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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12. 2023

장르확장의 실패

<롱디> 임재완 2022

 <블레어 위치>로 시작된 장르영화에서의 파운드푸티지 형식은 영상통화가 보편화된 이후 컴퓨터 스크린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은 스마트폰 스크린까지 확장되었다. 소위 데스크톱 필름 등으로 불리던 이러한 장르적 형식은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는 이를 ‘스크린라이프 무비’라 다시금 명명했다. 자신의 제작사 베젤레브스(Bezelevs)에서 제작한 <언프렌디드>, <프로필>, <서치> 등의 작품을 통틀어 이러한 장르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줌 등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한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며 통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 태생이 <블레어 위치>에 있는 만큼, 스크린라이프 장르의 작품 대다수는 호러와 스릴러의 영역에 머무른다.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히트를 기록한 <호스트>라던가, 후속편이 제작된 <서치>의 사례를 떠올려보자. 국내의 경우엔 라이브 스트리밍을 소재 삼은 <곤지암>을 떠올릴 수 있겠다. 여기서 벗어나는 사례는 대부분 실험적 다큐멘터리이며, ‘극장 개봉’을 통해 유통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스크린라이프 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하며 등장한 <롱디>는 국내 제작사와 베젤레브스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다. 베크맘베토브는 공동제작자로 참여했다.

 <롱디>의 내용은 익숙하다. 도하(장동윤)는 우연히 버스킹을 하던 태인(박유나)과 사랑에 빠져 연애를 시작한다. 5년 차 커플이 된 둘은 태인의 사정으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다. 외제차 딜러로 일하던 도하는 5주년 기념일을 맞이해 프러포즈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고객이자 유튜브 인플루언서인 제임스(고건한)의 할로윈 파티에 초대되고, 필름이 끊긴 도하는 연애의 위기를 맞이한다. 인플루언서, 유튜버, 스트리머가 스크린라이프 장르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조 키어리 주연의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은 주인공의 바디캠, 블랙박스, CCTV 화면 등으로 구성되었고, 스트리머들이 주인공인 <곤지암>이나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인 <목숨 건 스트리밍>도 그러한 구성을 쫓는다. 항상 캠을 켜고 자신과 주변을 촬영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직업군이기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형식을 녹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직업군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다. ‘관종’이라는 단어로 손쉽게 축약될 수 있는 행동을 각본에 욱여넣을 수 있기에, 이들을 주인공 삼는 작품들은 대개 이들을 멍청한 사고뭉치 혹은 디지털 시대의 사기꾼이나 범죄자 정도로 묘사하곤 한다. 이는 폐가나 엑소시즘 같은 것을 다룬 무수한 파운드푸티지/모큐멘터리 호러에서 반복되던 장르 컨벤션이 고스란히 옮겨온 것이기도 하다.

 <롱디>는 그것을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이식하려 시도한다. 이 시도는 실패다. 도하가 필름이 끊긴 이후, 도하가 자신이 촬영된 영상의 촬영자를 찾기 위해 나름의 탐정극을 벌이는 부분처럼 익숙한 스크린라이프 장르의 클리셰를 반복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플루언서라는 직업군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지겨운 이미지를 고스란히 반복하며, 이는 그러한 인물 혹은 결국 그것을 직업으로 택하게 될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서야 극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언프렌디드>, <서치>, <호스트> 등의 영화가 각자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은 영화의 주인공이 인플루언서 같은 것과 관계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스크린라이프라는 장르명에 걸맞게, 대부분의 삶과 밀착된 프로그램들, 스카이프, 줌, 페이스타임 등의 화상통화 프로그램은 물론 인스타그램, 스냅챗, 페이스북, 구글 등 익숙하게 사용되는 소셜미디어나 검색엔진이 등장하는 지점이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롱디>는 아이클라우드의 공유폴더 기능이라던가 카카오톡의 읽음 표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장거리 연애라는 소재에 알맞게 그러한 요소를 변형하려 한다. 페이스타임이 미국만큼 자주 사용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 (iOS끼리만 가능한) 페이스타임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장르적 허용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다만 <롱디>는 자신의 생활을 각종 스크린에 투사하며 살아가는 삶에 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만 같다. 이 영화의 형식적 장치는 실시간성을 강조한 일련의 화상채팅 호러, 독특한 탐정도구로서 스크린과 웹, 앱을 활용한 스릴러처럼 이야기와 긴밀히 연결되지 못한다. 갑자기 모큐멘터리의 형식을 포기해 자멸했던 <랑종>처럼, 시종일관 도하와 태인의 노트북과 스마트폰 화면만을 보여주던 영화가 갑작스레 블랙박스와 CCTV 화면을 보여주는 순간 형식적 고민의 부재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가장 큰 패착은 영화에 등장하는 일부 플랫폼의 상호가 실제와 다르다는 지점이다. 맥북의 부팅화면을 보여주며 시작한 영화는 카카오톡, 유튜브, 트위치, 아이클라우드 등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북’과 ‘스타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실제 소셜미디어와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보여줌에도 이름과 로고만 다르게 바뀌어 있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는데, ‘인스타스토리’를 넘기는 모 장면에서 그것을 실제와 반대방향으로 넘기는 실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사소한 실수는 마우스 클릭음에서도 이어진다. 도하는 집에서 맥북을 쓰고 회사에서 윈도우 데스크톱을 사용하는데, 서로 다른 OS임에도 같은 클릭음이 계속 나온다던가 하는 등의 오류가 등장한다. 물론 메타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라는 상호의 사용을 허가해주지 않았다던가, 클릭음 같은 사소한 디테일이 큰 문제가 아니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이러한 디테일들이 상호 허가를 받은 유튜브, 카카오톡, 다음(은 화면에 나오지도 않는데 아이콘이 계속 등장한다) 등과 충돌하며 영화의 현실성을 파괴한다. 각본 자체가 헐거운 것이 이 영화의 주요 패착이긴 하지만, 스크린라이프 장르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그 형식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는 지점에 부족함이 느껴진다는 점은 더욱 큰 패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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