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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2년 12월 17~18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될 독립영화 기획전 “독립영화하다”를 기획하게 된 이유에 관한 것이다. 다음은 이 기획의 컨셉이자 제목인 “독립영화하다”를 처음 떠올렸을 때 쓴 기획의도다.
“지금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는 과거에 소형영화, 작은 영화, 학생영화, 민중영화 등으로 불리었던 시기, 90년대 인디포럼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등장으로 그 이름이 자리잡은 시기의 영화들과 다르다. 현재 ‘독립영화’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영화들은 실로 많은 곳에서 생산 및 유통되고 있다. 독립영화는 근본적으로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학교, 영화제, 미술관, 대안공간, 공공기관, OTT와 방송국, 틱톡과 유튜브, 그리고 종종 기업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인정’과 같은 행정적 절차들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독립영화를 포괄하지 못한다.
올해 인디포럼 월례비행을 통해 소개된 영화들은 ‘독립영화’의 지형이 복잡함을 보여주고 있다. 자주제작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KAFA 졸업작품, 지역영화, OTT 옴니버스 시리즈, 실험적 장르영화, 미술계에서 생산된 영상작업, 사적 다큐멘터리. 더 많은 영상들이 ‘영화’로 유통되는 한, 독립영화의 영토는 계속해서 확장될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서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립영화의 영토는 영화의 영토가 확장된 만큼 늘어났다. 독립영화의 ‘독립’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확한 규정을 내리는 것은 과거보다 더욱 힘들어졌다. 때문에 ‘독립영화’라는 명사를 규명하는 것 대신 ‘독립영화하다’라는 동사의 형태로 독립영화를 재고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바라볼 때 독립영화가 무엇으로부터 독립하려 하는지, 어떤 것들과 구별되는 태도인지 탐색해 나갈 수 있다. 본 기획전은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하기’와 ‘영화하기’를 실천하고 있는 영화들을 상영하고, 독립영화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이 글은 ‘독립영화비평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한 프리랜서 평론가가 2년 간 봐온 ‘독립영화’에 관한 생각들이며, 지난 한 해 동안 인디포럼에서 일하며 9번의 인디포럼 월례비행 상영회를 진행하며 떠올린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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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에 한 지인이 자신의 학부 졸업영화가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SNS에 올렸다. 이미 한 차례 승인받지 못했던 터라, 더 이상의 재신청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개봉을 준비하던 작품이 독립영화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상 극장 개봉은 불가능하다는 것과 같다. 독립/예술영화 인정을 받지 못한 영화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서의 상영이 어렵다. “어렵다”고 적은 이유는, 상영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준수해야하는 독립/예술영화 상영횟수 쿼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극장은 행사나 흥행을 위해 종종 대형 영화들을 상영한다. 이를테면 <놉>이나 <기생충>, 혹은 유명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같은 작품들 말이다. 이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흥행작의 상영은 극장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독립/예술영화 인정을 받은 영화 중에서도 인지도와 흥행성이 떨어지는 작품들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안에서도 기회를 따 내야 한다. 때문에 영진위의 독립영화인정은 개봉을 위한 1차적 관문이다. 멀티플렉스 3사는 그러한 영화들에게 상영관을 내어주지 않는다.
많은 영화학교에서 제작된 과제작과 졸업영화가 전국의 독립영화제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지인의 영화는 왜 독립영화인정을 받지 못했을까? 사실 대부분의 ‘독랍영화’는 영진위 독립영화인정의 범위 바깥에 있다. 영진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8조 제1항 제2호와 관련한 한국독립영화 인정을 위하여 ‘독립·예술영화 인정 등에 관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독립영화 인정 심사를 진행”[1]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영비법 제38조는 “전용상영관에 대한 지원”에 관한 조항이다. 이 조항 안에는 (1)한국영화, (2)애니메이션영화ㆍ소형영화ㆍ단편영화 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정하는 예술영화ㆍ독립영화 (3)청소년관람가영화로 영화들을 분류하고 있다. 전용상영관은 “연간 상영일수의 100분의 60 이상 상영하는” 상영관을 의미한다.[2] 영진위 DB에서 전용상영관 현황을 들어가보면 독립/예술영화, 청소년영화, 애니메이션영화 전용상영관의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독립/예술영화 전용상영관에는 CGV 아트하우스, 롯데시네마 아르떼, 메가박스 필름 소사이어티 등을 포함하여 69개의 상영관이 있다.[3] 69개의 상영관에서 개봉하지 않을 예정인 영화는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인정을 받을 이유가 없다. 무수한 단편영화, 미개봉영화가 영진위 DB 독립영화 리스트에서 누락된 이유다.
