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스치며 흐르는 진실들

아득한 어른이 동화

by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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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환하게 빛나는 눈부심에 눈을 뜨지 못하고 눈을 뜨려 해도 꿈인지 생시인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어라 사람들 목소리가 조금씩 또 감감히 반복하며 마음대로 눈이 뜨이질 않았다.

''루비 씨! 김 루비 씨! 정신 차리세요, 들리시나요''
간호사들은 급하게 루비의 늘어진 팔을 두드리며 제대로 된 혈관을 찾지 못하고 다급하게 움직이며 의사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간 꿈속의 인어는 바로'김 루비' 본연의 형상이었다.

사실 몇 달 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유두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도심 근처 외과 병원에서 수술을 받던 바로 '그날' 이었다. 제대로 된 마취에 잠들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그간의 살아왔던 부분의 조각들이 아스라이 루비의 정신을 스치며 꿈길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늦은 나이에 아이 둘을 수술로 출산을 했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루비는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며 여기저기서 나오는 몸의 반응을 치료받아가며 살았다. 그러나 이번의 병원행은 생각지 못한 더 큰 상실이었으리라.

초년의 귀한 시간들, 혼자만의 싱글 시간을 아주 충실히 살았던 루비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1인 다역’을 당연하게만 생각했고 삶을 살아내는 주부로써,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 딸로서, 열심히 알뜰살뜰 살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았지만 조금씩 그리고 점점 일어나는 몸의 변화들에 이겨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너무 착실하고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던 남편과 남녀의 삼십 중반으로 이미 완성되어가는 각각의 미완 성체 자아들이 만나 서로 다른 견해와 안목으로 문화적 삶의 차이를 느끼기도 하며 즐거웠다 또 싸우기를 반복했고 보이지 않는 컨디션 조절 실패로 그 시기와 겹치면서 루비의 건강까지 악화가 되니 몸과 마음과 정신은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섬세하고 까다로운 루비의 성격이 그렇게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겠다고 살아내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으니.

'당장 병원 가서 그 조그만 암덩어리 떼어 버리면 될 거야
. 나도 좀 살아보려는데 왜 이런 일이’라고 루비는 혼자서 생각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약한 마음을 보이지도 내 비칠 수가 없음이 그럴 수 없음이 바로 김 루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한참 성장하는 ‘4학년’ 된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미리 짧게 다듬어주고 그간 가족들이 입을 속옷과 옷가지 들을 여러 벌 켜켜이 챙겨가며 귀엽고 어리기만 한 ‘6살’ 된 아들을 못내 잊지 못하고 마음속 울음을 참으며 하나하나 엄마의 자리를 잠시 비울 날들을 대비해 차근하게 정리해 갔다.

가족들과 집안을 정리할 때마다 마음과 눈은 이미 보이지 않는 눈물이 넘쳐흘러 앞을 가리곤 했지만 그 눈물을 넘치지 못하게 이성으로 다시 눈과 가슴에 꾹꾹 집어넣었고 그럴 때마다 목에는 돌을 삼키듯 역류하는 꿀렁한 파도 소리 만이 그 느낌들을 대답해주었다.

최소한 ‘7일’ 그리고 개인 건강상 요양을 하려면 충분히 입원 치료가 가능했지만 제일 먼저 아이들이 눈에 밟혔고
여러 명에게 폐 끼치기는 더욱 싫어서 닥터들과 상의한 후, 딱 일주일만 병원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팔다리를 쓸 수 없을 정도는 아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루비는 생각했다. 수술 전 간호사들은 수시로 건강체크를 했다. 몸무게 체크 또는 혈압, 열이 있는지 없는지 밤새 몇 번은 확인을 했다.

남편 직장 업무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주말부부로 살아온 지 몇 년 차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그것도 루비의 선택은 결코 아니었다. 아이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기분이 들어 삶의 현실인지라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썩 달가운 현실은 결코 아니었다. 어쩌면 살면서 원하지 않는 또 하나의 환경이 주는 변화의 요인이 충분했지만 그 마저도 삶의 현실이라고 아무도 그 상황을 루비의 진지한 입장이 되어주지는 않았다.

