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이용민 1965
*본 원고는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의 녹음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호러영화로 김기영의 <하녀>(1960)을 꼽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다음 해 개봉한 <악의 꽃>(1961)을 시작으로 <무덤에서 나온 신랑>(1963), <목없는 미녀>(1966), <사녀의 한>(1970), <공포의 이중인간>(1974), 마지막 영화 <흑귀>(1976)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호러영화를 찍어온 이용민이야 말로 한국 호러영화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3D 호러영화 <악마와 미녀>(1969), 2014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3D 복원하였다)를 제작하기도 했으니. 물론 이용민과 김기영 이전에도 호러영화들은 존재했다. 일제강점기였던 30년대에도 몇 편의 호러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24년 이미 <장화홍련전>이 제작된 바 있다. 다만 유실되었기에 해당 작품들이 정말로 ‘호러’영화였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관련한 문헌도 부족하다. 해방과 한국전쟁이 모두 지나간 1950년대 중반부터 한국영화산업은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60년 이창근의 <투명인간의 최후>와 김기영의 <하녀> 등이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호러/스릴러 영화가 출발한다. 그리고 ‘한국판 드라큐라’를 표방한 <악의 꽃>이 제작되며, 본격적으로 한국 호러영화는 시작된다.
하지만 이용민의 걸작을 딱 하나 꼽으라면 아무래도 <살인마>(1965)이다. 주인공 시목(이예춘)이 전시회를 찾았으나 아무런 작품도 없던 텅 빈 공간에서, 유일하게 걸려 있던 사별한 전처 애자(도금봉)의 초상화를 발견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하지만 이내 이 초상화는 녹아내린다. 밖으로 나가 어떤 남자의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그의 주변은 귀신들이 둘러싸고 있다. 도착한 건물에서 낯선 남성을 만나 협박당하던 그는 갑작스레 나타난 초상화의 주인공인 여성이 남성을 칼로 찔러 죽임으로써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의 실루엣에서 고양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살인마>는 생각보다 복잡한 플롯 구조를 지니고 있다. 난데없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던져진 시목의 상황은 단박에 이해하기 어렵다. 시목이 초상화를 집으로 가져오자 어머니 허씨(정애란)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재혼한 아내 혜숙(이빈화)은 죽임당하고, 귀신의 형상으로 나타난 애자에 의해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시목은 어느 화가의 일기를 손에 넣고서야 이 모든 것이 어머니와 혜숙의 계략에 의해 애자가 억울하게 죽임당하는 비극적 사건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영화는 시간순을 따르는 대신 주인공 시목이 직접 보고 듣는 순서대로 사건을 배열한다. 비극의 전모는 영화의 마지막 20~30분에 가서야 밝혀진다. 애자는 왜 고양이 귀신이 되었는지, 어머니는 어쩌다가 고양이가 되었는지, 혜숙이 왜 애자의 모습을 한 귀신에게 죽임당해야 했는지 말이다. 2023년의 시점에서 <살인마>의 이야기는 얼핏 익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전설의 고향> 풍으로 연출된 <사랑과 전쟁>이랄까? 다만 이는 <살인마>의 ‘이야기’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살인마>가 진정 흥미로룬 지점은 그 스타일에 있다. 첫 호러영화 <악의 꽃>은 적극적으로 서구 호러영화의 영향을 드러낸 첫 번째 한국 호러영화였다. 그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서구 호러영화가 한국에 개봉했지만, 1959년에서 1962년 사이에는 <프랑켄슈타인의 역습>(1957), <괴인 드라큐라>(1958) 등 영국 해머 호러사의 영화들은 물론 <앗샤가의 참극>(1960) 등의 할리우드 B급 호러영화, 3D 호러영화인 <심야의 별장>(1959), <흑사관의 공포>(1959)가 개봉하기도 했다. 도시전설과 괴담, ‘프랑켄슈타인 박사’로 대표되는 매드사이언티스트의 이미지 등이 이 시기 한국에 개봉한 서구 호러영화들을 채우고 있다. 이용민은 이를 고스란히 흡수한다. 아니, 이용민은 자신의 영화들을 통해 이들 영화를 한국영화로 은밀하게 수입하고 번역하여 배포한다.
