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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이십팔호 Oct 03. 2021

진정한 2인자 팔로워십

역사 속의 2인자를 찾는 일은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빛나는 2인자도 있을테고 숨어 있는 2인자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찾기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선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거나 인습적으로 알고 있는 2인자에 대한 얘기부터 찾아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2인자의 모습은 대단히 불우하게 점철되어 있다. 이승만 정부 시절 1인자를 넘봤던 이기붕 총리, 박정희 정부 시절 대단한 권세를 누렸던 JP 김종필 총리는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에서 1인자를 넘어설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던 인물들이지만, 한 사람은 자식의 총탄에, 다른 한 사람은 끝내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우리는 2인자의 말로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는 기억을 갖게 하는 계기로 그들을 회자한다. 사실 전혀 안타까워하지도 않지만.


왜 그들은 이렇게 좋지 못한 기억 속의 인물들이 되었을까? 그들이 보여준 찬란함, 영광, 압도적인 위세들은 당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시대를 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인자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식자들은 그들의 오만함, 안이함, 어리석음 등을 말한다. 도를 지나쳤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분수를 알고 1인자 자리를 넘보지 않으면서 2인자에 만족했던 자들은 추앙받을만한가? 한국 현대사의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2인자인 국무총리는 늘 1인자의 방탄막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얼굴마담으로 명망가 위주로 선택되었다. 최규하 국무총리가 그랬고 신현확 국무총리가 그랬으며, 이한기 국무총리, 이한동 국무총리, 한승수 국무총리 등이 그랬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존경받는 인물들이었지만, 1인자의 길이 무엇인지보다 1인자를 대신해서 행사를 진행하고 의전을 받는 2인자의 자리에 만족했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들을 매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1인자를 빛나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 2인자의 역할이라면, 2인자 역시 빛나는 존재여야 한다. 1인자의 빛 때문에 2인자는 그림자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은 2인자의 역할을 단지 소극적인 위상에 머물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2인자는 리더로서 1인자를 빛나게 하는 또 다른 빛나는 리더이다. 2인자의 역할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것이 2등도 1등에 못지않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1인자의 권위를 넘지 않으면서도 빛나는 리더로서 2인자의 길은 어떤 것일까? 우리들의 문화적 정서에서 2인자의 분수는 무엇일까? 대개 한자 문화권과 유교 문화권을 중첩되는 문명적 요소로 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문화적 특징 중 하나는 2인자의 위상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로 표현하는데 익숙하다. 과거 재상(宰相), 정승(政丞)으로 불리는 왕(王)을 모시는 최상위 엘리트의 지위를 2인자의 자리로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 역사에서는 영의정을 30년 가까이 역임한 황희(黃喜)를 정승의 모델로 삼고 있는데, 태종과 세종 두 국왕의 치세를 빛냈던 조연으로의 분수를 잘 지켰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황희 정승과 같은 2인자가 역사 속 우리의 롤 모델로 채택될 수 있었다면, 당대 황희 정승이 걸었던 2인자의 길을 앞서 보여줌으로써 황희 그로 하여금 2인자의 분수를 잘 지킬 수 있게 했던 최초의 단서를 가진 인물은 누구일까? 좀 더 범위를 넓혀서 동아시아의 전통 하에 가장 모범적인 2인자의 길을 걸었던 인물로 회자되는 인물은 누구일까? 최근 현대사에서는 중국의 주은래(朱恩來)를 거론한다.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뒤 중국의 1인자로 올라선 모택동이 1인 독재를 강화하고 신격화하는 과정에서도 2인자인 총리의 역할에 충실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고, 미국의 키신저 국무장관과 공감과 교신할 정도로 지성적이고 신중하며, 키신저와 상호 존경의 파트너십을 발휘하여 미중 데탕트를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 내부에서도 총리 주은래를 모택동과 마찬가지로 인민의 삶에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동반자로 존경했고, 모택동의 1인 독재와 신격화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낡고 오래된 인민복을 입고 서민의 삶을 보듬기 위해 현장지도에 열중했던 주은래의 모습은 사천 대지진 등 재난현장에서 낡은 점퍼를 입고 총지휘하던 원자바오(溫家寶)의 모습으로 재현되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택동의 독재시대에도 쿠데타나 숙청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할 수 있었던 드문 인물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자신의 지위와 역할로서 2인자의 분수를 지킨 겸손함일 것이다.


