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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이십팔호 Oct 03. 2021

[관자] 다시 읽기

현재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성립선행조건으로 역사와 전통 속에 습윤 되어 있는 그 특질을 추출함으로써 바로 여기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와 진행되어야 할 방향의 기획을 위한 단서로 채택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 원형으로서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인 제환공(齊桓公)을 보좌한 관중(管仲)의 행적과 성찰, 실제 현실에서의 판단과 결정 및 실천을 반추하고, 책사(策士)야말로 현재 우리에게 직면한 내외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요구되는 덕목, 그 중에서도 합리성과 염치의 회복을 위한 공적(公的) 규준을 제공하는 행위자임을 알 수 있다. 


관중이라는 인물이 활동했던 춘추시대를 보자면, 과연 춘추시대는 예제와 도덕이 여전히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이로 인해 규범적 구속력이 열국 간 질서유지에 작동했던 것일까? 어떤 근거로 춘추시대가 규범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 결정적 단서 중 하나는 [맹자]의 공자 평가이다. 맹자는 “성스런 왕들의 자취가 사라지자 시가 없어졌고, 시가 없어진 뒤에 춘추가 지어졌다. 진나라의 승과 초나라의 도올과 노나라의 춘추는 다 같은 성격의 책들이다. 춘추의 내용은 제환공, 진문공에 관한 일이고, 그 기록한 글은 사관의 문체이다. 공자는 그 속에 담겨있는 의리를 내가 외람되이 취했다고 말했다”고 지적하면서 “공자가 춘추를 짓자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보자면 공자의 [춘추] 편찬으로부터 유래한 ‘춘추’시대는 공자 자신의 정치적 이상상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사실 [관자] 역시 춘추시대라는 문제에 직면해서 기존 주의 종법질서가 무너진 이후 어떤 질서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다. 춘추시대는 한편으로 주의 종법질서가 무너졌기에 예치의 기제가 갖는 장점이 실종된 상황에서 다른 한편으로 전혀 다른 노골적인 폭력과 힘에 의한 자의적 통치가 현실을 압박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형식상 예제의 유산이 작동하면서 실질적으로 자신의 국가를 운영하고 보존해야 했던 춘추제후들에게 물리적 폭력만으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딜레마는 패자(覇者)의 출현을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 관중은 그 최초의 돌파구를 마련한 경세가로 평가된다.


그런데 [관자]는 역사적 사실로서 관중의 치적을 넘어선다. 즉 춘추질서의 이후에 도래할 역사단계는 질서정연함의 완정한 기제를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관자]는 새로운 군주-신민 관계를 규정하려고 한다. 그것은 양자 간 의무의 인지와 이행이라는 쌍무성에 의해 유지되는 관계이며, 동시에 쌍무성의 매개체는 양자 모두에게 이식된 합리성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새로운 통치자로서 패왕(覇王)은 법제와 덕례에 기초한 법치와 예치 모두를 겸전하는 덕목을 갖추며, 이로부터 법과 규범에 기초한 합리적 선택이 가능한 행위자이다. 


패왕의 통치는 예치의 기제가 지닌 높은 수준의 규범성과 법치가 지닌 높은 제도적 합리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통치기제를 제시한다. 그 작동양상은 우선적으로 법치의 합리성으로 드러난다. 즉 군주-신민 관계의 상보성을 의무로 강제하는 기제로 법과 제도는 양자 모두 의무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는 규범적 기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법의 제일성과 공정성은 군주-신민 모두에게 행위의 보편적 기준으로 작동하는 표준으로 기능한다. 즉 법의 의미와 적용은 모두를 일률적으로 측정하는 수단으로의 기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법은 군주-신민 모두에게 동일한 이익을 보장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 선행조건은 군주의 이익이 갖는 우선성이다. 이로부터 군주의 존법은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무로 규정되며, 군주의 존법에 따라 신민의 존법 역시 의무로 규정된다. 그 근거는 신민 역시 자신의 이익을 군주의 존법에 의해 보장받는다는 신뢰에 있다. 따라서 양자 모두 존법의 의무라는 상호성을 지니며, 군주의 우선적인 의무이행으로부터 양자 간 쌍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법치의 파격성이자 규범성이다. 결국 군주-신민 관계의 쌍무성은 법에 의한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그렇게 보자면 법치에 기초한 패자의 패정은 물리적 폭력과 억압의 통치가 아닌 법치가 지향한 규범화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통치기제이며, 역설적으로 법치를 운영하는 패자 역시 규범적 통치자인 셈이다.


