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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3. 2023

2023-04-03

https://www.youtube.com/watch?v=UyK1VYUY_BI

1.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계속 듣고 있다. 그의 음악임을 처음 인지하고 본 영화는 이냐리투의 <레버넌트>와 이상일의 <분노>였다. 어떤 영화들에 있어서는 그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영화 자체에 관한 궁금증을 앞지르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의 커리어 후반기 걸작 중 하나인 [async]의 제작기를 담은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를 보며, 소리를 대하는 그의 관점에 큰 감명을 받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뒤늦게 YMO를 들으며 최근의 사카모토와 너무나도 다른 음악에 놀랐던 시간도 다시금 떠올리고 있다. 유작이 된 [12], 그리고 그가 음악으로 참여한 기타노 다케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을 기다려본다.

2. 지난 3월 25일에 동국대 차차시네마테크에서 필 솔로몬의 <엠파이어>(2012)를 봤다. 그가 고인이 된 이후 첫 상영임과 동시에, 그의 동료였던 스탠 브래키지의 16mm 단편 다섯 편과 함께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16mm 필름 상영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마침 최근 관람한 <파벨만스>의 몇몇 순간들이 영사기 소리와 함께 떠올랐다. <엠파이어>는 락스타 게임즈의 [GTA IV]로 제작한 머시니마(machinima)다. 본격적인 머시니마를 극장 환경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앤디 워홀의 <엠파이어>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인게임 시간으로 하루(실제 시간으로 48분) 동안 가상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도시 전경을 찍는다. 물론 이곳은 뉴욕이 아니다. 뉴욕을 본따 만든 '리버티 시티'라는 이름의 공간이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닮은 저 빌딩의 이름은 '로테르담 빌딩'이다. 필 솔로몬은 헬기를 훔쳐 타고 어느 빌딩 위로 이동해 자리를 잡은 뒤 녹화 버튼을 누르고 콘트롤러를 내려 놓았다. <엠파이어>는 그 결과물이다. 아무런 이동도 하지 않지만, 관객은 무수한 이동들, 구름, 윤슬, 벼락, 두 개의 달, 태양, 비행기, 차량, 점멸하는 건물의 불빛, (가상) 카메라에 부딪히는 빗방울, 흩날리는 종이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워홀의 영화는 8시간 동안 미묘하게 변화하는 흐름을 담아낸, 혹은 그러한 변화를 내포한 시간 자체를 담아낸다. 솔로몬의 <엠파이어>에서 48분으로 압축된 24시간은, 그야말로 무수한 변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의 24시간에서는 불가능한 날씨의 변화, 우중충한 리버티 시티의 분위기를 저 멀리서 조망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리버티 시티'는 뉴욕의 아주 꼼꼼한 재현물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꼼꼼한 재현으로부터 완전히 물러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게임 내의 시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굉음, 일정하지만 불분명하게 들리는 패턴으로 반복되는 게임 내의 바람소리가 48분을 가득 채운다. 관객이 본 것은 워홀 <엠파이어>의 재현도, 뉴욕의 재현도 아닌 것이다. 관객이 본 것은 전적으로 다른 세계다. 컴퓨터 코드로 만들어진, 재현임과 동시에 재현이 되지 못하는 압축적인 세계. 우리는 다른 버전의 머시니마 <엠파이어>를 상상할 수도 있다. [마블 스파이더맨]으로 만들어진 <엠파이어>, [디비전 2]로 만들어진 <엠파이어> 같은 것들. 이경혁 게임평론가는 이안 쳉 작가의 개인전 [세계건설]의 도록 원고에서 "NPC들의 세계", "각자의 속성을 부여받아 행동하는 개별 객체들이 상상된 세계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과정 전체"라는 표현을 썼다. 이 표현은 솔로몬의 <엠파이어>가 담아낸 리버티 시티의 모습과, 더 나아가 워홀의 <엠파이어>가 담아낸 뉴욕-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도 맞닿아 있다. 단지 그 객체가 디지털 코드인지, 자연발생한 '분위기'와 인공적 건축물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솔로몬의 <엠파이어>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코드로 이루어진 세계에 대해 그러한 세계의 시선을 되돌려 준다. 플레이어가 상호작용을 멈췄을 때, 컨트롤러를 내려놓았을 때만 목격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3. 뒤늦게 쓰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의 간략한 후기. 이 영화는 이상하다. 타인을 조종하는 초능력을 지닌 소녀가 정신병원을 탈출해, 스트리퍼 싱글맘과 팀을 이뤄 남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소녀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인물, 이를테면 DJ로도 활동하는 문신 가득한 남자 마약상이나 어둑한 고가도로 밑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한 무리의 청년들은 순수하게 소녀를 돕는다. 경찰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북한 출신 아시안 소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대신 설득을 시도한다. 소녀는 착취하는 것은 스트리퍼 뿐이다. 젠더화된 장르 컨벤션을 뒤집되, 가능한 뻔뻔하게 그렇지 않은 채하는(이 영화의 반례로 <차이나타운>을 비롯한 국내의 몇몇 영화들 혹은 할리우드의 몇몇 젠더-스왑리부트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도는, 아쉽게도 썩 매력적이지 못하다. 애나 릴리 아미푸르의 몇몇 전작은 그 반대의 면모, <버려진 자들의 땅>이나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 속 <겉모습>처럼 장르의 젠더적 면모를 무지막지하게 부풀려 터트려버리듯 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그러한 과장의 뒤집기와 과장의 전략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힘을 잃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략은 보이되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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