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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22. 2022

OO은 장르화 될 수 있을까?

<늑대사냥> 김홍선 2022

*스포일러 포함


 <늑대사냥>을 보면서, 그리고 영화에 쏟아지는 혹평을 보면서 이해영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떠올렸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삼은 학원 미스터리/공포물을 기대했을 관객들에게 난데없는 SF를 선사했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신선함. <경성학교>도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렸었고, 장르팬들에 의해 재평가되긴 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늑대사냥>의 설정은 어쩔 수 없이 <경성학교>를 떠올리게끔 한다. 무엇보다 마케팅 단계에선 전혀 다른 장르를 연상시키게끔 하는 예고편과 시놉시스를 공개한 뒤, 마치 반전처럼 영화의 SF적 요소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히 유사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성학교>는 학원 미스터리/공포물을, <늑대사냥>은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바이벌 액션을 내세웠다. 개봉 전 <늑대사냥>의 정보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콘에어>의 소프트한 리메이크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폐쇄된 거대 교통수단에서 범죄자들과 경찰이 뒤섞여 유혈낭자한 생존다툼을 벌이는 것 말이다. 혹은 화물선 버전의 <배틀로얄> 장르 영화라던가. 

 오히려 이 영화는 <데드 스노우>, <오버로드>, <아이언 스카이>, <쿵 퓨리>, MCU의 하이드라 같은 장르화 된 나치 소재 장르영화를 <프레데터>와 닮은 플롯 속에 밀어 넣은 것만 같다. 아니, 범죄자들이 주인공이니 <더 프레데터>와 닮은 세팅이라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프레데터>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열화상 카메라 시점 비슷한 게 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여하튼 <늑대사냥>은 크리처물이다. 크리처의 정체는 일제의 생체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1911년생 강화인간이고, 영화의 배경인 2022년까지 살아 움직이는 녀석이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범죄자들을 호송하기 위해 활용된 화물선이, 실은 강화인간에 의해 경영되는 거대 제약 회사로 ‘알파(최귀화)’라 불리는 원조 강화인간을 운송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어떠한 이유로 깨어난 알파가 화물선을 피바다로 만든다는 것이 <늑대인간>의 마케팅이 숨기던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 플롯은 <프레데터>나 <경성학교>보다 박훈정의 <마녀>에 더 가깝다. 범죄자 일행 중 정체를 숨기던 도일(장동윤) 또한 강화인간이었다는 사실이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니까 말이다. 정리하자면, <늑대사냥>은 <콘에어>인 척하다가 <프레데터>로 변모한 뒤 <마녀>나 <경성학교>의 클라이맥스처럼 마무리되는 영화다. 

 이렇게 적으니 <늑대사냥>이 이것저것 베껴 온 산만한 영화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맞는 말이다. <늑대사냥>은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액션은 <마녀> 1, 2편보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경찰들은 과하게 무능력하고, 종두(서인국)를 필두로 한 범죄자 일당은 화물선에 침투할 때 보여준 계획적인 면모와 달리 선박을 조종할 수 있는 이들을 학살해버린다. 그들 중에 화물선을 조종할 수 있는 이가 있는지 의문이다. 선원 둘을 살려준 것을 보면 아마 아니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플래시백은 대부분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가령 종두 일당이 화물선의 엔지니어들을 죽이고 옷과 여권을 강탈하는 장면은 통으로 필요 없게 느껴지고, 도일의 과거를 보여주는 몇몇 장면은 하나로 통합했어도 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늑대사냥>이 급격하게 장르적 선회를 한다는 평가에는 반대한다. 인물들이 화물선에 탑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인 경호(이성욱)가 알파에게 수면제를 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알파를 이송하던 이가 읽던 파일, 그리고 부산항에서 작전 중이던 대웅(성동일)이 읽던 기밀문서가 일본어로 되어 있는 오래된 문서임이 드러난다. 

 그것만으로 알파가 무지막지한 살육을 일삼는 강화인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알파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당황하는 강도가 낮아질 수는 있지 않는가. 무엇보다 갑자기 나치 좀비가 나온다던가, 갑자기 나치의 강화인간이 나온다던가, 갑자기 달 뒤편에 스팀펑크 기지를 만들어둔 나치가 나온다던가 하는 영화들을 봐온 입장에서 <늑대사냥>의 장르 전환은 그렇게 당황스러운 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반응이다. “가암히 일제 생체실험을 소재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 아마 이 한줄평을 쓴 사람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같은 영화는 즐겁게 봤을 것이다. 

 <늑대사냥>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일제의 생체실험이라는 SF적 소재를 2020년대의 한국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뜻밖에도 “만주군은 나치처럼 장르화 될 수 있는가?”다. 여기엔 영화 바깥의 정치와 윤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마녀>는 일제 대신 미국을 배후로 선택하며 이 곤란함을 회피한다. <경성학교>는 일제 자체를 배경으로 삼아 문제를 정변돌파했고, 반응은 엇갈렸다. 속편을 예고하며 끝난 <늑대사냥>은 문제를 유예하는 방식을 택했다. 알파를 이송하고 도일을 비롯한 범죄자들을 상대로 강화인간 실험을 하며, 강력한 강화인간인 대웅이 속한 이곳이 일제 잔당들의 소굴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제약회사를 이끄는 인물이 알파처럼 일제강점기 시기의 인물이라는 것만이 유일한 힌트다. 대웅과의 격투 끝에 살아남은 도일의 여정이 속편에서 이어진다면 뭔가 나오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늑대사냥>의 설정은 그러한 부분에서 흥미로움을 제공한다. 전 세계가 MCU의 하이드라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한국인은 <늑대사냥> 속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만들어진 강화인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영화는 일제를 긍정하지도 않는다. 단지 일제의 결과물인 강화인간이 존재하는 세계라는, 비윤리적이며 폭력적인 어떤 세계라는 것만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늑대사냥>은, 감독의 전작들이 그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는 졸작들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늑대사냥’이라는 작전명을 보고 촌스럽다 말하는 대웅의 대사처럼 촌스러운 설정과 대사가 난무하고, 강-강-강으로 몰아치는 피의 향연으로 긴장감 같은 것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의외로 미국산 B무비들 정도만으로 ‘빻은’ 영화라는 지점도 하드보일드를 내세운 여타 한국영화들과 구별되기도 한다. (물론 성차별적인 욕설과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할 때마다 노골적인 메일-게이즈 숏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유사한 분위기의 한국영화들과 감독의 전작을 떠올려볼 때 불필요한 노출이나 성폭력 장면이 없다는 게 의외일 정도였다) 물론 이 영화를 ‘올려치기’해줄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영화를 경유하여 한국 장르영화의 어떤 길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이 ‘메이저’가 되기는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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