그렇다면 독립영화인정 기준은 무엇일까? 영진위 홈페이지의 “독립‧예술영화 인정에 관한 업무 규정”을 보자면, (1)상업영화가 다루지 않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쟁점과 인물을 깊이 있게 다룬 영화 (2)편견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으로 차별화된 경험을 전달하는 영화 (3)새로운 지식을 제공하고 대안적 의제를 제기하는 영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보시다시피, 심사자에 따라 무수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추상적인 기준이다. 추가로 “독립‧예술영화 인정에 관한 심사운영 세칙”을 보면 대형배급사의 작품을 제외하는 규정 및 독립영화 자동인정 기준이 있다. 자동인정 기준은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 지원사업을 받은 영화,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의 독립영화 제작 및 배급지원 사업을 받은 영화, 3년 이상 개최된 국제/국내영화제나 영진위 '국내영화제 육성지원 사업' 지원 대상 영화제에서 상영 및 수상한 영화, 배급사가 신청한 단편영화 등이다. 다시 말해 공공의 제작지원을 받았거나, 영화제 상영작이거나, 배급사를 잡은 단편영화가 아니면 위의 추상적인 기준을 통해 심사를 받아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종의 ‘행정적 기준’에 들어맞지 못한 영화는 독립영화인정을 받지 못한다. 영화제에 상영되지 못하고, 개봉도 하지 못한 영화는 지난 20여년 간 형성된 독립영화 유통배급 시스템 속에 포괄되지 못한다. 2020년 이래로 블로그[4]를 통해 자가배급을 실천하는 김응수 감독 같은 극소수의 사례만이 기존의 유통망 바깥에 존재할 뿐이다. 물론 영진위의 독립영화인정이 어떤 영화가 독립영화인지 결정하는 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이 기준은 개봉지원을 위한 제도적 절차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를테면 김기영 감독의 <화녀>와 유작 <죽어도 좋은 경험: 천사여 악녀가 되라>는 2021년 (재)개봉 당시 독립영화인정을 받아 개봉되었다. 통상적으로 재개봉작, 미개봉작의 늦장개봉이 예술영화인정만을 받아왔던 것을 떠올려보면 특이한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대형 OTT 서비스를 통해 제작된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웨이브와 MBC가 공동제작한 SF 옴니버스 시리즈 <SF8> 중 민규동의 <간호중>은 독립영화인정을 받았다. 독립영화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독립영화배급사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 윤성호의 <미지의 세계 시즌투에피원>이나 조현철, 이태안의 <부스럭> 등은 JTBC와 티빙이 공동제작한 프로그램 <전제관람가+숏버스터>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영화제 등을 통해 독립영화로 유통되고 있다. 독립영화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자동인정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아직 독립영화인정이 정착되기 이전에 제작된 류승완, 노동석, 임순례 등 2000년대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초기작이 제도적으로 ‘독립영화’가 아닌 ‘예술영화’로 유통되고 있는 것과 맞물려 기묘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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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개봉지원 및 전용상영관 지원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를 통해 독립영화를 정의할 생각은 없다. <간호중>처럼 대기업과 방송국의 자본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독립영화가 아니라 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대신 무엇이 왜곡되고, 무엇이 제도 안에 속하지 못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지난 8월 인디포럼 월례비행은 조현철, 이태안의 <부스럭>을 상영했다. 본래 26분의 러닝타임으로 <전체관람가+숏버스터>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소개되었던 이 작품을 123분의 러닝타임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에서 <부스럭+토크 리얼리티>라는 제목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왓챠 등 영화DB에 등록된 이 영화의 출연진은 천우희, 조현철 등이다. 하지만 월례비행을 통해 첫 공개된 123분 판본의 출연진에는 이태안 감독을 포함해 문소리, 윤종신, 김도훈, 노홍철이 추가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체관람가+숏버스터>는 영화의 감독과 출연진이 나와 네 명의 패널과 이야기를 나누고, 제작한 단편영화를 상영한 뒤 다시 토크를 이어가는 형태의 방송이다. <부스럭>의 123분 판본은 그 과정을 전부 영화에 포함되었다. 방송분량상 혹은 방송에 포함되기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담기지 못했던 조현철과 이태안 감독의 토크가, 방송용 자막 없이, 그리고 방송과는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화면으로 담겨 있다.
