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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이십팔호 Oct 01. 2021

최초 질문으로의 회귀
정치란 무엇인가?

최종적으로 [관자]가 지향한 ‘정치의 요체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관자] 첫 편인 「목민」의 배치에서 드러나듯이 예의염치(禮義廉恥)의 확립이다. “무릇 땅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임무가 사계절을 살피는데 있고 창고가 가득 차도록 지키는데 있다”는 첫 구절은 통치자의 의무가 신민의 생존과 안전(安民)을 위해 ‘백성을 거처하게 하고(定民) 일을 이루게 해주어야(成民)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요임금은 … 희씨와 화씨에게 명하여 하늘을 공경하여 따르고 일월성신의 운행법칙을 헤아려서 백성들에게 농사의 적기를 신중히 가르쳐주도록 했다 …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황혼 무렵에 조성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서 정확한 춘분을 정하게 했는데 이때는 백성이 들로 흩어져 나가서 농사를 지었고 새나 짐승들은 교미를 하여 새끼를 낳았다”는 요임금의 치적이 선왕이 백성을 다루었던 방식이라는 유가적 이상상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백성의 생존과 안전을 확보한 이후, 곧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영광과 치욕을 알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법도는 사유를 닦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자]는 궁극적으로 유가적 가치와 이상상을 지향한 것일까? 치국의 준거로서 예의염치의 인식은 “어질지 않고 지혜롭지 않고 예가 없고 의가 없으면 남에게 부림을 당한다. 남에게 부림을 당하면서도 부림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활을 만드는 사람이 활 만드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화살 만드는 사람이 화살 만드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것과 같다”는 [맹자]의 정언에서 선명해진다. 반면 법가적 인식에서 예의염치는 “[시경], [서경], 예의, 음악, 선행, 수양, 어짊, 염치, 변론, 총명함 등 열 가지가 나라에 있으면 군주는 백성들에게 나라를 지키고 싸우도록 시킬 수 없다. 나라가 이 열 가지 것으로 다스릴 때 적이 오면 반드시 영토를 빼앗기고 오지 않아도 반드시 가난해진다”고 ‘교묘한 말과 허무한 도’(巧言虛道)로 규정한 [상군서]의 정언처럼 사적인 욕구의 충족을 통한 안일과 편안함을 도모하는 기풍의 원인으로 폄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의염치를 최종적인 지향점으로 삼았던 것일까? 정말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 부끄러워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는 유가적 가치에 경도되었던 것일까? [관자]는 그 해답으로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힘쓰지 않으면 재물이 생기지 않고 땅의 이로움을 개발하는 데 힘쓰지 않으면 창고가 차지 않는다. 들판을 황무지로 놔두면 백성은 나태해진다. 윗사람이 재물을 쓰는데 절도가 없으면 백성은 난동을 일으킨다. 사치하고 교묘한 것을 금하지 않으면 백성은 문란해진다. 이 두 가지 어지러움의 근원을 막지 못하면 형벌이 번잡해진다 … 예의염치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는 곧 멸망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관자]의 정치적 요체를 찾을 수 있다. 즉 치국의 최종적인 목표가 부국강병에 의한 평천하라고 한다면, 우선적으로 안민을 위한 부민의 조건을 마련해야 하고, 그 이후 규범적 행위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이미 규범적으로 붕괴된 신민들에게 법제의 적용 또한 “법제가 번잡해지면 교활한 무리들이 모두 법을 가지고 거래할 수 있으니 비록 현자가 있어도 저절로 법이 운영될 수 없다. 이것이 국사가 날로 그릇되는 까닭”이라는 진단처럼 오용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국가의 붕괴라는 점을 경고한다. 그것은 “들판에 황무지가 없게 되면 나라가 부유해지며 나라가 부유해지면 강성해진다”는 부국책으로부터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곡식 창고가 가득 차 있어도 농업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나라가 크고 백성들이 많아도 말하는데 방자하지 않다”는 법가의 논리와 “고정된 생업이 없으면서도 항심을 갖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 백성의 경우 고정적인 생업이 없으면 항심도 없어진다.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결국 백성들이 죄에 빠지고 난 뒤에 이를 형벌에 처한다면 그것은 백성들을 그물질해 잡는 것”이라는 유가의 논리 모두와 중첩한다. 따라서 예의염치의 정치는 유가와 법가의 논리 모두가 겸용된 치국론인 셈이다. 


[국어]의 기사는 제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하여 최초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물리적 폭력사용이 아니라 명분에 따른 승(勝)의 덕목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후들을 다스리는 일에 나서고 싶다”는 제환공의 열망에 대한 관중의 답변은 “임금께서 만약 천하 제후들에 관한 일을 해보고자 하신다면 이웃 나라부터 사이를 가깝게 할 것”을 제안하면서, “우리 국경을 확정지어 침략해서 뺏은 땅을 되돌려 주어야 하고 국경의 경계를 바로잡으면서도 재물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할 것 … 음란한 나라를 가려서 우선 정벌할 것”을 권고한다. 그것은 패정(覇政)이 “좋아하는 나라에는 오로지 이익을 주고 미워하는 나라에는 오로지 해를 주면 명령이 시행되고 금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왕은 이 원칙을 귀하게 여겼다. 한 나라를 굴복시키면 온 나라들이 굴복할 것이고 소수의 나라를 도와 여러 나라에 본보기를 세우면 천하의 나라를 품을 것”이라는 전망에서 제시되듯이 관중이 기대한 국가 간 관계 역시 정명(正名)에 기초한 예의염치의 질서를 추구했던 것임이 드러난다.


마침내 제환공이 “동남쪽에 음란한 나라들을 단 한 번의 전쟁으로 31국을 휩쓸어 굴복시켰다. 남쪽 정벌 길에 나서 초나라를 토벌하여 여수를 건너고 방성을 넘어서 멀리 문산을 바라보고 망제를 지내고 … 북쪽으로 산융을 토벌하여 영지를 치고 남쪽으로 돌아오니 연해의 제후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 … 제후들의 갑옷은 갑옷집에서 풀려나오지 않았고 무기들은 무기집에서 풀려나지 않았으며 활집의 활은 쓰일 날이 없었고 전대의 화살도 쓰일 날이 없는 채 전쟁의 일은 사라지고 문치의 교화가 행해졌다 … 교화가 크게 이루어져 갑옷, 투구, 방패가 방치되고 날 있는 다섯 가지 무기들도 거두어 갈무리되었다. 조복을 차리고서 황하를 건너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문치가 세상에 행해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큰 나라는 부끄러워했고 작은 나라들은 따르며 협조했다”는 교화와 규범에 기초한 춘추질서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예의와 염치의 정치’는 “전차는 세워두고 타지 않게 되며 군마는 화산의 양지바른 곳에 풀어놓으며 농우도 연못가에 풀어놓아 늙어 죽을 때까지 거두어들이지 않는” 질서정연한 상태를 전망한 법가와 “어진 사람은 천하에 그를 대적할 이가 없는 법”이라는 유가의 이상상이 통섭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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