<살인마>는 이후 펼쳐지는 이용민 영화의 원형 같은 역할은 한다. 더 나가아 한국 호러영화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현대적 주거공간인 아파트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시목의 가족을 부르주아 가정이라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설정은 고영남의 <깊은 밤 갑자기>(1981) 등 이후의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고부갈등 및 본처와 정부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던가, 죽임당한 여성이 여귀(女鬼)가 되어 돌아온다는 설정은 무수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되어 등장한다. ‘불교’의 힘을 빌어 귀신을 퇴치한다는 지점, 빙의의 모티프 등 또한 마찬가지다. 백문임은 『월하의 여곡성』에서 60년대 호러영화의 주관객층이 “시어머니의 인가를 받아 외출한 동네 아주머니 부대”였다는 점에서 한국 호러영화의 비극적 신파내지는 멜로드라마적 서사가 변형된 형태로 등장 및 수용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 호러영화의 고전으로 꼽을 수 있는 <월하의 공동묘지>(1967)이나 유현목의 <한>(1967) 같은 작품을 통해 곧바로 전승된다. 백문임은 “희생자인 며느리가 생전에는 조신하고 얌전했다가, 원귀가 된 이후에는 가공할만한 욕망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괴물이 된다”는 지점과 함께 시어머니가 남성을 탐하는 장면을 삽입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관념을 무너뜨리는 측면 또한 존재한다. 더불어 이러한 요소들은 이용민이 <살인마> 개봉 다음 해에 제작한 <목없는 미녀>부터 <흑귀>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활용한다. 덧붙여 시목이 일종의 추적극 내지는 추리극을 선보이며 이를 서스펜스 스릴러의 관습으로 풀어낸다는 지점은 식민지 서사를 더욱 가깝게 끌어오는 이용민의 후기작, 이를테면 <목없는 미녀>나 <공포의 이중인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짧게 등장한 병원 장면은 이용민의 이후 작품에서 드러나는 의학과 과학에의 관심을 드러낸다. 특히 투명인간과 재생인간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목없는 미녀>와 <공포의 이중인간>은 독특한데, 두 작품 모두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숨긴 보물에 관한 음모론을 소재 삼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이용민은 가족 내 갈등으로 인한 비극적 신파나 여귀, 불교 등 소위 ‘한국적’이라 불릴만한 요소에 크게 집중하지 않는다. <월하의 공동묘지>와 같은 작품이 한국의 맥락에 집중했다면, 이용민은 그보단 해머 호러사나 로저 코먼 사단의 괴기영화. 혹은 마리오 바바를 위시한 이탈리아 호러영화에 가까운 스타일을 선보인다. 시목이 초상화를 발견하는 장면이나 고양이의 혼에 빙의된 어머니와 대결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당시로서는 가장 세련된 기술과 특수효과를 동원한 <살인마>의 화면은 <살인마> 이전 한국에 개봉한 서구 B급 호러영화들과 깊은 친밀성을 보여준다. 물론 이용민은 <살인마>에 관해 일본 호러영화인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1959)을 참고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차라리 에드거 G. 울머의 <검은 고양이>(1934)라던가 <악의 꽃>에서부터 주되게 참조하고 있는 유니버셜 몬스터 영화를 언급하는 게 적당할 것이다. 이용민이 시도한 것은 다분히 동아시아적, 혹은 한국적인 세팅 위에서 서구 괴기영화를 재현하는 것에 다름없다. 즉, <살인마>는 60년대 한국의 공간과 서사 위에 서구 괴기영화 스타일과 추리극/스릴러의 스타일을 버무려 탄생했다.
사실 이용민의 연출작 30편 중 호러로 분류되는 작품은 7편 남짓이다. 그의 연출 데뷔작은 <제주도 풍토기>(1946)라는 다큐멘터리였으며, 그의 필모그래피는 멜로드라마 <서울의 휴일>(1956), 전쟁영화 <포화 속의 십자가>(1956), 코미디 <맹진사댁 경사>(1962)와 <지옥은 만원이다>(1964), 시대극 <일본제국과 폭탄의사>(1967), 문화영화 <한국의 새>(1972) 등 다양한 작품으로 채워졌다. 그럼에도 이용민을 호러영화감독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살인마>의 역할이 크다. <살인마>는 과거 한국영화가 동시기 서구 영화와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교류했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서구에서 건너온 장르를 한국에 이식하는 방법에 관한 선구적인 선례다.