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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07. 2022

산만하게 공감되는 연애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요아킴 트리에 2021

 외과 의학에서 심리학, 사진작가 등으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화가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리)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렇게 둘은 동거를 시작하지만, 10살이 넘는 나이 차이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만든다. 그러던 중 율리에는 또 다른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에이빈드(헤르베르트 노르드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속에서 율리에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 요아킴 트리에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이자 <라프라이즈>, <오슬로, 8월 31일>에 이은 ‘오슬로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그의 이상한 필모그래피만큼이나 이상한 작품이다. 건조한 가족 드라마였던 <라우더 댄 밤즈>나 초능력 레즈비언 호러였던 <델마>와 이번 작품은 큰 차이를 보인다. 그의 세 근작만 놓고 본다면, 요아킴 트리에는 제멋대로 장르를 오가는 괴팍한 감독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번 영화를 두고 “썸머 시점의 <500일의 썸머>”라 말한다. 그럴 정도로 이 영화는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다. 철들지 못한 남자가 괜찮은 여자들을 만나 성장하는 수많은 로맨스/로맨틱 코미디와 반대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괴짜인 여자가 나름대로 괜찮은 남자들을 만나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율리에에게 악셀과 에이빈드라는 두 사람은 그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발판이 되어준다. 스스로를 괴짜라고 인정하는, 변덕스러운 율리에는 사랑을 매개로 한 관계들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채워간다. 그 과정은 상대방에게 ‘최악’으로 남는 것과 같다. 변덕스러운 자신을 남에게 속절없이 드러내는 것, 사랑은 그 과정을 가능케 하는 촉매제로써 이 영화 속에서 기능한다. 

 다만 그 과정은 꾀나 산만하게 흘러간다. “프롤로그, 에필로그와 12개의 챕터로 구성됨”이라는 자막이 예고해준 것처럼, 영화는 14개의 파트로 쪼개져 있다. 율리에의 전사를 빠르게 훑는 프롤로그부터 두 남자와의 만남이 끝난 이후를 보여주는 에필로그까지, 128분의 러닝타임은 숨 가쁘게 흘러간다. 율리에의 삶은 두 남자와의 만남과 사랑 외에도 많은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의대생에서 사진작가에 이르는, 진로탐색을 빙자한 방황이 있다. 이혼한 뒤 재혼한 아버지와의 관계도 중요한 이슈다. 피임이나 임신 계획 등 또한 율리에에겐 일상적이면서도 중대한 사안들이다. 많은 것들은 율리에의 상황 속에서 뒤섞인다. 그것들이 뭉쳐져 제시되는 환각 시퀀스는 흥미롭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영화를 보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율리에의 이슈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율리에가 악셀을 떠나 에이빈드에게로 향하는 ‘정지 시퀀스’처럼 “영화적인 순간”을 강조하는 장면 같은 것이 반복되며 피로함을 주기도 한다. 전작 <라우더 댄 밤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율리에가 달리는 오슬로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일종의 차력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이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겹쳐보이게끔 하는 율리에의 복잡한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흥미로운 각본에 비해 영화 자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지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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