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5. 2023

톰 크루즈의 자문자답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닝 PART ONE> 크리스토퍼 맥쿼리 2023

 *스포일러 포함     


 할리우드 작가조합(WGA)의 파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까지 파업 동참을 선언했다. 파업의 가장 주된 이유는 OTT 플랫폼의 부당한 계약조건이지만, 세부적인 사항에는 AI를 통한 창작에 관한 논의도 포함되어 있다. 조합은 창작물에 AI 참여, AI 학습 용도의 창작물 사용 등에 규제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배우조합은 AI를 통해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가 사용되는 것에 규제가 필요함을 주장하며 파업에 동참했다. 파업이 시작된 이후 공개된 디즈니+의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전>의 오프닝 크레딧 이미지가 생성형 AI로 제작된 것이 알려지며 한 차례 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생성형 AI의 등장 이전 사람들이 걱정하던 것은 AI를 통해 대체될 제조업, 생산업 노동자였지만, AI가 본격적으로 일상에 활용되기 시작한 지금 가장 빠르게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인 것은 문화예술 창작자들이다. 작가조합의 파업은 그 위기감을 반영한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은 시리즈 최초로 비인간 빌런을 내세운다. 신디케이트라는 오랜 대립항 대신 엔티티라는 이름의 AI가 이단 헌트(톰 크루즈)와 대립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엔티티라는 AI는 디지털로 기능하는 모든 것에 접속 가능한 존재이다. 그의 통제권을 얻을 수 있는 소스코드가 저장된 물리적 공간이 있으며, 두 개로 분리되는 열쇠를 통해 소스코드에 접속할 수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CIA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정보국이 각자 열쇠를 얻고자 행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단 헌트와 그의 동료들은 디지털 공간과 정보의 통제권을 한 국가 혹은 한 개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판단하고, 엔티티를 파괴하기 위해 열쇠를 손에 넣고자 한다. 내년 개봉 예정인 파트 2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아날로그 액션의 화신인 톰 크루즈가 어떤 방식으로든 생성형 AI의 등장이 만들어낸 위기감과 맞서고 있다는 투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충동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작가조합 파업에 배우조합이 동참을 선언한 주에 개봉했으니 말이다.      

 2020년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촬영된 이 영화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생성형 AI와 그로부터 파생된 창작에 관한 논의를 반영했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이 영화의 AI 묘사는 나이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형적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뛰어나기 때문에 인간을 절멸시켜야 한다고 마음먹은 AI의 등장. 톰 크루즈와 크리스토퍼 맥쿼리는 모든 디지털을 장악한 AI 빌런에게 대적하기 위해 아날로그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어떠한 방식으로 CGI를 배제한 액션을 벌여왔는지가 마케팅 포인트가 되는 톰 크루즈답게, 이번 영화의 마케팅은 절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점프한 톰 크루즈/이단 헌트의 이미지가 전면적으로 사용되었다. 너무 많이 노출되어 정작 본편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정도까지 말이다. 작년 박스오피스를 폭격했던 <탑건: 메버릭>이 그랬던 것처럼, 톰 크루즈는 자신의 존재, 위대한 스턴트를 손수 해내는 위대한 배우로서의 자신을 카메라에 담아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영화의 다른 장면과 다소 다른 톤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절벽에서 추락하는 톰 크루즈와 함께 추락하는 카메라, 그의 낙하산에 매달려 있는 경량화된 카메라의 낮은 화질을 그는 기꺼이 감수한다.      

