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죄송하지만 이 두상으론 투 블록 컷은 위험합니다. 자칫 김정은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굳이 자르시겠다면 다운펌 하셔야 될 거 같은데요." 매번 듣는 말이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딸이 내 두상을 꼭 빼닮았다. 이런 게 DNA의 신비인가!
얼굴이랑 이목구비는 작고 예쁜데 모자를 살 때마다 또래보다 큰 치수를 골라야 된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게 아빠맘인데 샤방한 묶은 머리에 치명타를 입힐 옆짱구를 씌워 주었으니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 두상의 기원은 할아버지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아니. 더 올라갈지도 모르지. 어쨌든 내가 아는 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 모두 옆짱구다.
아... 이 슬픈 운명의 쇠사슬을 내 딸에게도 채워버렸구나. 라며 눈물을 머금지만 생각해보면 그분들은 내게 큰 선물을 주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는 연이나 팽이처럼 놀이도구를 뚝딱뚝딱 만들어 내게 선물했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 손가락 3개를 잃어버리셨는데도 말이다. 꼽사리 껴서 구경하던나는 일찍 사물에 대한 이해력과 관찰력을 기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나전칠기 공장을 운영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 염료를 칠하고 장식 다듬는 작업을 반복했다. 덕분에 내 주변엔 붓과 도구들이 항상 널려 있었고 나의 업인 그림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또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삶의 교훈이 되어 내 마음속깊이 자리 잡고 있다.
난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맘이 조금 놓였다. 옆짱구면 어떠랴. 나 또한 그분들에게 뒤지지 않을 장점들을 열심히 갈고닦아 사랑하는 딸에게 선물하면 된다.
아주 먼 훗날 "할아버지는 말이야. 엄마에게 소중한 유산을 많이 남기셨단다." 라며 자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