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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영 Nov 28. 2020

제대로 나이 드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사는 집은 유난히 햇살이 좋고 교통도 편리하나 지금은 방음막이 설치되어 덜하지만 ‘12년 전’ 이곳에 이사 올 때는 기차 지나는 소리가 조금은 거슬리게 들릴 정도였다.


행복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름 공들여 내부 수리를 하고 이사를 왔지만 살아보니 며칠이 지나지 않아 층간 소음이 느껴지는 사실을 실감해야만 했다. 큰 아이가 여섯 살 일 때부터 둘째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바닥을 나무 자재로 시공하다 보니 아이들이 없는 아래층 두 분의 적막한 공간에는 장난감 떨어뜨리는 ‘또로록’ 소리만 들려도 기억했다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이나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는 날에는 아이들과 내가 마치 죄인이 되는 듯 한 취조와 질문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이해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무조건 수긍하며 죄송하다 허리를 숙였지만 마주칠 때마다

“ 내 집에서 내가 사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점점 우울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고 나는 집에서 늘 아이들을 더 잡아야 했다.

“얘들아, 뛰어다니지 마”

“조용히, 조심히, 아래층 할머니께 또 소리 듣는다.”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고 말 듣기 싫어하는 내가 이제 다시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 더할 무렵 바로 위층은 이제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니 엄마가 집에 피아노를 들이고 레슨을 받는지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쯤에는 들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피아노 건반 소리를 내 정신과 육체적 쉼의 시간에도 매일 따라서 슬프도록 들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 연주도 공간과 시간에 따라 예술이 되지만 처음 연습용 계이름들이 떠다니는 쉬고 싶은 그 시간이 나에게는 불편한 공해가 되는 점점 어색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그러나 매번 올라가서 “ 지금 내가 힘드니 제발 피아노를 치지 말아 주세요.”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그야말로 위아래에 낀 나도 선량한 이웃인 것을,


그렇게 시간이 어느덧 흐르고 그간에 아이는 사춘기가 되었고 나에게는 건강의 적신호와 갱년기가 찾아오며 우리 집에서 큰 소리가 가장 많이 나는 동안에 아래층 할머니는 이제 유모차 밀대가 있어야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세월을 실감하게 되었고 이번 누수 사건으로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내가 아끼는 꽃들을 보고 한마디 하시는 모습에 나는 할머니를 꽃의 마음으로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갑자기 전화받고 저도 무슨 일인가 해서 얼마나 놀랬게요. 그대로 서 계시지 마시고 이쪽 의자에 좀 앉으셔요.”

“응, 그럴까. 오매 이쁜 꽃들이 많이도 피어있네. 나중에 화분에 핀 꽃 좀 얻어가야 쓰겠어” 사실 말의 억양이 조금 부드럽지는 않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아드님과 한참 불편한 상황을 전하고 가셨지만 나는 그 꽃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어 출근하자마자 화분에 핀 꽃이 아닌 화병의 꽃을 생각하며 할머니께 드릴 요즘 홀릭한 ‘스토크 꽃다발’을 준비해 두었다.


흔히 여자들의 속마음을 생각하면 할머니 말씀인즉슨,

“오매, 저 꽃 이쁜 그”  뒤의 언어를 생략하고 그녀의 속마음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와, 나도 저런 꽃 진짜 받고 싶은데, 나도 저 꽃처럼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다.”

누구나 한 송이 저 꽃보다 고운 마음과 향기로 태어나 피고 지는 꽃보다 찬란한 인생을 살아갔거늘 마음 너머에 보이는 진실과 아픔으로 한 인간의 생이 교차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예전 답답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잠시, 되뇌지만, 사실 내가 피해자 가해자를 떠나 모두가 사람이 사는 모습들이었고 서로의 소통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너와 내가 풀어야 하는 일상의 숙제가 아니었을까로 대답하게 된다. 내가 풀지 못하는 불통이, 성장하는 아이와 가족들에게 번지며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창살이 되어 점점 쌓이는 화산이 되었으리라.


누구나 아이를 키워 낸 어른들이라고 해도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어르신들을 젊은이들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가 조금 더 일찍 자신의 올바른 마음가짐과 성장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서로 간의 예의를 지키며 조화로운 삶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필사를 하며 자신의 힘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인생에서 공부하는 자세를 죽을 때까지 실천하며 살아야 진정 외롭지 않은 노후를 맞을 수 있다.


지성 이 어령 박사, 괴테, 일본 초밥의 장인 지로의 말처럼 “. 매일매일 해도 끝이 없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그들은 오늘을 살아간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과 같은 사색의 일상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최고의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더 치열하도록 빛나는 그대로의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다는 것이 그분들이 전하는 삶의 비법이며 공부의 연장선이다.


매일 살아가는데 선명한 힘을 찾을 수 있는 인문학의 대가 김종원 작가의 뜨거운 언어로 살아갈 우리들이 함께 할 빛나는 글을 읽으며 보다 나은 나이 듦과 건강하게 이끄는 황혼의 인생을 위해 실천하는 힘을 꼭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돈과 명예가 아니라 절실함과 열정을 가졌을 때, 비로소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 당신이 원하는 세상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충분하다.” (김종원)


2020.11.28


김종원 작가의 하루 한 장 365 인문학 달력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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