윤종신과 김도훈은 방송 내에서 조현철, 이태안, 천우희가 선보인 일종의 퍼포먼스 – 단편 <부스럭>의 내용이 영화 바깥으로 확장되는 듯한 상황의 연출 – 을 보고 자신들 또한 영화의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말한다. 방송 자체를 영화의 일부로 포함시켜버리는 이 퍼포먼스에 관한 가치평가는 잠시 뒤로 미루자.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다. <전체관람가+숏버스터>는 전작인 <전체관람가>와 마찬가지로 독립영화 프로젝트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단편영화는 독립영화가 아니다. 첫 시즌에 참여한 감독은 이명세, 배종, 정윤철, 임필성, 이경미, 이원석, 봉만대, 창감독, 양익준이며, 이번 시즌에 참여한 감독은 곽경택, 곡사형제, 윤성호, 홍석재, 김초희, 류덕환, 조현철&이태안, 주동민이다. 두 시즌 모두 독립영화에서 출발한 이들과 여전히 독립영화의 영역에서 작업하는 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JTBC와 티빙이라는 자본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독립영화’라고 부르긴 어딘가 애매하다. 다만 독립영화 배급사인 필름다빈에서 윤성호의 <미지의 세계 시즌투에피원>는 앞서 언급한 독립영화 자동인정 기준을 충족하게 되며, 그 외의 작품들 또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서 상영되며 자동인정 기준을 충족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부스럭>의 선택이다. 조현철, 이태안, 천우희가 방송 본편에서 선보인 일종의 해프닝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월례비행을 통해 처음 공개된 <부스럭+토크 리얼리티>는 <전체관람가+숏버스터>라는 방송 자체를 독립영화의 영역으로 납치해온다. 지난 월례비행을 위해 쓴 리뷰에서 나는 조현철과 이태안의 퍼포먼스가 영화가 아니었던 세계를 영화라는 세계 속으로 하이재킹한다고 썼다.[5] 당시에는 쓰지 않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사람은 OTT 플랫폼과 TV 프로그램을 독립영화로 하이재킹하고 있다. ‘하이재킹(Hijacking)’은 원래 금주법 시기 불법제조주류를 운송 중에 강탈하던 미국 갱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운송수단의 납치, 특히 항공기 납치에 주로 사용되는 용어다. 때문에 하이재킹은 운송수단을 강탈한다기보단, 무언가를 실어나르는 장소 자체의 강탈에 가깝다. <부스럭>이 보여주었던 것은, 두 연출자가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예시로 들어 말했던 것처럼 이 세계의 인물을 저 세계로 어느 순간 옮겨버리는, 이를테면 서로 다른 평행우주를 아무런 예고 없이 충돌시켜버리는 것만 같은 이야기다. 그러한 이야기의 <부스럭>을 영화 바깥의 <전체관람가+숏버스터>의 촬영장으로 확장한다. 혹은 영화 바깥이라는 장소를 영화로 하이재킹한다.
