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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4. 2022

가장 아쉬운 카메룬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 제임스 카메론 2022

*스포일러 포함


 전편으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제이크(샘 워싱턴)은 네이티리(조 샐다나)와의 사이에서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 로아크(브리튼 달튼), 투크(트리니티 블리스) 삼남매를 낳았고, 그레이스 박사의 딸 키리(시고니 위버가 두 역할을 모두 소화)를 입양하였다. 모두 나비족임에는 틀림없으나, 인간의 유전자가 섞인 제이크의 아바타를 통해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나비족과 달리 손가락이 다섯 개다. 아이들은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가 판도라에서 낳은 아이 스파이더(잭 챔피언)과 어울리며 살아간다. 판도라에 남은 몇몇 인간들은 나비족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인간이 다시금 판도라를 침략하고, 제이크의 부족은 그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인다. 그러던 중 쿼리치의 기억과 정신을 이식한 아바타가 판도라에 도착하고,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바다 부족이 살고 있는 마을로 망명한다. 부족장 토노와리(클리프 커티스)와 로날(케이트 윈슬렛)의 도움으로 새로운 집에 적응해가던 때, 쿼리치 일행이 그곳을 찾아온다.

 13년만에 돌아온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은 제임스 카메론의 전작들을 연상시킨다. 바다 속을 구현하고 탐험하는 장면들은 <어비스>와 그의 여러 해양 탐사 다큐멘터리를, 배가 침몰하는 후반부는 <타이타닉>을 떠올리게 한다. 카메론은 오랜 시간 바다와 심해에 매료되었고, 이번 영화를 포함해 그의 극영화 연출작 9편 중 4편이 바다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192분에 달하는 본작의 러닝타임 중 2/3가량이 바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이것이 영화의 완성도를 가늠케 하는 지표는 아니다. 전작은 <늑대와 함께 춤을>, <포카혼타스>, <타잔> 등을 레퍼런스 삼은,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삼아 스펙터클과 단순명료한 메시지를 선보였다. 이번 영화도 그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서부극 속 백인의 열차를 습격하는 원주민의 구도처럼 꾸며진 초반부의 액션 장면이 보여주듯, 영화의 초반부는 산과 정글을 배경으로 삼은 서부극처럼 다가온다. 영화의 배경이 바다로 옮겨간 이후도 이 구도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제이크의 ‘숲 부족’이 토노와리의 ‘바다 부족’에 적응하는 과정은 여러 문화가 교차하는 이야기의 작품들에서 어렵지 않게 보아온 것들이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다와 해양생물의 이미지 자체다. 아니, 그 이미지에 매료된 제임스 카메론이다. 본작의 이야기는 전작보다도 가볍다.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쿼리치에 맞서 혈연중심 가족주의에 천착하는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모습은 한없이 평면적이다. 특히 전작에서 나비족과 인간 사이에서 제이크를 수용하며 변화를 보여주었던 네이티리의 캐릭터는 이번 영화에서 오로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만 활동하는, 게다가 나비족도 아바타의 모습도 아닌 인간인 스파이더를 종종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작과 어딘가 달라진 네이티리의 캐릭터는 수영에 알맞게 진화한 바다 부족의 외양과 다른 제이크의 아이들을 놀리던 바다 부족 아이들의 모습을 지적하던 영화 전반의 태도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양육을 군대식으로 해온 제이크의 모습은 영화 중간중간 “아버지의 역할은 가족을 지키는 것” 따위의 대사로 정당화가 시도되지만, 지극히 구시대적인 그의 언행과 선택들은, 그들이 사실상 전시 상황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아도 당황스럽다. 전작처럼 제이크의 얼굴로 시작해 그의 얼굴에서 끝나는 이번 영화의 선택도, 영화 전반의 이야기가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여정보단 로아크와 키리 등 자녀들의 여정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당황스럽다.

 전작의 주제의식이 옅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주제의식을 딱히 내세우지도 못한다는 것 또한 아쉽다. 물론 고래를 연상시키는 종족 톨쿤과 그것을 사냥해 뇌수만을 뽑고 버리는 인간의 행태를 통해 현실의 포경을 비판하는 등 상태주의와 환경주의라는 전작의 주제의식을 이어가는 부분도 존재한다. 또한 전작처럼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익숙한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하는 반전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전작이 주제의식을 관객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방식으로 판도라 행성의 스펙터클을 끌어왔다면, 본작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를테면 키리가 나비족의 신 에이와와 교감하는 장면이라던가, 제이크의 아이들이 바다 부족 아이들과 어울리는 장면 등을 떠올려보자. 쿼리치 대령 일행의 추격 장면과 교차하여 등장하지만, 바다의 풍광이 강조되는 그러한 장면들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이야기를 계속 지연시킨다. 이 장면들은 에이와와 교감하는 키리의 속편에서의 활약을 예고하는 역할과 함께, 오로지 그래픽을 통해 구현된 판도라 행성 바다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에만 충실하다. <아바타: 물의 길>을 보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환경과 반-제국주의와 반전에 관한 메시지보단, 바다 이미지에 대한 카메론의 매혹이다. <어비스>의 실수를 그는 이번 영화에서 반복하고 있다.

 물론 <아바타: 물의 길>이 보여주는 시각적 비주얼은 거의 모든 블록버스터를 압도할 정도의 장관이다. 할렐루야 산맥 등 전작의 배경들은 물론, 바다라는 새로운 공간을 구현해내는 모습은 놀랍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혹은 명확한 계획 없이 어지러이 펼쳐 둔 세계관에 맞추어 영화를 생산하는 현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부분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비주얼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은 이미 한 차례 경험한 것이다. 13년 전의 스펙터클을 경험한 관객에게, 비록 새로운 배경을 제시한다고는 하지만 한 차례 보았던 비주얼을 다시금 꺼내오는 것은 그다지 강렬한 경험은 아니다. 가벼이 즐기기엔 길고 무거우며, 묵짐함을 바라기엔 기시감이 느껴진다. 카메론이 만들어온 여러 ‘속편’ 중 가장 아쉽다.

 여담이지만, <아바타: 물의 길>의 HFR은 절반의 성공이다. 이전에도 피터 잭슨이 <호빗>에서 48fps를, 이안이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와 <제미니 맨>을 120fps로 제작한 적이 있으나, 24fps에 적응된 관객의 눈에는 어딘가 어색하게 다가왔다. <아바타: 물의 길>은 48fps를 택했다. HFR를 제공하는 몇몇 상영관에서는 4K HFR 3D 포맷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있으며, 3D임에도 매우 선명한 화면과 이전의 HFR 영화들에 비해 어색하지 않은 움직임을 경험할 수 있다. 다만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몇몇 장면에서는 24fps를 사용한다. 카메론의 말에 따르면 초당 프레임 수를 상영 중에 변경할 수는 없으니, 24fps를 사용한 장면에서는 같은 프레임이 두 개씩 들어간 48fps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납득하기 힘들다. 눈이 48fps 화면에 적응한 이후에 마주하는 24fps 화면은 마치 게임에서 급격히 프레임이 떨어지는 프레임 드랍 현상처럼 인식된다. <아바타: 물의 길>을 보여 어지럼증을 느꼈다면 그것의 이유는 긴 러닝타임도, 3D도, 40fps도 아니다. 프레임 수를 가변적으로 설정한 것 자체로 눈에 상당한 피로감을 주며, 영화에 대한 몰입 자체도 크게 방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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