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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15. 2022

정치적 SF를 꿈꾸다

<헌트> 이정재 2022

*스포일러 포함


 <헌트>는 독특한 영화다. 배우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이라거나, <태양은 없다> 이후 이정재와 정우성의 재회라는 영화 외적인 이슈들을 빼고 바라봐도 그렇다. 1983년 전두환 신군부 시기를 배경으로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가 안기부 내 간첩 ‘동림’을 찾아 맞붙는다는 이야기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부터 이웅평 미그기 귀순,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 등 80년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끌어 모은다. 신군부에 맞서 데모를 벌이는 운동권 대학생부터 5.18에 공수부대였던 군인, 북한군 인민무력부와 미국 CIA까지 다양한 층위의 인물군이 등장하며 당시의 상황을 스케치하듯 따라간다. 동시에 단순한 역사의 재현을 넘어 첩보액션이라는 장르에 충실한 구성을 따른다. 이는 80년대를 다룬 여러 영화, 가령 5.18을 다루면서도 ‘전두환’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뜬금없는 카체이싱을 선보인 <택시운전사>나 볼거리에 치중한 것에 가까웠던 <화려한 휴가>, 혹은 성긴 복수극이었던 <26년>이나 선정적인 고문 장면에만 치중된 <남영동 1985>, 많은 것을 생략해버린 <1987> 같은 것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헌트>는 다른 영화들이 피해가려 했던 것을 피해가지 않는다. 특정한 사건 하나를 재현하기보단 신군부 시기 벌어진 여러 사건들을 경유하며 짜여진 영화의 이야기는 일종의 우회로를 통하여 당시를 더욱 명확하게 포착하려 한다. 이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다. 영화의 첫 장면인, 전두환의 워싱턴 방문 장면을 떠올려보자. 몰려온 한인 교포들은 전두환의 볏짚 인형을 불태우고 있다. 5.18 등을 다룸에도 전두환의 이름조차 제대로 언급하지 못한 영화들과 이 영화는 그 출발점이 다르다. 두 주인공이 놓인 상황 또한 그러하다. 남파간첩 ‘동림’이었던 박평호는 대통령 사살 이후의 평화통일을 생각했지만, 적화통일이라는 방향성에 반발한다. 반대로 5.18 당시 공수부대였던 김정도는 시민을 학살한 신군부(헬기사격을 언급하는 대사가 있기도 하다)의 정당성 자체의 의문을 갖고 군부 내부에서 그곳을 전복시키려 한다. 서로 다른 상황을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전두환의 사살이라는 같은 목적 앞에서 잠시간 손을 잡는다. 남파간첩과 공수부대라는 서로 다른 조건은 이상한 방식으로 두 인물과 영화 <헌트>가 함께 서 있는 공통의 지평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처럼 역사가 이루지 못한 복수와 전복을 꾀하는 대체역사물이 아니다. 영화는 무수한 실제 사건들을 재료 삼아 만들어낸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는 교조적인 어투로 관객을 훈계하려던 <더 킹>이나, 결정적 순간에 몸을 빼던 <킹메이커>나, <광해: 왕이 된 남자>처럼 사극의 외피를 빌려 누군가를 성인군자로 추대하거나, 장르영화의 외피를 빌려 끔찍한 방식으로 지지선언을 내보내던 <창궐> 같은 한국의 무수한 정치영화와도 다르다. 언급한 영화들이 역사와 장르를 현실정치에 대한 알레고리로 끌어들이며 영화와 정치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할 때, <헌트>는 스스로가 서 있는 위치를 명확히 함으로써 두 주인공을 주축으로 다양한 집단이 가상의 시공간에서 벌이는 시뮬레이션이 된다. 

 물론 <헌트>에서 그러한 시뮬레이션이 실제 역사를 초과한 사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그 시물레이션 그 자체다. 영화 속에서 안기부 해외팀과 국내팀을 대립시키는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간첩을 색출해내기 위함이지만, 모종의 충성심이나 일종의 관리를 위한 것이다. <헌트>의 이야기가 동림을 둘러싼 첩보극에서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은 박평호와 김정도가 서로 같은 지평에서 현재를 인식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를테면 <헌트>가 내세우는 지평은 이러한 것이다. 시민을 학살한 독재자는 어떤 외교적, 경제적 이점이 있다 하더라도 ‘악’이다. 그러한 ‘악’이 사라진 이후의 세계는 알 수 없다. 김정도의 신군부 내부의 반-군부 세력은 새로운 신-신군부가 될지도 모른다.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을 원하는 박평호의 바람은 수많은 변수 속에 한반도를 밀어 넣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군부독재를 끝장내고 청산해야 한다는 공통의 지평은 두 사람이 손을 잡게 한, 서로 다른 영역에 있던 두 사람이 만나게 된 회색지대다. 수많은 이분법이 작동하는 신냉전 체제 속의 80년대 위에 마련한 회색지대는 그 자체로 당시를 다르게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헌트>는 보수적이다. <헌트>는 먼저 한 발 앞서 나가 세계를 바꾸자고 말하는 대신, 우선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공통의 지평을 상상해볼 것을 제안하는 정치적 SF다. 마침내 독재자의 면전에 총부리를 겨누는 대체역사 판타지가 아니라, 갈라진 세계를 우선 봉합해보자는 정치적 다중우주를 시도한다. <헌트>가 보여주는 보수적인 면모는 단순히 어떤 정당이나 정파, 정치인에 대한 간접적인 지지가 아니다. 많은 이슈들이 왜곡하고 있는 청산대상을 우선 청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지표명에 가깝다. 때문에 <헌트>는 너절한 지지선언과 지겨운 음모론이 가득한 한국의 여러 정치영화 가운데서 독특한 위치를 선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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