이 과정은 OTT를 통해 송출되었지만, 동시에 조현철과 이태안만의 독자적인 버전 - 123분의 <부스럭+토크 리얼리타> - 는 월례비행과 커뮤니티비프를 통해서만 유통되었다. OTT의 현장을 고스란히 하이재킹하여 독립영화의 영역으로 가져온다. 그렇다고 할 때 이 영화는 독립영화인가, 아닌가? 한국 독립영화는 35mm로 제작되는 주류 영화에 대항하기 위해 8mm, 16mm 필름 제작을 추구하며 시작되었고, 충무로가 아닌 곳을 터전으로 삼았으며, 비디오의 가벼움과 경제성을 실험했다. 2010년을 전후로 하여 독립영화는 CGV 무비꼴라주(현 CGV 아트하우스), CJ 문화재단 등의 투자 및 배급지원을 통해 제작 및 개봉되었고, 그것을 통해 영화를 생산해왔다. 글 맨 앞의 기획의도에 적은 것처럼 CJ와 같은 대기업 또한 독립영화의 플레이어로 들어온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때문에 <부스럭>에 자본을 제공한 이들이 JTBC와 (CJ계열의) 티빙이라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OTT 플랫폼을 단순히 유통망으로써가 아닌 작품 제작을 위한 플랫폼으로 ‘하이재킹’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부스럭+토크 리얼리티>의 의의일 것이다.
3.
물론 독립영화는 여전히 학교, 기업, OTT 등과 무관하게 생산되곤 한다. ‘다큰아씨들 프로젝트’의 작품들이 그렇다. 허지예와 강예솔 감독의 영화제작사 HERFILM을 주축으로, 그들과 함께 배우와 스탭으로 작업했던 박수안, 김소라 감독이 함께 활동하는 팀이다. 2021년 허지예 감독의 <Save The Cat>을 시즌0 삼아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강예솔의 <로봇이 아닙니다.>, 박수안의 <핑크 펑크>, 김소라의 <연애중>까지 이어졌다. 이번 “독립영화하다” 기획전에서는 <연애중>을 제외한 세 편의 영화(와 허지예의 신작 <두 여자의 방>)가 상영된다.
다큰아씨들은 제작지원 대신 관객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후원을 받는 방식이다. 지금도 텀블벅에서는 수많은 독립영화의 펀딩이 진행 중이기에, 후원을 통해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허나 다큰아씨들은 SNS를 통해 팀의 계좌를 공개하고 직접 후원을 받는다. 후원자들은 추후 퍼플레이 등의 플랫폼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시사에 참여할 수 있다. 텀블벅을 통한 후원금은 목표치가 설정되어 있으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펀딩 자체가 취소된다. 하지만 다큰아씨들은 후원금의 목표치가 정해져 있지 않다. 돈이 적게 들어오면 적게 들어오는 대로 예산을 맞추어 작품을 제작한다. 한 분기를 한 시즌으로 삼아, 네 명의 감독이 돌아가며 연출과 메인스탭을 맡는다. 후원금 모금이 완료되면 예산에 맞추어 영화의 방향성을 변경하기도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웹진 퍼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실려 있다.[6]
정해진 예산 안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모든 영화가 마찬가지이지만, 다큰아씨들의 방법은 상당히 흥미롭다. 자신이 원하는 최선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그것에 맞추어 펀딩을 받거나 제작지원을 구하는 노동력의 방향을 영화제작으로 향하게끔 한다. 텀블벅 펀딩을 준비해보았거나, 영진위나 영화제, 혹은 영화가 아닌 영역이라도 예술활동에 관한 지원사업을 신청해보았다면, 어느새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들어가는 노동력이 활동 자체에 필요한 노동력을 초과하게 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더불어 각종 지원사업이 요구하는 마감기한이라는 외부적 제약이 종종 부가되기도 한다. 다큰아씨들 프로젝트 또한 후원자와 약속한 마감이 있긴 하지만, 비교적 그것에서 자유롭다.
