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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20. 2022

속도감 없는 탄환열차

<불릿 트레인> 데이빗 레이치 2022

 누군가의 임무에 대타를 맡게 된 프리랜서 킬러 레이디버그(브래드 피트). 그는 초고속 열차에서 서류가방 하나를 챙겨 나오는 임무를 맡았다. 같은 열차엔 레몬(브라이언 타어리 헨리)과 탠저린(에런 테일러 존슨) 형제, 프린스(조이 킹), 울프(배드 버니), 기무라(앤드류 코지), 호넷(재지 비츠) 등 여러 킬러가 각자의 이유로 탑승해 있다. 킬러들의 목적이 뒤섞이며 초고속 열차 속에서 싸움이 벌어진다. <불릿 트레인>은 <존 윅>의 공동연출로 시작해 <아토믹 블론드>, <데드풀2>, <분노의 질주: 홉스&쇼> 등의 액션영화를 꾸준히 연출하고 제작해온 데이빗 레이치의 신작이다. 1975년 제작된 소니 치바 주연의 <신칸센 대폭파>의 영어제목이 ‘Bullet Train’이라 그 영화의 리메이크인줄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서야 이사카 고타로의 2010년작 소설 [마리아 비틀]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의 오해대로 차라리 <신칸센 대폭파>의 리메이크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영화를 보고 나오며 느꼈다.

 <불릿 트레인>은 전형적인 비선형적 스토리라인을 따른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킬러 각각의 플래시백은 물론,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지는 이야기의 진짜 배후 등을 보고 있자면, 당연하게도 타란티노나 가이 리치의 몇몇 영화들이 떠오른다. 그리도 역시 당연하게도, <불릿 트레인>은 타란티노나 가이 리치의 영화처럼 정돈된 혼란스러움을 제공하지 못한다. 같은 장면에 조금씩 살을 붙여 반복하는 플래시백의 향연은 피칠갑이 된 열차 객실만큼이나 난잡하다. 영화 마지막에서야 등장하는 흑막은 너무나 익숙하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뒤집었다고 이 영화(와 원작 소설)의 플롯이 흥미로워지진 못한다. 무엇보다, 플롯이 감추고 있던 무언가가 드러나기까지 관객의 사고회로를 잠시간 하이재킹하여 이야기의 즐거움을 배가시켰어야 할 액션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데이빗 레이치의 영화에서, 영화의 다른 요소는 몰라도 액션이 실패한 경우는 없다. 물로 <아토믹 블론드>의 롱테이크처럼 호불호가 나뉠지언정,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액션을 만든 적은 없었다. 이는 그가 제작으로 참여했던 <노바디>까지 포함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액션의 컨셉도, 군상극으로써 각 캐릭터에게 부여된 개성도 없다. 레이디버그와 탠저린의 액션 스타일은 분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고, 울프나 호넷 등은 개성을 부여받기 전에 퇴장한다. 폭탄을 사용하는 프린스는 끝없이 블러핑만 늘어놓고, 장로(사나다 히로유키)의 카타나 액션은 그의 전작들을 게으르게 재탕하는 것에 그친다. 처절한 스파이 액션, 슈퍼히어로 액션의 패러디, 하드바디의 유머러스한 귀환 등 각각의 특징을 지녔던 그의 전작 속 액션들을 떠올려본다면, <불릿 트레인>의 액션은 밋밋하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찾아낼 수 없다. 무엇보다 영화 속 액션들은 킬러와 킬러가 ‘맞붙는다’기보단 상황에 ‘휩쓸려간다’는 느낌을 준다. 데이빗 레이치의 연출 필모그래피가 지난 20~30년 간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관한 메타적 계보학을 작성하는 기획들이었다면, <불릿 트레인>은 완전히 길을 잃었다. 덧붙이자면, 도쿄에서 교토로 향하는 초고속 열차가 밤새 도착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정말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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