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어른이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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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주치의는 컨디션을 체크했고 수술 처치에 관한 설명을 했다. "루비 씨 '갑상선과 부갑상선'을 절개했고요. 오른쪽 임파선에도 암이 전이가 되었기에, 그쪽까지 절개를 했습니다. 며칠 새 목소리가 안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거의가 일시적인 거니 그렇더라도 크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편하게 쉬세요'' 라며 루비에게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바쁘게 다른 병실로 회진을 갔다.
루비는 목을 크게 움직일 수 없었고 혈관을 찾다가 겨우 꽂아놓은 오른쪽 팔뚝의 애매한 자리에 꼽힌 링거줄들이 불편했지만 입원하면 기본 3~4일 동안 하루 종일 링거줄을 매달고 있어야 하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링거 꼽힌 팔의 감각이 더 무뎌졌고 링거 바늘 자체를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될 것 같은 믿음으로 참고 버텼다.
첫날은 음성도 좋았고 견딜만했다. 마음 약한 루비는 수술도 잘 마쳤고 영원히 잠들어 깨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5퍼센트’ 정도는 해봤었기에 살아났다는, 깨어났다는
그 안도감에 깊은 감사를 느꼈을 것이다. 이튿날 루비의 남편은 지방에 위치한 직장으로 출근을 했고 언니와 올케 친정엄마가 잠시 교대로 루비 곁을 지켜 주었다. 서로 애잔한 마음의 불편함을 표현하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안부들만 물으며 먹고 싶은 거 없는지를 살피며 ''뭐 도와줄까?''라는 인사로 대신했고 시간을 함께 보내다가 밤이 되니 모두 돌려보냈다. 병원이란 자체가 답답하고 불편해 보여서 누구라도 얼른 돌려보내 버리고 싶은 루비의 마음은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밤이 깊어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루비는 눈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 주체 안 되는 감정, 집과 아이들이 그리웠고 알 수 없는 슬픈 마음이 솟구쳐 나오는 것만 같았다. ‘3인’ 병실에는 ‘갑상선암’ 수술 후유증으로 재 입원을 하게 된 예쁘장한 미모의 같은 병명의 선배 언니가 있었다. 이름은 '숙희'라고 했다. 긴장을 놓지 못하는 루비에게 많은 것을 가르져 주며 자기의 경험에 대해 속속들이 공개를 하기 시작했다. 보험금 지급에 관한 실무부터 시작해서 "루비 씨! 우리 같은 환자는 '좋은 음식'으로 잘 먹고 잘 쉬며 살아야 해, 절대 스트레스받으면 안 돼요.''라면서 일명 고급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면서 우리를 '갑과 동지'라고 부른다고 했다.
보통 여성 외과병원 에는 ‘갑상선외과’와 ‘유방외과’가 병행 진료를 하기에 유방외과 암환자들은'유과 동지'라 한다면서 같은 갑과 동지의식이라도 치르듯이 '하하하' 큰소리로 웃어 보이며 얘기했다. 피곤해 보이는 숙희 언니는 목에 수술 흉터를 줄일 수 있는 스카치테이프처럼 생긴 투명 의료용 제품을 다시 처방받았다며 손거울을 보며 붙이기 바빴고 ''이거 재활용이 가능하대, 나중에 루비 씨도 상처 낫거든 퇴원할 때 구입해 가면 좋을 것 같아, 조금 비싸긴 하지만 말이야''라며 수다를 떨었다. 목에 화려한 스카프까지 목을 감싸듯 둘러주면서 ‘우린 늘 피곤함을 자주 느끼지’ 라며 다시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얘기를 쉬지 않았다. “ 나야, 애들이 다 성장했지만 루비 씨는 더 젊은데 참 속 상했겠네” 하며 루비의 사연을 알아주기도 해서 난생처음 본 '갑과 동지' 선배 언니에게 동지의식을 느껴가며 지금 이 순간 같은 아픔을 교류할 수 있는 낯선 그 언니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하는 밤이었다.
"언니 덕분에 많은 걸 배웁니다.''라며 웃음 속에 울음을 애써 감추려 했지만 돌아누운 루비의 눈가엔 이미 눈물이 범벅이 되어 배갯잎을 적시고 있었다. 옆 베드의 예쁜 숙희 언니는 "루비 씨! 또 우네 또 울어, 그만 울고 얼른 자요. 눈 붓는다.”라고 말하며 맘을 편히 가져야 할 텐데, 말을 더 잇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른 베드의 할머니는 뼈밖에 남지 않아 앙상해 보였고 한 달을 넘지 못하고 아예 병원에 입원할 트렁크를 준비해 놓고 사신다며 음식은 거의 드시지 못하는지 곧 쓰러지실 거 같았다. 노환에 지병 때문에 혼자서 외롭게 사시는 불편함 들을 얘기 했지만 루비의 눈엔 예쁘장한 '갑과 선배'숙희 언니의 행동 하나하나에만 집중이 되어 갔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될까?'
'어떻게 긴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의문과 공감 속에
다음날이 되었다.
한 시간여 버스를 타고 시아버님이 병문안을 와주셨다.
''어미야!'' 하고 병실에 들어오시는데 루비는 아버님을 뵙자 민망해서 눈물이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감정 컨트롤러에 문제가 생긴 걸까? 주체할 수 없는 목에 불편함이 생기며 '꺼이꺼이' 분수 같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사실 저 많이 무서워요! 아버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사람 노릇 엄마 노릇하면서 살 수는 있을까요?'
'아이들은요? 저 정말 최고로 잘살고 싶었어요'
'이대로 살면 잘 사는 거라 생각했는데 왜 제가요. 흑흑, 아아앙.'
루비의 눈물 속엔 수많은 혼자만의 질문과 괴로운 마음이 혼합되어 멈추지 못할 만큼 흐르고 있었다.
2018.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