물론 그렇게 제작된 영화들이 제작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만들 때의 태도와 방식의 문제지, 영화의 완성도가 아니다. (당연하지만 다큰아씨들의 영화들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큰아씨들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작품들은 각자의 개성과 주제만으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강예솔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를 위해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영진위와 영화제뿐만이 아니라 말하기도 했다.[7] 영화가 전시되고 영상설치작업이 상영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가져야 할 것은 유연한 방법과 작업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큰아씨들은 프로젝트의 최종목표가 후원을 통해 생계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이는 불가능한 소원에 가까울지 모른다. 독립영화에 대한 투자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몇몇 기업이 사회공헌사업의 일부로 진행되는 제작지원을 통해 사실상의 투자를 하고는 있지만, 어떤 산업적인 가치를 찾을 수 있진 않다. 신작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을 공개한, 나름 중견 독립영화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이광국 감독과 같은 이들도 좀처럼 투자 받아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영화제작은 모두의 고민이며, 다큰아씨들이 지난 1년간 보여준 성과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큰아씨들 프로젝트 외에도 박세영의 <다섯 번째 흉추>, 박송열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이하람의 <기행> 등 작년과 올해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은 어떠한 제작지원도 받지 않은 채 제작되었다. “독립영화하다” 기획전의 두 번째 섹션 “자주 단편”에서 상영되는 마산영화구락부와 대전의 INK에서 제작된 일곱 편의 단편 또한 제작지원과 관계없이 각자의 단체에서 진행한 워크숍을 통해 제작되었다. 제작지원을 받지 않은 채 영화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독립영화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들이 영화를 만듦에 있어 무엇을 생각했을지 고려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4.
*기존 발행글의 워딩 "박세영 감독이 던진 말은 기획전의 세 번째 섹션 “무빙 이미지 무빙!”의 단초가 되었다. (다소 급박하게 던진 아이디어를 흥미로운 섹션으로 만들어준 마테리알에 감사를)"이 '섹션3 무빙 이미지 무빙!'을 필자가 전부 기획한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글을 정정한다. 해당 섹션과 상영작과 대담자는 마테리알 편집진과 김신재 큐레이터/프로듀서를 통해 선정 및 섭외되었으며, 아래는 박세영 감독의 발언을 토대로 '섹션3 무빙 이미지 무빙!'과 미술영상-독립영화의 관계에 관한 필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앞선 글에서 박세영의 <다섯 번째 흉추>를 언급한 김에 이야기하자면, 지난 9월 월례비행 때 박세영 감독이 던진 말은 미술계에서 생산된 영상작업과 독립영화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박세영 감독의 작업을 꾸준히 쫓아온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그의 작업은 영화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댄스필름에 가까운 <Vertigo>, 실험영화제 EXIS에서 수상했던 <호텔과 시청 사이에서>를 비롯해 2020년의 2인전 [Bump!]에서 전시된 여러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독립영화 관객이라면 물론 <캐쉬백>, <Godspeed>, <금장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영화’ 작업들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는 미술의 영역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온 인물이다. 9월 월례비행 모더레이터였던 윤아랑 평론가는 영화 작업과 비디오 아트 작업 사이의 차이에 관해 물었고, 박세영은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같은 작업이 어디에 가면 영화고 어디에서는 미술이라더라”라고 대답했다.
박세영의 말처럼 미술계에서 생산된 작품이 영화계로, 영화계에서 생산된 작품이 미술계로 왕래하는 일은 한없이 익숙하다. ‘영화의 재배치’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 사실 이는 매우 오래된 일이다. 우리는 부뉴엘이 달리와 함께 <안달루시아의 개>를 만들었으며 뒤샹은 영화를 전시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워홀이 만든 여러 영화, 파로키, 바르다, 메카스가 선보인 전시를 떠올려도 된다. 사례는 많다. 이 작품들은 실험영화, 실험 다큐멘터리, 에세이영화 등의 이름으로 유통된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의 상황은 약간 다르다. 미술과 영화를 오가며 작업하는 이들, 임흥순, 박찬경, 무진형제와 같은 ‘중견작가’ 외에도 박세영, 차재민, 김희천, 정여름, 홍민키, 김영글 등의 작품 또한 양쪽에서 소화되고 있다. 