 극 중에서 엔티티는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는 존재로 나온다. CCTV에 잡힌 가브리엘(에사이 모랄레스)과 파리(폼 클레멘티에프)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삭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단의 동료인 벤지(사이먼 페그)와 루터(빙 레임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CIA를 속인다. 그들은 딥페이크를 통해 CCTV에 잡힌 누군가의 얼굴을 이단의 얼굴로 바꿔 상대방을 혼란에 빠트린다. CIA 국장에 자리한 브리핑에서 IMF 국장 키트리지(헨리 처니)는 엔티티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이 진술은 이단과 그의 동료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존재는 CIA 국장조차 알지 못한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그들은 스스로를 ‘유령’ 같은 존재라 말한다. 그들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활동한다. 아라비아 사막, 워싱턴 D.C, 아부다비, 로마, 베니스,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오가는 이들의 동선은 그들의 존재가 유령 같음을 스스로 증명해내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유령은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는가? 유령이 모습을 드러낼 때는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고자 할 때뿐이다. 유령은 우연히 목격되는 희귀 야생동물 같은 것이 아니다. 유령은 그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때 상대방에게 목격될 수 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엔티티와 이단 헌트는 유사한 성격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은 정 반대다. 알라나(바네사 커비)의 파티에 주요 인물들이 모인 장면에서 엔티티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사실 이 장면에서 엔티티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사실 엔티티의 ‘모습’ 같은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엔티티는 대리자인 가브리엘만으로 충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가브리엘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그것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LED 화면의 이미지를 빌려 푸른색 안구 같은 모습의 엔티티를 기어코 등장시킨다. 이 장면은 <데드 레코닝>이라는 영화에 필요한 장면이 아니다. 이 장면이 필요했던 것은 톰 크루즈다.     

 엔티티는 가브리엘을 수족처럼 부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단 헌트는? 이단 헌트라는 캐릭터, 혹은 이단 헌트라는 개념은 톰 크루즈의 육체를 빌려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만 등장한다. 팬들이 키아누 리브스와 존 윅을 동일시하는 것처럼 배우와 캐릭터를 뒤섞는 것과도 다르다. 모두가 성룡의 스턴트와 코미디를 기억하지만 그의 배역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처럼, 톰 크루즈도 그러한 배우다. 그의 극 중 이름이 이단 헌트이건 메버릭이건 빌 케이지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는 영화마다 다른 유령으로 빙의하는 영매나 다름없다. 때문에 이단 헌트로 빙의한 톰 크루즈는 반드시 자신의 적과 대면해야 한다. 파티 장면에서 엔티티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화면 속 엔티티를 제대로 보여주는 대신 화면을 바라보는 이단 헌트의 모습을 찍는다. 그의 주변을 빙빙 도는 카메라는 적과 대적한 이단 헌트, 아니 톰 크루즈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간 시리즈의 적들은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인물들이었다. 그것이 신디케이트이건 로그 네이션이건, 아무리 유령처럼 움직이는 조직일지라도 이단 헌트는 그 수장과 대면한 채 싸웠다. 키트리지는 엔티티에 관해 이단을 설득하고자 “지켜야 할 대의는 사라진 세상”임을 강조한다. 이단은 보란 듯이 그의 말을 부정하며 엔티티를 파괴하는 것의 대의라 주장하고 단독행동을 벌인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엔티티를 죽인다”라고 말한다. 죽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목격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유령 같은 존재일지라도, 그 대상이 톰 크루즈의 눈앞에 있어야 한다. 영화 초반 등장한 잠수함 세바스토폴 호의 침몰은 이단 헌트/톰 크루즈가 물리적으로 파괴해야 할 대상을 제시하기 위해 삽입된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이 영화의 거대한 스턴트, 절벽에서의 점프, 달리는 기차 위에서 벌이는 격투, 붕괴된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기차에서의 클라이밍 같은 것들은 이단 헌트가 엔티티를 죽이기 위한 여정에 복무하지 않는다. 잠시 이단 헌트라는 캐릭터가 빙의한 톰 크루즈가 자신의 현존을 증명해내기 위해 요구되는 장면이다. <탑건: 메버릭>이 영화의 모든 이미지를 제치고 톰 크루즈의 이름을 가장 처음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오로지 톰 크루즈를 위해 복무한다. 그가 개입되지 않는 유일한 액션인 일사(레베카 페르구손)와 가브리엘의 칼싸움이 싸움이라기보단 안무처럼 보였던 것은 여기에 확신을 더해준다. AI 적으로 인해 디지털을 배제한다는 선택은 사실 톰 크루즈의 육체가 수행하는 액션들을 강조하기 위함일 뿐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AI와 인간의 대립은 <데드 레코닝>의 중요 포인트가 되지 못한다. 엔티티는 HAL9000, 스카이넷, 스미스 요원, 아리아를 분해-조립해서 만든 질 낮은 프랑켄슈타인에 불과하다. 엔티티는 인간 육체가 대적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존재를 상정하기 위해 소환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자신의 몸을 직접 수행해야 하는 톰 크루즈라는 스턴트의 화신이 엔티티라는 존재를 필요로 했을 뿐이다. 세바스토폴 호에서 시작해 세바스토폴 호에서 끝나는 <데드 레코닝>은 대단히 구체적이며 물리적인 목표물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AI라던가 디지털에서의 정보전과 같은 요소들은, 톰 크루즈의 스턴트를 위한 미끼일 뿐이다.      

