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 위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오르막을 오르는 과정은 고난의 상징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도전들은 자전거로 가파른 길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럽다. 때로는 길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굳이 이 길을 선택할 필요가 있나?’,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 이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시원한 바람이 불면 핑계라는 이름의 민들레 꽃씨가 머릿속 가득 퍼진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보상은 반드시 고난 뒤에 온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기 싫은 친구들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다.
“국어, 수학, 과학 배워서 나중에 하나 쓸모없다. 살면서 이런 것들이 언제 필요하겠어? 글 읽을 줄 알고 더하기 빼기만 잘하면 되지.”
맞는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편익과 기회비용을 정확히 계산해서 쇼핑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공부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친구들과 밸런스 게임을 하는데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기 vs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하기’라는 문제를 낸다면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쓸모 있는 ‘지식’이 아니라 묵묵히 시련을 버텨낼 수 있는 ‘삶의 태도’이다. 다들 밖에서 놀 때 도서관에서 몇 시간이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참을성’이라는 도구를 익히게 된다. 공부를 잘했던 사람만이 아니라 운동이나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마이런 롤이라는 미식축구(NFL) 선수는 하버드 의대를 졸업해 현재 신경외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고 NFL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알런 페이지는 은퇴 후 법학을 공부해 미네소타주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고난 뒤에 반드시 보상이 온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익힌 사람들은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인내심은 다양한 분야를 배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무기이다. 독서하는 사람은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고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자연 속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모두가 지루해하는 클래식 음악이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향유되고 있는 이유는 자극적인 대중음악보다 더 깊은 내면의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단순 이동 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면 업힐을 피할 수 없다. (자전거 동호인들은 오르막을 보통 ‘업힐 uphill’이라 부른다.) 낙엽 냄새 묻은 쓸쓸한 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 오후. 자전거 입문을 고민하던 친한 친구와 자전거를 탔다. 덥지도 않고 딱 좋은 날이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라 기본적인 체력이 있는 덕분인지 출발은 좋았다. 차가 없는 곳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힐링라이딩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르막이 나오자 여지없이 흘러내렸다. 자신만만하던 친구는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만 힘겹게 돌릴 뿐이었다. 급기야 오르막 중반쯤 가서는 잠깐 쉬었다 가면 안 되냐고 졸랐다.
“하... 하... 이러다 사람 죽는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나도 처음 자전거를 탈 때 느꼈던 고통이었다.
“거의 다 왔어. 호흡 유지하고, 지금 페이스면 충분히 올라갈 만 해.”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 나도 꽤나 힘들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 보이면 친구가 더 지칠 것 같아서였다.
“속도는 천천히 가도 되니까 자전거에서만 안 내린다는 생각으로 해. 다 왔어”
공자가 말했다. 멈추지 않는 한 아무리 천천히 가도 상관없다고.
“..... 말이 쉽지 젠장..... 아까부터 다 왔다고 했잖아!”
지금 친구에게는 공자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 ‘거의 다 왔어’. 나도 많이 당했다.
결국 친구는 오르막을 한 번도 안 멈추고 올라왔다. 내가 처음 자전거에 입문했을 때 느꼈던 ‘결국 해 냈다’는 뿌듯함을 친구도 느끼기를 바랐다.
자전거는 등산과 비슷하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죽어라 힘들지만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그 벅찬 감동.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자신감. 하지만 등산보다 자전거가 매력적인 이유는 보상이 크다는 것이다. 내리막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속도감을 즐길 수 있다.
그제야 오르막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황금색 들판과 한적한 주말의 시골 풍경. 햇빛 아래 웅크려 자고 있는 고양이와 터벅터벅 깨를 털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물에 떨어진 잉크가 번지는 것처럼 몸 안으로 행복이 스며들었다.
오르막 하니 떠오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다. 군사들은 험난한 알프스를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혹독한 추위까지 더해져 부하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전언이 올라왔고 식수 부족으로 극심한 갈증과도 싸워야 했다. 이때 나폴레옹은 군사들에게 말했다. “저 산 너머에 신 포도가 널려있다.” 군사들은 이 말을 듣고 입 속에 침이 돌기 시작했고 갈증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결국 나폴레옹의 군대는 알프스를 넘는다.
이 이야기는 영웅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용기와 희망을 북돋는 심리적 전략과 위대한 리더십에 관한 일화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병사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내가 병사였다면? 기만이자 사기에 당한 것이다.
우리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학업’을, 졸업 후 취직을 하고 나면 ‘과업’을 요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매번 과제를 주고 도전에 맞서고 이겨내야 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나폴레옹의 군사들처럼 누군가가, 아니면 조직이 설정해 둔 목표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기나긴 여정을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건 너무 지루하고 보람도 없다. 이제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나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해 보자.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직장을 벗어난 사적인 시간에는 나만의 경로를 설정해 보자는 것이다. 그중 하나의 방법이 자전거이다.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는 순간 새로운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내 앞에 보이는 오르막을 이를 악물고서라도 정복하고 나면 한층 견고해진 삶의 태도와 시야를 가지게 될 수 있다. 물론 짜릿함과 충만한 기쁨은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