일례로 정여름의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은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지만 전시 또한 이루어졌으며, 2021년 인디포럼 개막작이었던 홍민키의 <들랑날랑 혼삿길>과 박유정의 <The Future of Futures 1>은 전시의 형태로도 여러 공간에서 소개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 미술과 영화를, 전시와 상영을 오가는 작품들은 ‘독립영화’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작가’와 ‘감독’이라는 호칭을 ‘상영’과 ‘전시’ 여부에 따라 번갈아 가며 사용하게 된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독립영화의 영토가 미술에 의해 침략당한다는 투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부스럭>의 사례처럼 독립영화의 범위가 한없이 유동적임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인디포럼은 여러 차례 ‘작가전’의 형식으로 염지혜, 차재민 등 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해온 이들의 영상작업을 상영했다.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이들의 작품을 실험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로 수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카탈로그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반대로 미술관이나 대안공간에서 이들의 작업을 접한 관객은 이들의 작품을 미술작업 혹은 영상설치작업 같은 카테고리에 두었을 것이다. 이 작업들은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업이 영화의 영역으로 넘어왔을 때, 당연하지만 극장에 개봉하거나 OTT를 통해 서비스되기는 어렵다. 물론 임흥순이나 박찬경 같은 예외는 있지만, 그들의 영화는 독립영화, 독립 다큐멘터리, 실험 다큐멘터리 같은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상설치작업과 독립영화는, 완전히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교집합을 지니고 있다. 각각의 상황에서 다르게 수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이 영화제와 기획전에서 독립영화로써 수용되고 있다고 할 때, 이 작품을 만들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독립영화’라 생각할까? 물론 그것은 각각의 작가/감독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사실 이 물음은 독립영화 전체를 향해야 한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면 독립영화인가? OTT 플랫폼을 통해 생산된다면 독립영화인가? 영진위의 인정을 받은 작품만이 독립영화인가?
5.
기획전 “독립영화하다”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시작했다. 인디포럼은 어떤 영화제인가?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독립영화제가 개최되고 있고, 소위 6대 국제영화제라 불리는 곳에서 상영되는 한국영화의 95% 이상은 독립영화로 분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디포럼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올해 여러 일을 진행하며 인디포럼의 과거를 탐색해볼 기회가 있었다. 1996년 “아마추어에서 작가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시작했던 인디포럼은 2001년 “영토확장”을, 2002년과 2003년에는 “꽃순이, 칼을 들다”와 "산점(散點)-미학선언1. 의미의 비종속성"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독립영화의 영토확장을 꾀하자마자 다시금 영토에 선을 그은 것이다. 당시 상황에 관한 이야기는 인디포럼 15주년 기념 책자와 유운성 평론가의 글 “반딧불의 시간: 제2기 인디포럼, 그리고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관견(管見)”[8]을 참고할 수 있다.
인디포럼은 꾸준히 영화영화 자체에 관한 질문을 던져 왔고,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디포럼의 존재 의의가 있다면 그것일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독립영화의 배급과 유통, 정책 등 산업과 제도에 관한 논의의 장이다. 각 지역의 독립영화제는 지역영화 내지는 지속가능성에 관한 논의를 이어간다. 인디포럼이 ‘독립영화제’로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독립영화 자체에 관한 것이다. 위의 기획의도에도 적었지만 “독립영화하다”라는 이름은 이러한 고민 위에서 떠올렸다. 영화의 영토를 구획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립영화’는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이 기획전은 쉬이 대답할 수 없는 이 문제를 돌파해보려는 하나의 시도이자 고민을 나누어 보고자 하는 제안이다. 다섯 개의 섹션이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자리라고 자신한다. 인디포럼 홈페이지에서 상영작 정보 확인할 수 있으며, 인디스페이스 예매링크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인디포럼 홈페이지 https://indieforum.co.kr/blogPost/sky_010
인디스페이스 예매 링크 https://www.tinyticket.net/tag/ETAIuTvF0bIk
[1] https://www.kofic.or.kr/kofic/business/guid/introGuideKorMovie.do#
[3]여담이지만, 애니메이션 전용관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만화영화상영관 단 한 곳이며, 청소년영화 전용관은 멀티플렉스 3사의 거의 모든 특별관을 합친 78개관이다.
[4] https://kimeungsu.blogspot.com/
[5] https://indieforum.co.kr/blogPost/review006
[6] https://purzoom.com/article_detail.php?articleId=183\
[7] https://actmediact.tistory.com/1594
[8] http://annual-parallax.blogspot.com/2019/0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