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 피터 손 2023
지금 시점에서 픽사의 신작이 걸작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MCU의 모든 영화가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나 <아이언맨 3> 같을 것이라는 생각과 다름없어졌다. 어느샌가 디즈니 특유의 보수성을 더욱 강화된 형태로 내세우고 있는 픽사의 영화들은, 외형상으로는 다양성을 표방할지라도 결국 가족주의라는 이름의 멜팅팟 속으로 모든 것을 집어넣고 있다. 픽사의 마지막 걸작이었던 <인사이드 아웃> 이후의 픽사는 실망스러운 속편들(<토이스토리 4>, <카 3>, <도리를 찾아서>, <버즈 라이트이어>)를 내놓거나, 타 문화의 인용을 통해 겉으로는 다양성을 표방하면서도 내적으로는 디즈니 특유의 보수적인 가족주의를 내세우는 영화(<코코>, <소울>, <온워드>)를 만들었다. 클로짓-퀴어 성장영화였던 <루카>와 재기발랄한 이민자 서사를 담은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월드와이드 개봉을 포기하고 디즈니+를 통해서만 공개돼 온당한 평가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신작 <엘리멘탈>은 이러한 최근 픽사의 경향과 함께, 픽사의 작품 중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던 <굿 다이노>의 감독 피터 손의 연출작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공개되었다.
불, 물, 흙, 공기라는 네 개의 의인화된 원소가 모여 살아가는 ‘엘리멘탈 시티’를 배경 삼는 이 영화는 ‘불’인 엠버(레아 루이스)와 ‘물’인 웨이드(마무두 우티)의 로맨스를 다룬다. 이민자 가정의 딸인 엠버는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와중 사고로 인해 불 원소 마을 파이어타운에 누수가 발생하고, 우연히 만난 시청 관리원 웨이드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원소끼리는 섞이면 안 돼!”라고 영화에 몇 차례 등장하는 대사처럼, 불 원소는 다른 원소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간다. 물, 흙, 공기는 서로에게 치명적이지 않기 때문에 대도심에서 어울려 살아가지만, 불 원소는 자신만의 게토를 형성한다. 엠버의 아버지는 이곳에 처음 정착한 이민 1세대다. 즉, <엘리멘탈>은 이민자 서사를 담아낸다. 한국계 이민자 2세대인 피터 손 감독이 이러한 이야기를 택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엘리멘탈>은 <미나리>부터 <성난 사람들>까지 이어지는 아시안 디아스포라에 관한 은유를 담아내려 한다. 엠버의 목소리를 연기한 레아 루이스는 중국계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목소리를 연기한 이들은 각각 필리핀계와 이란계이다. 파이어타운의 붉은빛 가득한 외관, 편의점이라는 공간, 부모님의 꿈을 자녀가 대신 이루고자 한다는 아이디어 등은 여러 아시아 이민자 서사에서 등장한 바 있다.
물론 <엘리멘탈>이 오로지 아시아 이민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만은 없다. 엠버와 가족의 이야기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인 더 하이츠> 같은 영화가 다룬 중남미 이민자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20세기 초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얼추 들어맞는다. 다만 이 지점에서 ‘이민자’라는 코드만 남긴 채 이민자의 국적, 민족성, 인종 등의 다양한 정체성을 지워버리고 개별적인 요소를 뒤섞는 부분에서 에러가 발생한다. 다양한 종족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를 배경 삼아 차별을 이야기했던 디즈니의 <주토피아>를 잠시 떠올려보자. 시골에서 살아가던 주디는 경찰이 되기 위해 대도시 주토피아로 상경하지만, 좋은 성적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몸집 작은 초식동물인 그는 기껏해야 교통경찰이 되었을 뿐이다. 한편으로 육식동물 여우인 닉은 ‘육식동물’이기에 어떤 종류의 차별을 받는다. 영화는 몇 가지 이분법을 동원해 주토피아라는 공간 속 캐릭터들의 활동범위를 구획하고, 그것을 통해 차별을, 더 나아가 역차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의도적인 오독을 강하게 유도한다는 지점이다. 모두가 어떤 부분에서는 차별받고 있기 때문에 모두모두 사이좋게 지내자는 영화의 메시지는, 원론적으로 옳은 말일지라도 실존하는 차별의 알레고리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엘리멘탈>의 아쉬움도 이와 유사한 구성에서 기인한다. 이전의 픽사 영화들이 우정, 사랑, 가족애 등의 보편적 가치를 슈퍼히어로, 어드벤처, SF 등 익숙한 장르의 틀을 빌려와 선보였던 것과 다르게, <엘리멘탈>이 담아내는 이야기는 외견상 보편적으로 보이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을 통해서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당사자성이 언제나 옳고 정확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일종의 커밍아웃 내러티브임을 영화 내내 암시하는 <루카>라던가 명확한 아시안 디아스포라 레퍼런스를 담아낸 <메이의 새빨간 비밀>, 멕시코의 ‘망자의 날’을 소재삼은 <코코>가 특정한 소수자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며 보편적 호응을 끌어낸 것과 반대로, <엘리멘탈>의 추상성은 (<주토피아>가 그랬던 것처럼) 실존하는 삶의 차이들을 그저 추상적인 대상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를테면 대도시 부잣집 도련님인 웨이드와 일종의 게토와 다름없는 파이어타운 주민 엠버 사이의, 현실 속 백인 도시민과 이민자 사이의 격차를 연상시키는 계급차는 이 영화에서 가볍게 무시된다. 구조적 차별에서 기인하는 적대감과 반감 등은 그것의 역사적 맥락에서 탈구된 채 타파해야 하는 구습 정도로만 다뤄진다. <주토피아>가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내러티브 전반과 몇몇 코미디를 통해 실제에서 탈맥락화시킨 것과 유사하게, <엘리멘탈> 또한 같은 우를 범한다. 포토-리얼리스틱한 재현에서 벗어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점과 함께, 영화가 선보이는 이미지적 완성도는 충분하지만 결국 디즈니 작품 대부분이 갖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