찌 참고 살아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순종적인 척,

소심하게 하루하루를 견디면 살아갔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비로소 이별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늦었지만 인생 후반전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중입니다.

그 길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내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한 발자국씩 옮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아이들을 응원했던 것처럼,

이제 나는 나를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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