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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3. 2022

『인싸를 죽여라』 안젤라 네이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는 워보이가 등장한다. 가부장적이며 마초적인 리더 임모탄 조를 추종하는 그들은 맨몸으로 운전대를 잡고 폭발물이 붙은 창을 휘두른다. 지금은 인터넷 밈(meme)으로 활용되는 영화 속 한 장면은 그들의 가장 유명한 대사 "기억할게!"를 차용한다. 원래는 "Witness me"인 이 대사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내가 봤어!" 혹은 "나를 봐줘!"에 가깝지만 말이다. 자폭공격을 감행하는 워보이들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이 대사는 임모탄 조에 대한 충성을 행동과 함께 발화하는 것이자 약속된 천국인 발할라로 향하는 자신을 목격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워보이들의 반응이다. "기억할게!"라고 외치며 동료의 자폭공격을 목격하던 다른 워보이들은 공격이 어정쩡하게 들어가자 "멍청한 놈!"이라고 외친다. 


 워보이들의 대사는 『인싸를 죽여라』가 묘사하는 포챈(4chan) 사용자들과 닮아 있다. 국내로 따지만 일베나 디씨의 극우화된 갤러리에 해당하는 포챈 사용자들은 게시판에 총기난사를 암시하고 사라진 익명의 사용자를 추앙하다가, 사건이 종료된 이후 그를 조롱한다. 환호와 조롱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온라인 활동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정동이다. 안젤라 네이글의 『인싸를 죽여라』는 그러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파헤친다. 환호와 조롱은 어떻게 트럼프를 당선시키고 미국의 사회상을 바꾸어 놓았는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랍에서, 홍콩에서, 동남아시아 독재국가에서 독재타도와 민주화운동의 선두로 존재하던 "익명의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였던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왜 2010년대 중반을 통과하며 극우화되었는가? 


 온라인 상에서의 집단행동, 각종 사회운동과 캠페인은 물론 불매운동, 사이버불링 등은 얼핏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다가온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긴 하다(국정원 댓글조작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것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많은 경우, 특히 대다수의 사이버불링의 경우 행동은 조직적이라기보단 개별적이다. 개별적인 사건의 총량이 끔찍할 정도로 비대해 개별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는 어떤 환상을 낳는다. 가령 대안우파들이 조직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기 위한 행동을 했다거나 하는 식의 환상 말이다. 이들이 작동하는 방식은 2016년 한국의 촛불 정국에서 목격했던 것과, 2010년대 초반 아랍의 봄에서 목격했던 것과, 더 가까이는 2019~2021년 사이의 홍콩 민주화시위, 2020년 미국에서 시작된 BLM운동과 2021년 미얀마 독재 반대 운동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물론 시위에 등장한 각종 행사를 기획한 주체는 있을지언정, 익명의 참여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 게다가 그것이 성공한 경우에도 익명의 주체들은 와해된다. 공동의 목적이 달성된 이후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개별자들이 흩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는 미국 대안우파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들의 성공전략은 좌파적인 것, 민주화와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것이었던,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익명성의 결집으로 만들어진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게이머게이트를 비롯해 <고스트버스터즈>(2016)의 캐스트 레슬리 존스를 비롯해 수많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공격당한 사건들은 익명의 포챈과 레딧(reddit)의 몇몇 서브레딧 이용자들이 개별적으로 결집해 벌어진 사건이다. 이는 단순히 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 비백인 인종에 대한 그들의 혐오에서 추동된 것이 아니다. 안젤라 네이글은 그간 좌파 운동의 정체성 정치 전략을 그들이 전유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주요 대안우파 인사들이 유대인이고 게이인 것은 딱히 우연이 아니다. 성해방, 가벼운 마약, 수많은 구분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체성 등으로 수렴과 확장을 반복하는 위반의 전략. 68 이후 분산된 좌파적 전략을 흡수한 대안우파는 "베타메일(beta-male)" 정체성을 내세우고 스스로를 벼랑 끝에 몰린 피해자로 정체화한다. 행동에 나서는 다른 "베타메일"에 대한 환호와 조롱의 낙차가 만들어내는 정동이 이들을 결집시키는 힘이다. 그리고 많은 대안우파 인사들은 이를 활용한다.