실패한 2인자와 성공한 2인자의 이유를 설명하는 오만과 겸손은 모두 2인자의 한 측면만을 설명한다. 오만함이 실패와 몰락을 가져왔듯이 겸손함은 분수와 존경을 가져온다. 반면 오만함은 리더로서 적극성과 추진력을 발휘했던 강력한 동기의 변질일 수도 있고, 겸손함은 분수를 아는 신중함이 언제든지 소극적인 순응성과 안일함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우리는 그들의 외형상 보이는 태도와 행보만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오히려 2인자는 1인자가 지닌 빛나는 리더십과 신중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보다 위태로운 경계의 위치에 놓인 존재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2인자 주은래는 2인자로서 자신의 분수를 어떻게 정확히 알고 행동했던 것일까? 또한 중국인들은 주은래의 어떤 모습들에서 자신들에게 각인된 2인자의 분수로 평가하고 긍정했던 것일까? 보다 더 소급할 경우, 주은래의 모습이 전형적인 2인자의 모습이라고 모두가 평가할 만한 근거란 무엇일까? 도대체 어느 누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중국인들에게 주은래는 영원한 2인자의 분수를 아는 지도자로 각인되었던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동아시아 정치문화에서 2인자의 길, 2인자의 리더십이란 어떤 속성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것인지를 재현하려고 한다. 즉 역사 속 2인자의 분수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 경로를 밝혔던 최초의 인물로 춘추시대 제나라 관중(管仲)의 생각과 행보를 재현하여 현대 정치리더십의 구성요소로 추출하려고 한다.


춘추시대는 전국시대와 함께 우리에게 혼란과 무질서, 전쟁과 파괴의 시대로 알려져 있고, 최종적인 권위의 부재로 인해 강자와 약자 모두 힘과 물리적 폭력에 의존해서 생존을 해결했던 시대로 이해되고 있다. 흔히 ‘춘추전국시대’라고 표현하면 절대강자가 없는 격렬한 경쟁의 상황을 의미하는데, 사실 춘추시대는 격렬한 경쟁의 시대이기보다 절대강자로서 왕실권위가 추락한 상황에서 원칙 없이 격렬한 경쟁과 투쟁으로 빠질 위험성을 패자(霸者)라는 존재에 의해서 질서를 유지하고 생존을 보장받았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패자는 실력을 갖춘 행위자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도덕적 행위자이기도 했다. 물론 그 실상을 보면 패자라고 할지라도 자기 멋대로 폭력을 행사하고서는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도덕적 명분을 억지로 갖다 붙이는 일이 빈번했지만, 최소한 패자조차도 끌어오려고 애쓴 것이 바로 도덕적 명분이었다는 점에서 도덕과 명분은 일종의 견제장치로 작동하기도 했다.


제나라 환공(齊桓公)은 이러한 패자 중에서 가장 먼저 춘추시대를 제패한 인물이었고, 가장 선의를 가진 패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제환공 스스로의 퍼스낼러티는 결코 이러한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큼의 성숙함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제환공에 의해 구축된 패권적 질서는 어느 누구의 도전도 용납하지 않았고, 공자(孔子) 자신도 평가하듯이 외부의 오랑캐들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중화문명의 본질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할 정도의 안정적인 시대였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업적을 성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일까?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제환공의 책사 관중이다. 관중은 공자에게 오랑캐로부터 중국을 지켜준 뛰어난 인물인 동시에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고 사치와 탐욕에 물든 오만한 재상이라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았다. 반면 우리에게 충신의 화신이자 현자의 모델로 알려진 제갈공명조차 자신의 능력을 관중에 비했다고 할 정도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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