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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7. 2022

마테리알 [오픈 스페이스]의 재빠른 후기

1. 마테리알이 주최한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를 다녀왔다. 6개의 발표 중 최지영 사운드 디자이너님의 발표를 제외한 5개의 발표를 들었고, 모두 유익했다. 오늘(4월 17일)에 진행된 함연선 편집인의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과 한민수님의 "해적질과 영화문화" 발표가 가장 기억이 선명하니 이것에 대한 후기부터 적어보자. 


2. 함연선 편집인은 소개글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수학 학원 선생님의 질문에 <화산고>라고 대답한 학생은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라고 적고 있다. 이 때 느낀 수치심, 어느새 유사-스노브로 성장한 자신의 영화 경험에 근원에 있는 게 그것이라 말한다. 제목의 "비천한 영화"는 그러한 영화를 의미한다. 그것이 어떤 양질의 경험을 준 영화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는 영화. 이런 영화의 리스트는 (함연선 편집인의 경험에 근거하면) 2001년에 몰려 있다. 이를테면 <달마야 놀자>, <신라의 달밤>, <두사부일체>, <조폭 마누라>와 같은 조폭 코미디 영화, 혹은 이동진 평론가가 "CF를 왜 돈까지 내고 봐야 하지?"라며 혹평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같은 작품들 말이다. 이런 리스트는 꽤나 길게 이어질 수 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가문의 영광>, <마파도>, <어린 신부>...... 질의응답 시간에 이런 '쌈마이'한 한국영화의 감각을 지금까지도 소화해내는 감독의 이름으로 신정원이 소환되었지만, 그는 고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언급된 영화들 이외엔 '비천한 한국 영화'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이 발표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함연선 편집인 개인의 경험담이라는 점이다.


3. 이쯤에서 내 경험담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위에 언급된 영화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밈으로만 알고 있거나, 개봉 이후 케이블 채널 방영으로 대충 본 것이 대부분이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못하다. 내가 기억하는 "비천한 한국 영화"는 정우성과 김태희가 주연을 맡았으며, (우연찮게도 <화산고>에서처럼) 허준호가 악역을 맡은 <중천>이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의 흥행 이후 <에라곤>(이것도 내 비천한 영화 리스트에 들어갈 것 같다) 같은 판타지 아류작들이 범람하던 시기였고, 함연선 편집인과 마찬가지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첫 극장 관람인 나로서는 <중천>이 꽤나 매력적인 영화였다. 물론 영화는 별로였고, 당시에도 썩 재밌게 보진 못했다. 다만 영화가 보여준 비주얼적 요소에 한동안 푹 빠져 있었다. 누군가 당시의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가 무어냐 묻는다면 <중천>이라 대답했을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누군가 그렇게 물어봤다면, 나는 함연선 편집인이 증언한 것과 유사한 수치심을 느꼈을 것 같다. <중천>은 당시에도 쫄딱 망한 영화였고, 혹평을 받았다. 이 "비천한 한국 영화" 리스트엔 몇 가지가 더 추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10억>이나 <퀵>, <포화 속으로> 같은, 당시 P2P 사이트 흥행작이었던 영화들 말이다. 이 영화들은 나에겐 일종의 입구였다. 영화는 당시에나 지금에나 썩 좋지 않았다고 기억하지만, 보는 동안에는 즐거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씨네21 같은 영화잡지에 담긴 감독들의 인터뷰는 자신이 참고한 걸작들의 리스트를 제공해주었다. 인터뷰 속 <배틀로얄>이나 <폴리스 스토리>는 개봉작 이외의 것을 모르던 어린이에게 그 바깥의 영화를 알게 해주었다.


4. 또 다른 비천함을 이야기해보자.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방의 기숙사 학교에서 보냈다. 여기서 지방이라 함은 도보로 영화관에 도달할 수 없는 환경을 말하고자 한다. 영화관에 가지 못하는 나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었다. 2주 혹은 한 달에 한번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주간에 개봉작을 몰아보거나, 노트북이나 아이팟 등 당시 손에 들고 있던 디바이스를 활용하거나. 동서울터미널에서 2000원에 팔던 무비위크와 3000원에 팔던 씨네21의 독자였던 나는 기숙사의 밀수꾼이 되었다.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를 보고 고어한 이미지에 매료되었던 내가 기숙사에 유통했던 영화들은 대충 이러하다. <팬도럼>, <인간지네>, <기니어피그> 시리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대만의 좀비 영화(찾아보니 <좀비 108>이란다), <닌자 어쎄신>, 우베 볼 영화들 등등. 늦잠이 허락되던 주말마다 고어 영화 시네마테크가 열렸고, 친구들이 이상한 영화 없냐고 물어올 때마다 기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 영화들을 보며 낄낄거리던 기억이 난다. 함연선 편집인은 영화들을 통해 배우들을 유사연애하듯 덕질했다고 이야기했고 그것을 "비천한 관람"이라 이야기했는데, 학창시절의 나는 반대 방향에서의 비천한 관람을 이어가고 있었다. 등단 이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학창시절에 본 “오만 이상한 공포 영화들”이 일종의 자양분과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오늘 "비천한 영화"에 대한 발제는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5. 학창시절의 "비천한 영화"와 "비천한 관람"을 만들어낸 영화 대부분은 해적질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중천>처럼 극장개봉작도 있긴하지만, 많은 영화는 '정품'으로 유통되기엔 너무나도 비천하여 취급되지 못하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같은 곳에서야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씨네21이나 호러영화 블로그에서 소개하던 부천영화제 기대작 리스트가 그러한 영화들을 알게 해준 통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러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던 통로는 공공의 것은 아니었다. 익명의 누군가가 올린 동영상과 자막 파일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떠올려 보니 고등학교 기숙사엔 나 말고도 자신만의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던 동기가 하나 더 있었다. 그 친구의 리스트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이마무라 쇼헤이, 베르너 헤어조크, 로베르 베르송, 왕가위 같은 이름들이 난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어께 너머로 그 영화들을 보던 나는 당시 온라인에 떠돌던 "BBC 선정 21세기 영화 베스트" 같은 정전의 리스트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네마테크를 통해 상영되는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 또한 '정품'으로 유통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OTT는 없었고, 합법 다운로드 사이트엔 없는 것이 많았다. "비천한 영화"를 보던 것과 같은 네트워크엔 소위 정전,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한가득 존재했다. 당시 나에겐 비천한 영화를 다운 받는 것과 정전/고전 영화를 다운 받는 것은 동일한 감각의 행위였다. 