만약 법치에 의한 의무의 인지와 이행이 다음 단계로 규범화로 진입한다면, 그것은 예치의 기제로 치환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즉 군주-신민 관계의 상보성을 의무로 강제하는 기제로 덕과 예는 양자 모두 의무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는 법제적 기능으로 전환한다. 이로 인해 덕과 예는 군주-신민 모두에게 행위의 보편적 기준으로 작동하는 표준으로 기능한다. 즉 예의 의미와 적용은 이기적인 현실인간으로 하여금 법제적 강제와 구속의 규범화가 습속화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치는 법치와 구조적으로 동일한 통치기제로 파악한다. 예치작동의 선행조건은 군주의 도덕적 실천이 갖는 우선성이다. 이로부터 군주의 도덕적 실천은 신민에 대한 시혜로 구체화되며, 신민의 이기성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군주의 덕이라는 결과로 합리화되는 것이다. 그것은 군주에 대한 신민의 자발적인 시혜, 즉 보상으로서 복종과 순응이라는 덕의 실천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군주의 도덕적 실천이 곧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는 결과로 환원된다는 점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결국 양자 모두 덕과 예의 실천이라는 규범적 상호성으로 관계 맺으며, 규범의 작동은 양자에게 의무로 전환한다. 그 선행조건 역시 군주의 우선적인 의무이행, 즉 덕의 실천에 있으며, 신민의 의무이행 역시 이기성의 충족이라는 합리적 선택이다. 결국 군주-신민 관계의 쌍무성은 규범에 의한 합리적 선택의 결과인 셈이다. 그렇게 보자면 예치에 기초한 왕정은 덕과 예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규범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법제에 의한 규범의 습속화를 성립선행조건으로 하는 통치기제이며, 역설적으로 예치를 운영하는 성왕 역시 법제적 통치자인 셈이다. 결국 예법의 기제는 순환적 구조이다.


최종적으로 [관자]는 법치와 예치의 겸전을 모색한 새로운 통치기제, 즉 패왕(覇王)에 의한 예의염치의 정치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패왕이 갖는 새로운 통치의 준거로서 규범성과 법제성의 통섭이다. 더욱이 패왕의 준거는 패업과 왕업, 존법과 존덕을 조화하기 위한 실천적 양상이다. 이로부터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와 공정분배를 통한 시혜적 조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부민(富民)으로부터 안민(安民)을 확보함으로써 목민(牧民)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된다. 그 정치적 최종점은 군주-신민의 합리성에 기초해서 자발적으로 구축된 명분의 질서이며, 법제와 도덕에 의해 교화된 상태에 이르러 군주-신민 모두 예의염치를 구비한 행위자로 규정된다. 그것은 정치의 부재, 즉 무위(無爲)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유가와 법가의 정치적 이상상이기도 하다. 결국 [관자]의 편찬의도, 더 나아가 관중이라는 실존했던 경세가를 가탁한 정치적 의도는 왕정 실현이라는 이상상과 부국강병 실현이라는 이상상이 예법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인간의 행위규준을 바로잡기 위한 유리스틱이며, 그것이 정치의 본질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관중이 활동했던 춘추시대는 주의 종법질서가 무너졌기에 예치의 기제가 갖는 장점이 실종된 상황에서 노골적인 폭력과 힘에 의한 자의적 통치가 현실을 압박했던 상황이기에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딜레마에 놓여 있었으며 관중은 그 최초의 돌파구를 마련한 최초의 경세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관자]는 역사적 사실로서 관중의 치적을 넘어서서 새로운 통치기제 즉, 예의염치의 정치를 해답으로 제시하고 새로운 통치의 준거로서 규범성과 법제성의 통섭을 시도한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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