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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Sep 04. 2022

익숙한 복수극

<노스맨> 로버트 에거스 2022

 삼촌 프욀니르(클라에스 방)에게 아버지이자 국왕인 아우르반딜(에단 호크)을 잃고 어머니 구드룬(니콜 키드먼)마저 빼앗긴 암레트(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복수를 다짐한다. 예언자(비요크)의 말에 따라 노예로 위장한 그는 다른 이유로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올가(안야 테일러 조이)와 함께 복수를 계획한다. 데뷔작 <더 위치>에서는 마녀재판을, <라이트하우스>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끌어왔던 로버트 에거스는 세 번째 영화 <노스맨>에서 북유럽 신화를 가져온다. 셰익스피어 [햄릿]의 원형이 된 덴마크 전설 속 인물 암레트의 이야기를 각색한 이 영화는, 익숙한 복수극의 플롯에 발할라에 가고자 하는 전사의 이미지를 더한다. 오딘과 그의 까마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노른, 발키리와 발할라의 입구,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늑대 펜리르 등의 이미지와 이름이 등장하고, 그것은 암레트의 행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노스맨>은 에거스의 전작들처럼 (피와 물의) 비린내가 진동하고 역겨운 것들이 쏟아지는 듯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10세기 북유럽을 배경으로 한 만큼 야만적인 침략과 전쟁, 끝없는 살육행위, 원시적인 종교행위 등이 반복하여 등장한다. 그러한 요소들은 에거스의 전작들을 보았을 관객들이 기대했을 법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다만 <노스맨>은 에거스의 전작들과 달리 신화나 설화를 충실히 영상화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더 위치>는 중세시기 마녀재판으로 대표되는 여성혐오에 대한 일종의 우화였다. <라이트하우스>는 두 주인공의 팔루스를 극한에 가깝게 충돌시키며 벌어지는 긴장상태를 신화적으로 풀어낸 영화였다. 반면 <노스맨>의 기획은 바이킹과 북유럽 신화의 충실한 재현을 넘어서지 못한다. 익숙한 운명론적 플롯은 영화를 특정한 상태로 고정시킨다. 암레트가 결국 운명적인 복수의 길로 끝없이 되돌아오는 것처럼, <노스맨> 또한 너무 많이 반복된 이야기로 회귀할 뿐이다. 이미 무수한 버전의 [햄릿]이 존재하는 와중에 <노스맨>은 그저 “발할라를 추구하는 햄릿”의 이야기 정도에 머무를 뿐이다.

 물론 <노스맨>이 137분의 러닝타임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영화는 아니다. 배우들의 호연과 에거스의 영화가 항상 보여주었던 어둡고 침울한 이미지, 고증을 거친 10세기 바이킹의 모습 등은 <노스맨>을 즐겁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단지 <노스맨>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본, 더불어 현재의 무언가를 겨냥하지도 않는, 그런 이야기일 뿐이다. 에거슨는 <노스맨>을 두고 “<코난 더 바바리안>처럼 찍은 <안드레이 루블로프>”라고 말했지만, 그 결과물은 둘 사이의 종합이 아닌 어중간한 위치 어딘가에 도착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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