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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2. 2022

영화의 무대화

<영웅> 윤제균 2022

 안중근(정성화)은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와 가족들을 두고 독립전쟁을 위해 떠난다. 성공과 실패를 겪던 나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두식(조우진), 우덕순(조재윤), 조도선(배정남), 유동하(이현우), 마진주(박진주) 등과 머물며 후일을 도모하던 중, 정보원 설희(김고은)로부터 이토 히로부미(김승락)이 하얼빈을 찾는다는 첩보를 받는다. 그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자 거사를 준비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주연배우 또한 그대로 데려온 영화 <영웅>은 익숙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안중근 열사의 이야기는 이미 수차례 영화로, 드라마로, 연극과 뮤지컬로 만들어진 바 있기도 하고, 독립운동사의 무수한 이야기 중에서도 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에 연출로 복귀하는 윤제균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과 뮤지컬 영화라는 지점에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결과적으로 <영웅>은 윤제균 감독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뮤지컬의 스코어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이 영화는 안중근과 동지들이 손가락을 자르며 결의를 다지는 “단지동맹”으로 시작해서, 교수대에 오른 안중근의 최후발언인 “장부가”로 끝난다. <국제시장> 속 주인공의 여정이 한국전쟁부터 파독 광부 이야기, 베트남전까지 스케치하듯 담아내도록 설계되었다면, <영웅>은 안중근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스케치하듯 빠르게 담아낸다. 각 사건의 방점은 각 장면의 음악이 담당한다. 뮤지컬의 구성을 고스란히 가져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구성은 <영웅>이 영화라기보단 ‘무대’라는 공간적 제약을 영화세트로 확장한 무대 뮤지컬 같다는 인상을 준다. 안중근과 설희, 동지들의 노래는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단 각자의 결의와 결기를 보여주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라는 거사를 위한 계획이라던가 그의 곁에서 정보를 캐내는 설희의 활약 등은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었으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태도를,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지켜나간다. 뮤지컬 <영웅>과의 다른 지점이라면, 윤제균이 자신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유머가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것 정도일까. 

 윤제균은 할리우드적인 장르를 한국에 로컬라이징하기 위해 일평생을 바친 연출자이자 제작자라 할 수 있다. 데뷔작 <색즉시공>은 <아메리칸 파이>로 대표되는 섹스코미디 장르의 번안이었고, <해운대>는 한국 블록버스터의 ‘최루성 신파’ 구조를 선보이며 어떤 장르의 블록버스터이건 ‘한국화’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였다. 제작으로 참여한 <하모니>, <퀵>, <히말라야> 등 또한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영웅>에서는 할리우드에 대한 욕망을 찾아볼 수 없다. 얼핏 <레 미제라블>과 같은 뮤지컬 영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웅>이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말할 수 있는 특정한 뮤지컬영화를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라이브 레코딩을 고수한 이번 영화를 제작하며, 윤제균은 해외 뮤지컬영화 제작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의 몇 안 되는 뮤지컬 영화들을 잠시 떠올려보자. 여기서의 뮤지컬은 <라디오스타>, <미녀는 괴로워>, <고고 70>처럼 음악 무대가 나오는 ‘음악영화’와는 다소 구분하고자 한다. 전계수의 <삼거리 극장>은 마당극을 영화관이라는 장소로 옮겨오고자 했다. 서커스를 무대 삼은 <구미호 가족>은 무대 뮤지컬을 촬영한 듯한 화면구성을 선보였다. 한 동안 끊겨 있던 뮤지컬 영화를 다시금 소환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고전기 할리우드 뮤지컬을 떠올리게끔 하는 구성을 취했다. 세 영화는 각각의 방식으로 뮤지컬 무대를 영화 속에 녹여내거나, 영화의 로케이션 혹은 세트를 뮤지컬이 벌어지는 장소로 만드려 시도했다. <영웅>은 그 반대의 시도를 한다. 이 영화에서 ‘영화’는 무대장치의 확장일 뿐이다. “~일 뿐이다”라고 부정적 지칭을 쓴 이유는 그것이 어떤 영화적 시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프닝 시퀀스이자 첫 뮤지컬 시퀀스인 “단지동맹” 장면을 떠올려보자. 설원과 자작나무 숲을 걷는 안중근이 등장하고, 무릎 꿇은 그를 담아내던 카메라는 잠시 위로 틸트업 하더니 다시금 내려온다. 안중근이 홀로 있던 자리에 동지들이 함께 있다. <영웅>의 ‘외화면’은 무대 뮤지컬의 ‘무대 바깥’처럼 사용된다. 당황스러운 화면분할과 역시 당황스러울 정도로 조잡하고 갑작스러운 추격전은 이야기보단 <영웅>이 영화처럼 보이게끔 하는 최소한의 장치로써 사용될 뿐이다. 윤제균은 뮤지컬 <영웅>의 영화화가 아니라 영화의 무대화를 시도한다. 

 영화의 유일한 오리지널 스코어인 설희의 “그대 향한 나의 꿈”이 특히 그러하다. 이토 히로부미의 스코어 “이토의 야망”에 곧장 이어지는 이 노래는 갑자기 화면이 멈춘 뒤 설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며 시작되며, 설희는 멈춰버린 미쟝센 속에서 노래한다. 설희의 동선에 따라 등장하는 플래시백 이미지들은 영화적 장치라기보단 영화의 장치를 무대로 가져오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무대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이미지를 영사함으로써 플래시백을 성사시키는 그러한 연출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때문에 객석의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무대를 부유하는 카메라의 시점으로 무대 뮤지컬을 보고 있다는 인상이라는 것이 <영웅>에 관한 가장 적절한 묘사일 수 있겠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누가 죄인인가” 시퀀스는 재판장의 안중근과 바깥의 민중을 몽타주하지만, 이는 영화의 몽타주라기보단 무대의 한쪽과 다른 쪽을 오가는 관객의 시선을 영화 카메라로 재현한 것에 가깝다. 무엇보다 영화의 피날레인 “장부가”에서, 윤제균은 이 영화가 무대를 지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교수대에 올라선 안중근을 정면에서 담아낼 뿐인 이 장면에서, 사형집행을 보기 위해 앉아 있는 이들은 뮤지컬 객석 앞자리의 관객들처럼 느껴진다. 뮤지컬 <영웅>의 무대를 영상으로 옮겨오려 했다면 그 지점에선 이 영화는 성공일 것이다. 반대로 말해, <영웅>은 뮤지컬의 영화화에 실패하였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강조하는 뮤지컬의 한계를 영화적 내러티브 구조나 다른 방식의 장치들을 더해 영화화하는 대신, 영화를 무대화하는 것에만 집중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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