 여기서 밈은 이들이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데 중요한 하위문화로 작동한다. 다만 여기서 사용되는 밈은 앞서 언급한 "기억할게!"와 같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가 흥미롭게 다뤄내는 것처럼, 극도로 성차별적이고, 여성/동성애혐오적이며,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밈들이 그들의 하위문화를 구성한다. 어떻게 보면 대안우파 사이에서 벌어지는 완력다툼은 어떤 밈을 선취하는가, 혹은 어떤 밈적 존재로서 자신이 존재하는가에 관한 싸움이다. 『인싸를 죽여라』가 "문화전쟁"이라 묘사하는 그 싸움은 트럼프를 당선시키고 이민자를 몰아내며 페미니스트를 쫓아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밈-자본"이라 부를 수 있을 법한 상징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싸움은, 그것이 곧 자본(이는 상징자본과 실제 부를 동시에 의미한다)을 쌓기 위해 무차별적인 미디어 전략을 펼친다는 점에서 사야크 발렌시아의 『고어 자본주의』가 분석하고 있는 "엔드리아고 주체"와도 맞닿아 있다. 물론 『인싸를 죽여라』가 분석하는 대대상과 "엔드라이고 주체"는 각각 "베타메일"과 "알파메일"이라는 다른 지향점을 향하고 있지만 말이다.


 다시 『인싸를 죽여라』로 돌아와보자. 사실 이 책이 진정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은 대안우파가 아니라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한 리버럴 좌파다. 이는 버니주의자인 저자의 성향과도 맞물리는 것이겠지만, 대선 당시 대안우파가 벌인 온라인 상에서의 각개전투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리버럴 좌파의 패배와 함께 트럼프의 미국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대안우파에 대한 분석을 경유해 리버럴 좌파를 공격하는 것에 (버니 샌더스에 동의하든 말든 간에) 동의하게 된다. 2016년 대선, 그리고 가까스로 리버럴이 승리한 2020년 대선은 무기력하게 보수화된 리버럴 좌파와 급진화된 대안우파의 싸움이다, 라고 이 책은 분석하고 있다. 즉, 리버럴 좌파의 전략은 보수화되었고, 무기력증에 빠졌으며, 분열되었다. 가속화된 캔슬컬처는 위반의 정치를 가사상태에 빠트렸고, 그 전략은 급진화된 대안우파의 손에 넘어갔다. 어떤 면에서 기독교적 보수주의에 기반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성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위반을 금지하려 한다. 좌파는 위반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는 전략을 반성적으로 소화해내는 데 실패했고, 반성없는 대안우파가 그 전략을 차지했다. <밈 전쟁>이 개구리 페페 밈이 홍콩에서 민주화의 상징으로 재전유되는 것을 보여주며 희망적으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은 여전히 익명적 온라인 네트워크를 순진하게 믿는 것에 가깝다.


 『인싸를 죽여라』가 출간된 시점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온라인에선 복잡한 논쟁이 벌어졌다. 전쟁을 생중계하는 방송국과 거기에 달리는 여성혐오적/인종차별적 댓글에 대한 비판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수많은 가짜뉴스, 전쟁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주식과 가상화폐 이야기만을 꺼내던 이들에 대한 논쟁까지. 우리는 이러한 진흙탕에서 동일한 목적을 가진 익명의 네트워크를 믿을 수 있는가? 혹은 그것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가? 인터넷에 대한 유토피아적 낙관이 붕괴한지 오래되었음에도, 그것은 메타버스라는 자본-유토피아적 형상으로 되돌아왔다. 대안우파의 밈-정치를 단순히 밈-자본주의 혹은 극우로 낙인찍고 치워버리는 대신, 점차 주류에 가까워지는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라고 『인싸를 죽여라』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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