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리더십과 팔로워십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화면 속에서 볼 때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선수 간의 대화이다. 특히 축구, 농구, 야구 등 팀 스포츠에서는 수없이 많은 ‘말’이 오간다. 선수들의 의사소통이 경기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기 중에는 빠르게 상황이 바뀌기 때문에 선수들은 각자 위치, 상대의 움직임, 그리고 팀의 전략을 신속하게 공유하고 조정한다.
가령 농구에서는 “스크린!”, “백도어!”, “컷!”, “ 리셋!”, “박스아웃!” 등의 짧고 간결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템포가 빠른 농구 경기의 특성상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함께 뛰며 호흡을 쌓은 선수들끼리는 눈빛만 봐도 안다.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은 시카고 불스에서 함께 여섯 개의 NBA 챔피언 반지를 거머쥐었고 던컨과 지노빌리는 샌안토니어 왕조를 건설했다.
‘말’은 상대 팀 선수와의 심리전에도 사용된다. 상대방을 자극하기 위해 조롱하거나 심지어 욕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트래쉬 토크’라 한다.
반면 야구에서는 선수들 간의 대화나 의사소통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각 포지션이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고, 대부분의 수비 움직임이 타자가 공을 칠 때까지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전략 전술이 필요할 때는 미리 짜여진 무언의 사인이 감독, 3루 코치를 통해 선수들에게 전달된다. 번트, 견제, 수비 위치 조정, 히트 앤 런 등이 이렇게 수행된다.
대신에 파이팅을 크게 외치거나 격려의 말을 전달함으로써 사기를 북돋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내야수들은 투수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더그아웃에서도 마찬가지. 나는 대학교 야구동아리에서 투수를 했는데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선후배들이 “나이스 볼!”을 외쳐주었다. 경기가 끝나고 뒤풀이를 할 때면 내야수들은 항상 목이 쉬어 있을 정도였다. 유행하고 있는 최강야구를 보면 이대호, 정근우가 부산 사투리를 쓰며 “공 좋다. 쥑이네!”, “살아있네. 마 그냥 심어뿌라.”, “그 공은 건드리도 모한다.”라고 하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말’은 스포츠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때로는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말은 선물과 같아서 포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하니만 못 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실력이 낫다고 해서 지적질만 해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회사나 동호회에서 한 번쯤은 마주친다.
그런데! 외야수, 내야수, 포수, 벤치 선수들 모두 소리를 지를 때 단 한 명,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투수다. 투수는 멘탈이 중요한 플레이어라 공 한 개 한 개 던질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온 신경을 집중해서 던진다. 잘못 던진 하나의 공이 안타가 되고 홈런이 되기 때문이다. 제구가 되지 않으면 볼넷을 주거나 허무하게 밀어내기 점수를 허용할 수도 있다. 그만큼 투수는 야구에서 중요한 포지션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게임을 시작할 수 없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이래서 등장한 것이다.
메이저리그를 보면 팀의 에이스 투수가 마운드 올랐을 때 고함을 치던 수비진이나 더그아웃 선수들이 침묵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팀이나 선수들 사이에는 에이스에게 과도한 응원을 자제하는 것이 일종의 전통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침묵으로 에이스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투수는 선봉장이자 리더라고 볼 수 있다. 팀의 구성원은 침묵으로 리더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보이고 리더는 맨 앞에 서서 먼저 행동함으로써 팀을 승리로 이끈다. 팔로워쉽(Followership)과 리더십(Leadership)은 조직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중요한 두 가지이다. 이 둘이 조화롭게 상호보완 작용할 때 승리를 쟁취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침묵’이 가지는 힘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침묵을 이용할 줄 안다. 많은 말을 하기보다 먼저 행동에 나선다.
알렉산더 대왕을 보자. 알렉산더는 5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원정을 시작했는데 40차례의 전투를 치르며 한 번도 패배한 적 없이 없다. 그것도 전부 열세적인 조건이었고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과 싸워 거둔 승리였다. 이러한 승리의 배경에는 그가 보여준 헌신과 용기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창조해 낸 유명한 전술이 있다. 망치와 모루 전술. 강력한 보병을 중심에 배치해 공격을 버티고(모루), 기동성이 뛰어난 기병으로 적군의 양 측면과 후위를 포위 공격(망치)하는 것이다. 이 전술은 후대에 한니발의 칸나이 전투, 카이사르의 파르살루스 전투에도 활용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알렉산더 스스로가 왕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투에서 기병대를 이끄는 기병대장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장군은 자신의 병사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부케팔로스라는 명마와 함께 언제나 제일 선두에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삼국지에서 유비가 보여준 행동이다. 장판파 전투에서의 일이다. 조자룡은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조조군 한가운데 갇힌 주군의 아들과 부인을 구하기 위해 홀로 적진에 뛰어들었다. 스스로 몸을 던진 미부인은 미처 구하지 못했지만 아들만은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조자룡은 울음을 터뜨리며, 부인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청했다. 이때 보인 유비의 반응이 놀랍다. 조자룡이 건네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던져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조자룡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하마터면 이 어린놈 때문에 조운을 잃을 뻔했구나. 어디 다친 곳은 없는가?”
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신하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계산을 했건 안 했건 유비는 이 행동으로 수십만의 군사들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게끔 만들었다. 천 마디 말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침묵은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함으로써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람들은 조용하고 신뢰감 있는 존재에서 더 큰 카리스마를 느낀다.
언젠가 리더가 되었을 때, 마틴 루터 킹이 한 말을 잊지 말자. “때로는 침묵이 가장 강한 외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