우선 하루만 병가를 내어 루비 곁에 있어 주기로 했고 수술하는 당일 아침이 되었다. 남편은 바쁜 병원 수속 일정을 마쳐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딱 하루만 있어주고 내일은 출근해요. 혼자서도 잘할 수 있고 언니나 올케 가 옆에 있어 줄 거니까요''라며 루비는 남편에게 부탁했다. 사실 가장 가깝지만 서로 다른 성격에서 나오는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병간호보다는 자기의 일 공간으로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신랑에게 조차 자신으로 인한 번거로움과 짐을 지우기 싫은 루비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수술 당일 이른 아침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노란 밴드 고무줄 두 개를 주며
"환자분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 주셔야 해요''라고
설명을 한 후 옆 침대의 환자를 체크했다.
'웬 소녀 머리 양갈래 휴우' 참 하다 하다 이 와중에 유치하게 양갈래도 해야 하나 싶어서 거울을 보았지만, 정면으로 마주 보지는 못한 채 스타일만 대충 마무리했다.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응시하기에는 그 마음이 너무 초라해져 있었고 자신을 볼 용기가 나질 않았으리라. 피식 웃음도 나면서 그 모습을 흘깃 보면서 더욱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채 하지도 못하고 떨리는 마음만 가득 안았다.

조용하고 무겁게 침대 바퀴를 밀어주는 남자간호사와 신랑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조용히 수술실로 향하고 있었다.

''수고해. 잘하고 만나. 괜찮을 거야''라는 말 한마디 해주면 어디 탈이 나는지 아니면 갑자기 닥친 상황에 할 말을 잃은 것인지 말 한마디 없는 곁의 그 남자는 어렸을 적 말하다가 된통 혼나고 자란 환경이 분명했다. 언어와 감정표현 자라온 문화적 환경을 크게 실감하며 차디찬 낯선 곳 그리고 조금 거북한 긴장된 분위기 중앙의 유난히 환한 조명 아래에 덩그러니 누우니 무섭기도 하고 '어떻게든 되겠지'체념도 하며 소독 냄새나는 그곳에서 그간의 세월들을 혼자서 마주하고 있었다.

'목'
그야말로 목 부위 절개 수술이기에 목을 높여주는 높고도 딱딱한 고무 커버의 베개가 유난히 돌에 누운 듯 불편하며 조금 불쾌하기도 했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셨고 머리 위에선
''환자분 하나, 둘 숫자를 세어 보세요!''하며
수면 유도를 했고, 그사이 루비는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꼭 깨어나기만을 바라며 편한 잠에 빠져 인어가 될 수 있었다. 그동안 가보았던 곳, 가보고 싶은 곳, 자기만의 꿈속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술하기 며칠 전 병원은 세균도 많고 무서우니, "엄마! 엄마께서 저희 집에 계시면서 애들만 잘 돌봐주세요. 제 걱정은 마시고요''라고 강한 척 친정엄마께 부탁을 했었지만 사실은 아이들에게 아픈 엄마의 몸을 보여주기 싫은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아이들만 편하게 맡길 곳 이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천상 엄마 ‘모성애’ 루비였다.

"엄마! 엄마! 엄마!''하며 큰소리로 말하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루비의 손을 잡고 긴장 속에 함께 있어 주었다.
오지 말라는 루비의 부탁은 접어두고 친정엄마는 ''아이들도 얼마나 엄마가 걱정되어 보고 싶겠냐'' 며 아이들을 데려 오셨고 그렇게 아직 온전히 깨지 못하는 루비의 곁을 모두가 함께 하고 있었다.

''루비 씨! 잠들면 안 돼요, 루비 씨, 김루비 씨''하며 간호사들은 돌아가며 큰소리로 루비의 이름을 불러댔고
"주변분들이 계속 깨워 주셔야 해요!'' 그대로 잠들면 절대로 안됩니다.

간호사들은 가족들에게 지시를 했다.


2018.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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