 물론 톰 크루즈의 스턴트는 놀랍다. 단순히 말도 안 되게 위험한 스턴트를 직접 소화한다는 것을 넘어, 그것의 컨셉을 만들고 편집하는 과정은 톰 크루즈가 다른 위대한 스턴트 스타들에게 바치는 헌사나 다름없다. 절벽 점프 장면은 정확히 성룡의 방식대로 편집되었고, 폭파된 다리에 추락하는 기차는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나 다름없는, 한 량씩 떨어지는 기차를 기어오르는 모습은 <셜록 2세>를 연상시킨다. 스크린 속으로 뛰어들어 시시각각 변화는 장면에 맞추어 기예를 선보이던 버스터 키튼처럼, 톰 크루즈는 기차를 하나의 사각 프레임으로 활용하며 다양한 변주를 선보인다. 물 흐르듯 짜임새 있게 구성된 아부다비 공항 시퀀스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닌 영화의 주요 인물들을 자연스레 소개함과 동시에 동선 자체만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다만 이 영화에서 개별 액션장면이 주는 쾌감 이상의 것을 찾을 수 있는가? 이를테면 <탑건: 메버릭>이 2022년의 스크린에 다시 소환한 낭만과 같은 것이 <데드 레코닝>에는 있는가? 1년의 시차를 두고 공개된 톰 크루즈의 두 영화는 얼핏 유사해 보이지만, 실상 톰 크루즈라는 존재 외에는 공통점을 지니지 못한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어느 순간 톰 크루즈의 스턴트 쇼케이스가 되었다. 그것은 분명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추구해 온 ‘지상 최대의 쇼’에 걸맞은 이미지를 선사한다. 다만 거기에 머무를 뿐이다.     

 톰 크루즈가 <데드 레코닝>을 촬영하던 중 방역수칙을 어긴 스탭에게 욕설을 퍼붓은 유명한 일화는, 그가 이번 영화를 통해서 하고자 했던 것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내가 매일 밤마다 걱정하면서 잠드는 게 그거야. 망할 이 영화 업계의 미래를 말이야!" 톰 크루즈는 배우조합 조합원이다. <오펜하이머>의 유럽 프리미어 현장에서 배우들이 파업을 지지하며 이른 퇴장을 택했던 것과 다르게, 그는 적극적인 프로모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르게 작성된 톰 크루즈의 답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 자체로 산업을 견인할 수 있다는, 어쩌면 나르시시스트나 내놓을 법한 답. 어쨌든 <데드 레코닝>은 제작사, 배급사, 극장에 수익을 안겨줄 것이고 산업에 활기를 더할 것이다. 톰 크루즈의 답은, 생성형 AI한테 AI가 적으로 나오는 <미션 임파서블>의 각본을 써달라고 하면 딱 <데드 레코닝>의 각본이 나올 것 같다는 점을 빼면, 아직까지는 유효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존하는 현실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