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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피어나는 지지 않는 풍경들

오늘의 인문학 낭송 (10분 29초)

by 김주영 작가

유독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공통점

사랑해서 시작한 일

자신에 가치를 스스로 정하는 삶의 시작

김종원 작가님과 나누는 인문학 대화

매일 아침 일찍 친정엄마께 출근을 하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문학 책을 필사하고 인증사진으로 남기는데 엄마께는 그게 내 모습이라서 사진을 찍을 때 소품으로 커피나무에서 익은 열매를 따고 더 수확한 커피 열매를 이용해 누가 뭐라 해도 ‘원두커피’라는 게 증명되도록 이런 네 글자를 만들어 놓으셨다.

‘원두 커피’


엄마는 매일 딸아이가 무엇을 하는지에 익숙해지셨고 예쁜 꽃잎도 포토존 테이블에 그대로 두셔서 아침마다 필사하고 사진을 찍는 일을 기억하고 계시는 거니까. 아이나 어른 모두는 서로의 모습과 하는 일을 눈에 담고 그걸 마음으로 본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바라보는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게 매일 무얼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그걸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게 굳이 애써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따라가게 하는 답습이며 공부가 중요한 이유가 되는 까닭일 것이다.


점심때 남동생이 오며 아주 작은 신문지에 싸인 꽃다발을 수줍게 내밀었다. 분명 꽃을 싫어하는 여인들은 없을 테니 세명의 여인이 관심을 보였고 손에 든 포장지를 조심히 벗기다 보니 옹기종기 목화솜?처럼 아니면 고운 장미 같은 꽃몽오리에 푸른 잎이 지키고 있는 다소곳한 9송이의 이름 모를 생명이 숨어있었다.


“어? 이게 무슨 꽃이지 개량종 장미인가”

엄마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화? 아니면 다알리아 꽃인가 봐”


결국에는 다 아니었고 남동생이 살포시 전해 들은 이름을 조용히 소개했다.

“작약꽃이랍니다”


늘 사무실에 방문하시는 겨울을 대표하는 ‘스토크 꽃’을 육종 하시는 대표님께서 이 작업이 끝날 때를 대비해 다음 작기로 ‘작약꽃’을 조금 심으셨다는 걸 들은 기억이 있으니 뵙지 않았어도 그분께서 회사에 다녀가셨다는 안부의 마음을 볼 수 있으니까. 모두 9송이를 여인 셋이서 똑 같이 3으로 나누고 옹기종기 각자의 집에 꼽을 생각을 하며 유난히 행복한 월요일 아침이 꽃길이 되듯 부산스러웠다.


도로변을 지날 때 튤립도 아니고 장미도 아닌 게 약용식물로 재배하는 ‘작약 꽃단지’ 라는 걸 친정아빠께서 가르쳐 주시기도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곱디 고운 핑크도 아니고 살구색도 아닌 컬러 자체가 매우 인상적인 이 꽃을 보면 나는 이처럼 예쁘게 늙기를 꿈꾸던 열정의 여왕 ‘타샤 튜더’ 할머니와 그분이 가꾸시는 미국 보스턴의 정원에서 아흔 살이 넘은 날에도 장미 전문가가 되는 꿈을 간직하고 죽기 전 92살 까지 동화 글과 삽화를 그리고 쓰고 자연의 재료와 소재를 가지고 사색 정원에 핀 야생으로 자라나는 수풀과 들에 핀 꽃으로 기억할 만큼 직접 마주한 책에서 본 꽃을 보자 내 마음은 이미 풍경과 시간이 1800년 과 현재가 교차하는 그곳으로 날아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정원의 품에 앉는 기분이 참 근사했다.


이 꽃 세 송이를 보면 정말이지 아늑한 그리움이 피어날 것 같다. 다 좋은데 향기가 없는 것은 특별한 이유다. 이 꽃이 인간에게 전하는 커다란 질문이라는 걸 바라볼 수 있고 죽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이 이곳에는 있으니까. 나는 향기를 볼 수 없는 작약 꽃에서 진한 원두커피 향기를 이름표에 걸었다. 이 꽃이 지닌 고유 넘버처럼 연한 색 작약의 꽃에는 색감만큼 삼림이 우거진 숲 속과 야생에서 자란 과일이나 초콜릿 향기로 다가와 숙성된 와인이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마치 봄 길을 지나는 길에 화려한 꽃단지를 거니는 인문학 세상에서 지성으로 피어나는 가득한 계절이며 마음이 점점 익어 순간이 멈추어 간극이 살아나는 생명의 마디마디가 전하는 오늘의 진한 향기를 귀하게 부른다.


202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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