6. 그러니까, 해적질은 무차별적인 취향의 리스트를 가능케 했다. 거기엔 뭔가 다른 것들이 있었다. <라쇼몽>과 <인간지네>와 <레이드: 첫 번째 습격> 사이의 위계는 나에게 없었다. 단지 재밌게 본 영화들의 리스트가 당시 갓 오픈한 왓챠에 기록되고 있었다. 물론 한민수님의 발표 내용은 정품으로 유통되지 못한 영화들의 유토피아로서 해적 네트워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던 청소년의 입장에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이 경험은 정량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 함연선 편집인의 발표보다 발표 이후 질의응답에서의 멘트들에서 유사하지만 다른 경험담들이 등장했다. 소위 "비천한 영화"들을 개봉 시기에 접한 이들은 90년대에 태어나 0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었고, 개봉작도 볼 수 있었고, <해리 포터>나 <나니아 연대기> 혹은 <스파이더맨>이 첫 극장 경험인 사람들이다. 공통점은 이정도다. 나의 비천한 영화가 <화산고>나 조폭 코미디가 아닌 <중천>과 <10억>인 것처럼, 다른 이들의 비천한 영화는 또 다를 것이다. 발표 이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러한 경험을 [커밍 업 쇼트]와 같은 양적 연구로 풀어내면 흥미롭겠다는 말이 나왔다. 제니퍼 M. 실바는 이 책을 위해 100여 명의 밀레니얼 세대 미국인을 인터뷰했고, 책은 그 결과다. 100여 명의 유사하지만 다른 경험들이 보인 지향성이, "비천한 영화"에 대한 것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비천한 영화"와 "해적질"로 시작된 영화 경험에 대해 뭔가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부터 영화가 죽었다는 말이 나돌던 시기의 아이들에 대한 뭔가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7. 난상토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파편화된 골방의 시네필들, 해적들, 글쟁이들을 뭔가로 조직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다시금 피어오른다. 아니, 사실 이는 커뮤니티라는 말에 대한 반감에 가깝기도 하다. 내가 경험한 영화 커뮤니티는 익스트림무비라던가, 조롱 뿐이 하지 못하는 루저들의 모임이라던가, 친목만이 남은 곳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속해 있는 동아리는 아주 다른 성격의 무언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다보니 뭔가 커뮤니티를 창출한다는 것에 반감이 먼저 생긴다. 방구석에만 머물러 있는 이들이 충돌할 수 있는 공간, 마테리알이 지향하는 것처럼 스루패스가 가능한 공간이라면 오늘과 같은 오픈 스페이스의 형식이라던가, 파편화된 개인들이 지지고 볶는 (각종 블로그를 포함한)SNS라던가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커뮤니티'는 좋은 싫든 의도이든 아니든 일정 부분 동질한 이들을 일컫는 무언가로 작동한다. "익무인"이나 "누갤러" 같은 단어들을 떠올려보자.... 사실 이 반감은 3년 동안의 익스트림무비 활동에서 느낀 환멸이라던가, 2020년 씨네21의 [밀레니얼 시네필] 기획에 관한 생각(https://ma-te-ri-al.online/19696961)이라던가, 여튼 이래저래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다. 임흥순의 작업에 대한 윤아랑 평론가의 발표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임흥순의 작업은 서로 다른 이들을 잠재적인 공동체로 호명하며 주체를 소거하는, 공동체를 잠재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영화 커뮤니티라 불리는 온라인의 공간들이 그러한 꼴이다. 어제 오늘의 [오픈 스페이스]는 차이들이 부딪히는 공동체로서의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이것이 오늘 강덕구님이 "콜리그를 커뮤니티로 만들고 싶다"라고 했을 때의 커뮤니티에서도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차이가 충돌하는 장소로서의 커뮤니티는 지속 가능할까? 임흥순의 반대항으로 강상우의 <김군>이나 김일란&이혁상의 <공동정범> 같은 작품들을 떠올려 볼 수는 있지만, 차이를 보존하고 주체를 소거하지 않는 공동체는 어쩌면 그 영화 속에서만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생각을 맥주 기운을 느끼며 주절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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