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15. 2022

문제는 이야기

<인생은 아름다워> 최국희 2020

 “한국에서 제작된 뮤지컬 영화”는 유독 생소하다. 물론 이준익의 <라디오스타>나 강형철의 <써니>처럼 음악과 공연이 어우러진 “음악영화”는 종종 있어왔지만, 이 영화들은 ‘뮤지컬 영화’라는 카테고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전계수의 <삼거리 극장>이나 이형곤의 <구미호 가족>처럼 저예산 장르영화의 탈을 쓴 뮤지컬 영화가 종종 등장했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지 않았다. 판소리 뮤지컬을 표방한 <소리꾼> 정도가 예외적이다. 류승완의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처럼 뮤지컬 시퀀스가 등장하는 영화조차 그 수가 많지 않다. 최국희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맘마 미아!>처럼 주크박스 뮤지컬을 표방한 영화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세연(염정아)이 첫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가족에 소홀했던 공무원 진봉(류승룡)이 들어준다는 이야기 속에, 이문세, 신중현, 이승철, 토이, 최백호 등 다양한 한국 가요를 영화에 차용하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 “왜 한국에서 뮤지컬 영화가 제작되지 않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비교적 큰 예산이 들어가고 스타 배우가 출연한, 노래와 춤으로 채워진, 충무로의 첫 대규모 뮤지컬 영화다. 시행착오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가요로 채워진 주크박스 뮤지컬임에도 선곡된 노래의 가사가 극과 크게 어긋나지도 않는다. 물론 영화/드라마와 뮤지컬 무대를 오가는 배우들에 비하면 아쉽지만, 류승룡과 염정아의 퍼포먼스는 기대 이상을 보여준다. 다만 뮤지컬 시퀀스의 화면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가령 휴게소 시퀀스에서 ‘무대’로의 전환은 보기에 당황스러울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신중현의 ‘미인’이 흘러나오며 진봉과 세연의 연애담을 보여주는 장면은 화면 곳곳이 비어있다는 느낌을 준다. 몇몇 장면에서 노래를 부르던 캐릭터가 화면상에서는 노래를 멈췄음에도 노래가 계속 들려오는 식의 구성은 다소 당황스럽다. 어린 세연(박세완)과 그의 첫사랑 정우(옹성우)의 뮤지컬 시퀀스가 하나뿐이라는 점도 아쉬움을 준다. 서울극장을 배경으로 한 오프닝 시퀀스 속 안정감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뮤지컬 장르로서의 아쉬움이다. 

 하지만 가장 문제적인 것은 이야기 자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가족을 챙기기는커녕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를 구박하던 남편이 알고 보니 뒤에서 뭔가 챙기고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다. 지겹게 반복되는, 소위 ‘츤데레’ 가부장의 이야기랄까. 첫사랑을 찾아 나서는 세연의 이야기처럼 진행되려던 이야기는 끝없이 진봉의 관점으로 되돌아간다. 류승룡 배우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코미디로 가부장적인 캐릭터가 지닌 부정적인 면모를 상쇄해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뮤지컬 시퀀스를 넣기 위해 설정된 상황들 속에서, 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이어지는 진봉과 세연의 이야기는 간단하게 스케치되고 있을 뿐이다. 학생운동, IMF, 재개발 등의 이야기는 단순한 배경으로 영화에 등장할 뿐이고,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에피소드처럼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장면들은 어색하게 등장해 어색하게 사라진다. 뮤지컬 시퀀스를 위한 징검다리로서 존재하는 에피소드들은 온전한 이야기로 기능하기 이전에 소진된다. 보편적인 가부장의 변화를 담은 신파라기엔 <인생은 아름다워>는 전형성에 너무 많이 기대어, 혹은 뮤지컬 시퀀스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들을 생략해버린다. 정교하지 못한 신파는 힘이 없고, 뮤지컬은 그 이야기에 힘을 더해주지 못한다. 결국 한국의 첫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타이틀 외에 <인생은 아름다워>가 얻을 것은 없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만하게 공감되는 연애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