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동주>
이준익 감독이 전작 <사도>이후 겨우 반년 만에 신작 <동주>를 가지고 돌아왔다. 제목 그대로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리고 있다. 북간도에서 태어나 보낸 10대 시절부터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행적을 담았다. 윤동주와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후쿠오카 교도소까지 함께한 친구 송몽규를 함께 등장시켜 윤동주의 삶의 현실감을 부여했다. 윤동주는 강하늘이, 송몽규는 박정민이 각각 연기했다.
영화는 독특하게도 흑백으로 진행된다. 엔딩크레딧의 자료사진 몇 장을 제외하면 정말 단 한 번도 컬러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준익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윤동주 시인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학사모를 쓴 흑백사진이지 않나. 또한 5억 원의 저예산 영화인지라 세트와 의상, 분장에 많은 돈을 쓸 수 없었다. 흑백으로 찍으면 옛날 분위기가 나오더라.”라고 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흑백의 화면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컷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재연 같아 보인다. 국어 교과서 속 사진의 윤동주 시인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이랄까. 물론 강하늘의 외모가 윤동주 시인과 닮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송몽규와 박정민은 안경과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꽤 닮았다.)
당연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은 윤동주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후쿠오카 교도소에 수감되어 심문을 받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 편집된 병렬구조의 서사이다.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동주를 심문하는 일본경찰은 몽규의 행적에 대해서 동주에게 묻는다. 몽규와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대부분의 삶을 함께했기에 동주의 삶에서 몽규가 차지하는 크기는 절대적이다. 동주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진학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 이유에는 몽규가 있었다. 2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동주는 문예잡지를 만들고, 독립운동에 참가하고, 일본에서까지 학생운동을 이끄는 몽규를 바라본다. 윤동주가 시를 쓰는 것은 송몽규에 대한 열등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몽규가 과정은 치열하지만 결과가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문예잡지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지만 실패했고, 임시정부로 떠나고 나선 환멸만을 느끼게 되었으며, 일본에서의 학생운동은 하나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로 제압당한다. 언제나 열정적이었지만 남은 결과물이 없었다. 아마 사람들이 송몽규라는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반대로 윤동주는 확실한 결과물이 남았다. 그가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죽고 난 뒤 1946년에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이 그 결과물이다. 윤동주는 인생의 굴곡마다 시를 썼고 시로 족적을 남겼다. 몽규는 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이름 뒤로 숨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는 결국 세상에 남았다.
영화 중간 중간 윤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의 목소리로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어준다. <별 헤는 밤>, <사랑스런 추억> 등 여러 시들이 시상을 그대로 찍은 장면과 함께 등장한다.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시는 <쉽게 쓰여진 시>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 몽규를 바라보는 동주의 마음을 담아낸 것 같았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라는 구절과 함께 수갑 찬 양 손을 잡는 장면에서 그럼에도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윤동주의 어떤 결의가 느껴졌다.
전기영화라는 한계점이 명확한 영화이다. 몇몇 장면들은 지루하고, 국어 교과서와 역사 교과서를 함께 공부하는 듯한 피로감이 몰려올 때도 있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의 시가 귀에 들려올 때, 흑백의 화면, 배우들의 호연과 어우러질 때 <동주>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비록 윤동주 시인의 시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접해본 것이 전부지만, 영화는 그의 시를 가슴까지 전해 주었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